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5-07-14 20: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근대 역사학은 중세 신학의 재포장이다!


니체는 당시 유럽의 지적 풍토를 보며 학자들은 “실천적인 염세주의자”(352)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지적 즐거움이 몰락임을 직감하면서 궁극적 이념과 이상적(理想的) 목적은 허구임을 주장하는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의 논리가 젊은 역사학자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 니체는 역사 교육은 삶을 왜곡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불합리성과 모순 그리고 신화 창조를 통한 현실 극복을 제안한다. “강하고 쾌활한 종족의 창백한 마지막 후예인 우리에게는 저 불합리성, 저 미신이 어울린다.”(353) 니체는 창조적 의지를 부정하는 ‘수동적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시 병들어 버린 ‘역사적 교양’을 해체하지 못하면 과거는 늘 죽은 짐승처럼 박제되어 시대 명칭은 ‘새로운 시대’ 즉 근대(Moderne)라고 하지만 이것은 중세의 반복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근대 역사학을 표면적으로 보면 과학적이며 합리적이지만 삶을 왜곡하는 질병이며 생기(生氣)를 억압하는 오만한 폭압적 권력이다.
절대적 진리와 초월적 목적이 정신세계를 지배한 중세는 인간 삶의 최종 목적(텔로스, telos)을 항상 미래에 둔다. 그런데 이러한 중세의 세계관을 극복한 것처럼 근대의 정신을 말하지만, 근대의 역사 해석과 사유 구조는 여전히 현실 창조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미래 구원의 신학이 지배한다. 가령 ‘역사는 진보한다’ 혹은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태도는 미래 중심의 구속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인물을 역사로 박제하는 태도는 여전히 중세의 지속이다. 이러한 중세 신학의 재포장(Umverpackung)을 이어가는 근대 역사학은 인간 실존을 과거의 희생자로 만든다. 이는 중세의 사제 계급이 역사학자의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라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근대 역사학에 대한 중세의 지배에 대해 니체는 중세의 유명한 명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에 대한 평가를 통해 비판한다. ‘중세적 지식과 양심의 정점’이라는 이 구호를, 니체가 볼 때, 근대인들이 극복하고자 ‘메멘토 비베레(memento vivere, 삶을 기억하라)’라고 합창하지만, 죽음에서 자유롭고 미래의 창조 동력을 찾는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니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여전히 중세에 살고 있으며, 역사는 여전히 가면을 쓴 신학이다.”(355)
죽음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중세 신학은 사후세계를 삶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인간의 현재 삶을 억압하고 죽음으로 귀결하는 삶에 봉사할 것을 강요한다. 마찬가지로 근대는 역사적 교훈과 도덕적 경직의 틀 속에서 미래 창조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중세 신학의 내러티브를 반복한다고 보았다. 인간 존재의 미래 가능성을 활짝 개방하여 삶을 창조하라는 자유의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교훈과 도덕적 판단에 노예가 되어 현재와 미래를 억압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근대는 결국 삶에 봉사하지 못하는 퇴폐적 역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니체에게는 ‘미래의 죽음=구속사적 역사관=도덕적 이상’은 생명력을 억압하는 염세주의의 서로 다른 이름들에 불과하다. 이렇게 니체에게 삶에 가장 위험한 적은 삶의 창조에 봉사할 수 없는 역사관이다.
과거를 극복하고 현재를 긍정하며 미래 창조에 유익한 역사적 교양의 ‘기원’을 찾기 위한 사유 전략으로 니체는 (전통적 의미의 역사학이 아니라) ‘계보학(Genealogie)’을 쓴다고 한다. 계보학은 인간의 정신역사가 ‘우연’과 ‘단절’이 그 본성임을 대전제로 한다. 즉 개념과 도덕, 가치와 지식, 권력의 기원과 변화 과정은 역사적 우연과 권력 지배 관계의 산물로 본다. 이러한 과정을 추적하는 철학적 방법론을 니체는 ‘계보학’이라고 한다. 니체는 근대의 역사주의로는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중세의 족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안하는 ‘비판적 역사학’으로서 계보학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것(Muss)’(356참조) 곧 ‘정신명령법(der Imperativ des Geistes)’ 실천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러한 계보학적 사유는 자기반성이나 비판 정도가 결코 아니며, 자기 통념의 해체라는 과정이 필수이어야 한다. 이를 이렇게 말한다. “지식은 자신의 가시를 자신에게로 돌려야 한다.”(356. 강조는 원전에 의함) 올바른 지식은 외부 대상을 해석하거나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철저하게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 구조의 필연적 패턴이 니체가 말하는 ‘니힐리즘’의 핵심이다!)
당대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의 역사주의(Historismus)가 저지르는 범죄는 바로 앞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무지에 대한 무반성 내지 의도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무시하거나 은폐하거나 억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자기 확신의 오만함을 고집하는 수구적 성향에 대해  무반성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전복(顚覆, Umkehr)·해체(解體, Dekonstruktion) 하려는 니체의 계보학적 사유 방법론은 처음부터 서양의 정신문화사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겠다는 그야말로 혁명적 발상이다.(니체의 서양 사상의 전면적 해체 전략은 니체 사후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 등 많은 탈근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역사 인식에 대해 급진적 전환을 시도하는 니체는 당대의 역사주의자를 “침몰하는 고대의 제자”(357)로 규정한다. 고대란 ‘알렉산드리아-로마 문화’를 지칭한다. 이는 단순한 시대 분류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적, 본능적, 자연적 문화가 지적 분석과 도구적 기술화로 퇴락하고 백과사전식 지식이나 방대한 기록과 해석을 정신문화 자체로 왜곡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 상징이다. 다시 말해, 지식 숭배와 역사주의, 체계화와 규범화로 대표되는 학적 풍토 위에 박물관이나 도서관, 법률이나 문법 혹은 역사 편찬을 주도하는 자들을 숭배하는 풍조를 비판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이러한 알렉산드리아적 문화를 삶의 직접적 충동과 예술적 창조력을 소진시키는 과잉된 사유라고 비판한다. 헬레니즘과 로마 문화는 마치 ‘아티카 비극’이라 일컫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계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모방자 이상 이하도 아니다. 니체는 그래서 알렉산드리아-로마 유산을 모든 가치를 과거로부터 해석하려는 미래 없는 역사주의로 규정하고 근대 독일 역사학도 이 길을 따라가는 퇴행적 문화라고 비판한다. 이에 니체는 계보학적 탐구를 통해 과거를 활용하되 동시에 과잉된 역사주의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현재와 미래의 창조 가능성을 개방하는 유익한 교양을 탐구하고자 했다. “거기서[알렉산드리아-로마 시대에서-필자 주]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역사적인 교양(unhistorischen Bildung)의 현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풍요롭고 생동감 넘치는 교양의 현실이다.”(357) ‘비역사적 교양’이란 현재와 미래의 창조를 위해 유익한 역동적인 교양을 뜻한다. 죽은 지식의 수집이나 권위의 전승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과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그러한 전통을 해체할 수 있는 해체적 교양이어야 한다. 이는 과거에 대한 무책임한 파괴와 살해가 아니라 해체한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를 뜻한다.

<277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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