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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21-01-18 18:5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고대 그리스철학의 기원 1: 허구적 신화와 물리적 자연의 혼합물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통상 알려진 것처럼 최초의 철학자로 칭하는 자는 탈레스(Thales, 640-546)다. 그에게 그러한 칭호를 부여하는 이유는 탈레스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원리’를 추론하여 체계를 처음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 그리스는 그야말로 신화가 세계와 인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른바 신의 족보를 만들어 신과 인간의 교접(交接)으로 인류가 탄생하고 그 인류는 다시 제물을 바치면서 여러 잡신들을 달래는 신화 지배의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탈레스는 허구적 사상이 아닌 ‘개념’을 통해 사유를 시작함으로써 ‘비신화적’ 실험 활동을 전개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자(賢者)를 거론할 때 항상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이 사람인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 그리고 그 이후 헬라 사상도 탈레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니체는 바젤대학 고전 문헌학 재직 시절 어떤 과정으로 그리스 철학이 자리를 잡아가는지 추적하는 연구를 했다. 그에 따르면 탈레스는 세계 전체를 볼 수 있는 세계상(世界像)을 수립한 사상가이다. 개념을 통해 신화를 극복하고 개념의 체계화를 통해 단지 교훈적인 격언을 던지는 방식과는 다른 원리 탐구와 체계 수립의 방법을 처음으로 제시한 철학자이다. 당시는 페르시아제국이 지중해를 지배하던 시대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사상을 독자적인 사상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지중해 동쪽에 위치했던 주전 7-6세기의 바벨론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허구적 신화와 상상의 산물들이 지중해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이란 혼합물의 성격을 띤다. 니체는 이러한 배경을 통해 탈레스로부터 시작하는 고대 그리스 현자 중심의 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철학은 총체적 존재의 상을 개념으로 서술하는 예술”(239)이다. 개념을 예술로 발전시켜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전체의 관점에서 서술하려는 시도가 바로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자 즉 칠현인(七賢人) 중에 하나다. 현인의 그리스어는 소포스(σοϕὸς)다. 이 낱말은 어원상 맛본다(sapio), 맛보는 자(sapiens), 맛볼 수 있는(sapes)에서 유래한다. 개념을 체계적으로 잘 사용한다는 의미 이전에 ‘예술적 취미(Geschmack)’를 더욱 강조하는 개념이다. “오로지 예리한 음미, 예리한 인식”(239)을 발휘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자를 ‘소포스’로 칭했다. 니체에게 이 현인들이 이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 철학자들의 조상이다. 개념과 관념의 틀 속에 갇히기보다는 창조적 미적 감각에 탁월한 예술적 감수성을 지향하는 예술가가 소포스다. 이 소포스(현자)는 단지 인간적 비범함이나 경탄스러움, 신비감과 신성함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요소를 가진 자다. 그래서 인간적 평판을 한순간 ‘쓸모없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으며 이러한 능력을 니체는 ‘소피아(σοφία)’라고 한다. 니체에게 진정한 철학은 지적 능력 이상을 항상 요구한다. 이렇게 말한다. “지혜에는 실로 지성의 과잉이 필요합니다.”(240) 이러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그 적자(適者)가 바로 탈레스다. 이렇게 정의한다.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이자, 최초의 현자들σοφοὶ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240)
니체에게 탈레스는 철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명확하고 냉정하며 조화로운 실무자 (……) 심미적이며 온갖 종류의 예술적 도취에 탐닉하는 인간”(231)이어야 소포스가 될 수 있다. 이들의 품격과 행동이 고대 그리스 국가에서 철학자라는 특별한 유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그러한 철학자들로 니체는 피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등을 예로 든다. 이들을 탈레스의 후손으로 칭하면서 니체는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철학의 탁월성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모든 개인에 대해 놀라운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인물의 지위와 명성은 일찍부터 대단히 확고합니다. 한 시대는 그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시대가 이들을 존경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의해서도 특징지어진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233) 그리고 니체는 이러한 서양 사상의 뿌리인 그리스 사상의 독창성을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그리스적 형태가 거의 언제나 가장 훌륭하고 가장 순수”(234)하다고.
이러한 고대 그리스 사상사에서 서양 철학의 실질적 지배자인 플라톤이라는 인물이 생긴다. 플라톤은 “혼합적인 특징이 두드러진 최초의 위대한 인물”(234)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그리고 헬라클레이토스를 혼합했다. 플라톤은 “제왕처럼 당당한 헤라클레이토스, 우울하게 신비로운 입법자적인 피타고라스, 영혼에 정통한 변증론자 소크라테스의 특징”(234-235)을 자신 것으로 혼합했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신화를 자연법칙으로 바꾸고 상상력의 지배를 받는 형상 개념을 지성으로 관리 가능한 논리적 개념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종교적 차원에서 제기했던 물음들을 물리적인 경험 가능한 과학의 차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니체는 이 과정이 그리스 사상의 역동성을 앗아가 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후 자신의 모든 철학에서 플라톤을 혹독하게 비판하게 된다. 자연의 생성력에 대해 감각이 무뎌진 결과가 바로 ‘형이상학적 체계’이다. 자연의 역동성 내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차단하고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하여 ‘마음과 몸의 대립’ 구도의 철학을 만든 자가 바로 플라톤이다.
이상의 니체 평가를 통해 살펴본 고대 그리스 사상은 진정한 현인 즉 소포스(sophos)가 누구인지를 찾고자 하는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구약 성경의 역사로 보면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제국을 페르시아제국이 다시 패망시키면서 지중해 패권을 열고 있었던 시대다. 이사야 선지자부터 말라기까지 선지서 전부가 이러한 고대 그리스 시대와 연관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멸망 이후 신적 지혜로 충만한 지혜자(sophos)를 준비하고 있다고 예언하신다. 바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선언하신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해명은 선지서의 단단한 바탕을 통해 해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들을 앞으로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의 다음과 같은 경계 때문이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203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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