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03-09 21:2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천하 평화에 이바지하려면(1)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소위평천하재치기국자 상노노이민흥효 상장장이민흥제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矩之道也
상휼고이민불배 시이군자유결구지도야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소오어상 무이사하 소오어하 무이사상  소오어전 무이선후  소오어후 무이종전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矩之道
소오어우 무이교어좌, 소오어재 무이교어우 차지위혈구지도



본문은 대학 전문 10장 첫머리 글, 그러니까 천하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 내디뎌야 할 조치로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윗사람(왕 포함)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면 백성들이 효를 흥하게 행하고,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하면 백성들이 자애(弟)을 흥하게 행한다. 윗사람이 고독한 이들을(불쌍히 여겨) 구휼하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는 혈구의 도(the dao of the carpenter's square)를 가진다.
(자신이)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what you detest in your superior)으로 아래 사람들을 부려서는 안 되고 아래 사람에게 싫음을 받았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겨서는 안 된다. (자신이) 앞사람에게 싫음을 당했던 것을 뒷사람에게 먼저 하도록 해서는 안 되고 뒤에 있는 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을 앞사람에게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왼편에 있는 사람과 사귀어서는 안 된고 왼편에 있는 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오른편 사람과 사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일러 혈구의 도라 한다.”

‘혈(??)’은 ‘헤아리다’, ‘재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矩)는 모(직각)를 이루고 있는 자다. 혈구는 헤아리는 도구다. 그것은 영어 번역에서 드러나듯이 목수가 건물을 지을 때 모든 재료를 헤아려서 적재적소에 알맞게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혈구의 도는 지금까지 대학이 주장해온 8조목의 길(도)을 벗어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의 일상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스리는 사람이 백성 중에서 노인들을 노인으로 대하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긍휼하게 대하게 되면 천하에 효가 흥하게 되고 서로 사랑함이 흥하게 되며 서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일이 흥하게 되는 법이다. 이것이 혈구의 도다.
대학의 혈구의 도는 공자의 서와 비슷하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자신이 일생동안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공자는 ‘서(恕)’라고 하고는 계속해서“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고 풀어서 말해 주었다. 평천하는 윗사람이 자신에게 싫었던 것을 앞에 있는 사람, 뒤에 있는 사람, 양 옆에 있는 누구에게도 베풀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추론해 보면 고대사회에서 일반 평민들이 장수를 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고 사회적 상황으로도 그렇게 오래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이 30~40세 정도였다. 그러므로 노인이나 어른이나 고독한 이는 대부분 고관대작 출신들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상과 하, 전과 후, 좌와 우 등은 일반 백성 전체를 지칭한다. 윗사람은 누구에게도 자신에게 싫었던 것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따르게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군자(유학자, 배운 자, 통치자)라는 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좌절하게 했던 것들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유학의 기본 전제인 것이다. 이것이 군자가 지니고 있는 혈구의 도다. 군자는 이 룰을 따라야 한다.
윗사람의 위치에 있는 기독인의 대인관계가 어떠해야 기독인이 세상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 참 기독인이라면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하였다(마20:28). 물론 예수님의 섬김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또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섬김이었다. 이 섬김이 기독인의 평소 삶 속에서 이루어질 때 자신과 가정에 평화가 생겨나고 그가 속한 학교와 직장에 평화가 생겨나고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 나라 안에 세계 속에 평화가 깃들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기독인이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인관계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나 죄악으로 다른 사람과 교제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따르거나 본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로 6:23). 기독인이 자신의 죄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은 세상에 죽음을 퍼트리는 것과 같다. 죽음을 물리치고 세상을 생명이 있는 평화의 세계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 땅의 기독인이여!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대로 나서자. 기독인 자신이 먼저 섬김의 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기독인은 마땅히 ‘상노노’, ‘상장장’과 같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 성도를 성도로 섬겨야 한다. 그 후에 자신에게 싫은 것 곧 자신의 죄범함으로 다른 사람과 사귀어서는 안 된다. 이 도를 실천하여 이 땅의 온 교회 안에 하나님의 평화의 세계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로 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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