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한 인간 (영윤) 자문을 본받자!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자장문왈 영윤자문 삼사위영윤 무희색 삼이지 무온색 구영윤지정 필이고신영윤 하여
子曰忠矣 曰仁矣乎 曰未知 焉得仁
자왈 충의 왈인의호 왈미지 언득인
『논어』 「공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자장이 (공자에게) 물었다. “영윤인 자문은 세 번 영윤이 되었는데 기쁜 안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번 그 직을 그만두어야 했는데 화나는 안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영윤으로서의 지난날의 정책은 반드시 새로 오는 영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자문은)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자장이 물었다) ”자문은 인의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알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어찌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영윤은 관직명이다. 그것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초(楚)나라의 상경(上卿, 우리나라에서는 정일품에 해당하는 벼슬)의 직책으로 정사를 관장하는 최고의 벼슬이었다. 자문은 성이 투(鬪)이고 이름은 누오도(穀於菟)이다.
그가 이 직위에 세 번이나 올랐다는 것은 그의 인물됨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그는 영윤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서게 되었지만 그것을 인해 기뻐하는 안색을 보이지 않았다. 세 번 관직에 나갔다면 당연히 세 번 물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자문은 이 지위에서 세 번을 물러나야 했음에도 섭섭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이 영윤으로 임명이 된 사람에게 이전에 자신이 담당하던 정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문의 사람됨이 나와 너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자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임을 말해 준다(物我無間 知有其國而不知有其身, 물아무간 지유기국이부지유기신).
이런 이유에서 영윤 자문은 자장이 보기에는 인의 사람 같았다. 그래서 자문 같은 사람이 스승 공자가 말하는 ‘어진 사람’(仁者)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공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공자는 자문이 충성스러운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인의 사람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인의 사람으로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공자에게 인은 필연코 배움을 좋아하고 실천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했다.
이러한 충과 인의 의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보여지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보여지지 않는 부분에서의 거룩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으로 충실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단순히 충성스러운 행동만으로는 궁극적 구원의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웃음 지으며 친절해야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 구원의 영역으로 상승해야 한다. 구원의 인물의 영역은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어디서나 가족과 이웃과 함께 생활한다. 이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주변인들로부터 충실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충실의 생활을 넘어 구원받은 자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 생활이 어떠한 것이라고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사람이 낱낱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의 영역은 반드시 현존한다. 충실한 삶에서 구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삶이다. 그 출발은 기본적으로 영윤 자문과 같이 일에 따라 쉽사리 웃고 울고 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을 생각하며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일이 잘된다고 또는 일이 잘 안된다고 우리의 얼굴에 희색이나 노함을 쉽사리 드러나게 하지 말자. 세상의 삶 속에서는 부침이 있기 마련이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기로 하자. 동시에 한 차원 높은 구원받은 자의 삶을 추구해 나가자. 현실이 없는 구원의 삶은 의미가 없다. 현실을 굳게 딛고 그 위에 구원 얻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무엇에든,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믿음의 삶을 드러내고 실천해 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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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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