학술
스물 일곱. 폴란드를 장악한 가톨릭의 선교전략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언 16:1-4)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반영해서 생각하며 계획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이 삶의 주체임을 확정하며 살아간다. 계획과 실천의 주관자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은 생존하는 인간의 당연한 진리라고 여긴다. 그런데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그야말로 원하던 모든 것을 모두 해 보았던 지혜와 명철의 왕 솔로몬은 그렇게 교훈하지 않는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그는 마음껏 자유롭게 생각했으며 어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해 보았던 부러운(?) 왕이기도 하다. 자신의 지혜와 총명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수천 편의 글을 썼던 솔로몬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담은 책은 잠언, 전도서, 아가서로 남아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시가서 말씀의 절반을 그가 기록했던 배경에는 모든 것을 마음껏 해 보며 쾌락의 극치를 맛보았던 화려하면서도 부패한 그의 인생이 배경이 되고 있다.
앞의 본문을 더 따라가 보자. 솔로몬은 인간의 입술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하며 사람의 행위도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정당한 것인지 불의한 것인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계획부터 입으로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전부 인간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경영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으로 악(惡)의 섭리에 대한 절대주권이 여호와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의 모든 계획과 그 계획의 선함과 악함 나아가 악인의 적절한 사용을 모두 여호와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순간도 그의 존재와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지 않은 순간이 없으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本分)이라고 가르쳐준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잠시 동유럽의 반종교개혁 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16세기 폴란드를 비롯한 리투아니아 지역은 개혁파와 루터파 그리고 예수회와 수도사들의 경쟁 무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지역들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여기에는 로마 가톨릭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작동했다. 폴란드 지역이 결국 로마 가톨릭 국가로 지금까지 남아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섭리 과정을 살펴보자. 개혁파 교회는 미사처럼 예배 의식이 집행되는 제단보다는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단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가톨릭 미사를 비판했으므로 폴란드 지역의 개혁교회에게 종교개혁의 상징으로 말씀 중심의 설교가 선포되는 설교단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설교는 한 주에 한 번밖에 없다 보니 평상시에는 예배당 문을 잠갔다. 반면 로마 가톨릭은 비상한 방법을 발전시켰다. 바로 사제와 신도가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고해성사’ 제도가 그것이었다. 삶에 지친 신자들에게는 한 주일을 기다려서 하루 잠시 설교를 듣는 것보다 수시로 자신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사제를 방문하여 양심의 고통을 덜어내는 것이 훨씬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그 상담 공간은 밀폐된 이중 칸막이를 사용하면서 서로 신분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편안함을 주었기에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당시 폴란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17세기 초 완공된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전 유럽 순례자들의 행렬이 급증했다. 그러면서 로마 교황청은 바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부의 상징이 되었다. “신자들은 교황과 함께 기도하거나 그의 인사 혹은 신앙적 윤리적 선언에 환호하기 위해 매주 이곳에 모이고 있다. 근대의 어떤 기독교 지도자도 자신의 무리를 지배하기 위해 그렇게 준비된 무대를 갖지 못했다.”(511) 그리고 이렇게 전 유럽인들이 로마 바티칸으로 순례하는 것을 부추기는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로마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 시대의 지하교회였던 카타콤(catacomb)의 유골들이 대대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 왔던 순례자들에 의해 그 유골들은 유럽 전역으로 옮겨지면서 온갖 성자들의 전설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유골들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마치 예수의 흔적처럼 보였으며 그것을 신성하게 여기고 자연스럽게 우상화했다. 이러한 전략들은 단지 설교만 듣고 앉아있어야 하는 개혁파 교회의 설교 중심의 모임 방식보다 훨씬 큰 효과가 있었으며 가톨릭 교세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유골들이 지방까지 확산하면서 폴란드 가톨릭 교세의 증가를 더욱 자극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예수회 수도사들 중 ‘바나바회’(512)로 일컫는 사제들은 일반 백성들의 상상력과 감각을 자극하는 야심 찬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바로 거리에서 그리고 시골의 숲속까지 돌아다니며 천국과 지옥을 연상시키는 ‘연극 시연’이 바로 그것이었다. 카니발과 같은 잔인한 연극을 보여 주며 지옥을 끔찍한 곳으로 두려워하게 만들고 가톨릭만이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세뇌시켰다. 마치 18세기에나 흥행하는 개신교의 부흥 집회를 이미 폴란드의 예수회 신부들은 당시에 고도의 선교전략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 한 명의 과학자인 성직자의 등장은 우주의 중심을 로마 교황청으로 확정해 놓은 명제를 전복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두려워한 가톨릭 권력은 그 과학자의 주장을 막고자 폴란드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인물이 폴란드 출신 성직자이며 과학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이다. 그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불변의 진리처럼 확고했던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증명하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했다. 당대의 중요한 학문이었던 수학과 천문학, 의학과 신학 나아가 법학까지 섭렵했던 그는 교황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던 천 년 이상의 전통을 뒤집어 놓았다. 물론 그의 명성이 급속히 높아지자 로마 교황청은 그냥 있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의 말은 거짓이라며 1616년 교황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단죄했다. 그리고 폴란드는 로마 가톨릭의 철저한 경계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 증명으로까지 로마 교황청의 허구가 드러났다면, 종교개혁의 발전이 가장 융성하게 일어나야 할 곳처럼 보였던 폴란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세계 역사의 섭리를 그러한 방향으로 정하지 않았다. 폴란드는 그 이후 로마 교황을 따르는 반종교개혁의 모범 국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수회 신부들이 주도하는 당시 동유럽의 반종교개혁 목적은 “지상의 그리스도인 주교에 지배되는 교회에 세계가 복종”(519)해야 한다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폴란드 주변 상황과 더불어 16세기 독일 중북부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은 17세기로 접어들면서 로마 가톨릭의 지배력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교세도 더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4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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