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03-31 20: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천하를 평화롭게 하려면(2)


대학 전문 10장의 일부 내용이다.

“시경에서 말하였다.‘즐겁도다. 군자여!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도다.’이래서 (군자를) 백성의 부모라 할 수 있다.
시경에서 말하였다.‘뛰어나도다. 저 남산이여! 실로 바위가 장엄하도다. 빛나도다. 태서 윤씨여! 백성이 모두 그대를 바라보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어느 하나로) 치우치면(partial) 천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본문의 시는 모두 시경 「소아편」에 담겨 있다. 군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자를 의미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적극 추진해야 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자신도 싫어하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는 자녀들이 기뻐하는 것을 하려는 분들이고 자녀들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는 분들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부모 같아야 하는 것이다. 군자가 혈구의 도를 행하게 되면 이렇게 백성의 부모와 같은 느낌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자이다.
남산은 일반적으로 왕이 거처하면서 바라보는 곳을 가리킨다. 고래에는 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남산이 있었다. 오늘날 서울 광화문의 남쪽 맞은편에 남산이 있는 것이나. 신라의 고도 경주에 남산이 있는 것은 다 이러한 이유에서다. 본문에서는 남산이 왕을 보좌하는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사윤은 주나라의 태사(太師, 천자의 근신으로 천자를 보좌하고 지식을 전수하는 관직명) 윤씨(Marshal Yin)를 가리킨다. 백성들이 군자인 그를 높이 우러러 바라보고 있다. 태사 윤씨의 훌륭한 예를 들어서 여타의 군자들이 어떻게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데 이바지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군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서 매사에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군자가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출발점이다. 만일에 군자가 짧은 소견으로 인해 잘못된 여론에 치우쳐서 정도를 잃게 된다면 백성들에게 도륙을 당함이 마땅하다. 이것은 군자가 혈구의 도를 행하지 못했을 때 오는 참혹한 결과이다. 동시에 그것은 천하를 어지럽게 한다. 경계할 일이다.
유학에서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여겨지는 것은 민심이다. 민심은 천심으로 여겨져서 하늘의 뜻으로 이해된다. 군자는 민심을 그대로 대변하는 자이어야 한다. 그는 하늘의 뜻 곧 민심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태사 윤씨는 유학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군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독인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길은 유학과는 다르다. 기독인은 말하자면 천심을 먼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사람과 세상에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어린 아이에게 대접한 것이 아버지에게 대접한 것이라고 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아진다. 어린이에게 대접함이 기독인은 자신의 즐거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즐겁지 않으면 기독인이라 볼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하더라도 마침내 즐거움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즐거운 자만이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할 수 있다. 즐거움을 누리는 기독인만이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모든 기독인의 모범이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의 나뉨을 염려하고 꾸짖었다(고전 3:3~5). 그는 아볼로파와 게바파와 바울파의 신학내용을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아볼로나 게바나 바울이나 생명이나 죽음이나 만물도 다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여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한다(고전 3:22~23).
기독인은 편협함을 피해야 한다. 그 길은 자신의 행동의 근거를 하나님께 둘 때이다. 하나님께로만 향한 행동이라면 비난받을 것이 없다. 비난을 받아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기독인이 세상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은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귀속시키는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께 귀속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편협함을 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바울이 고백한 대로 오직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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