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4-02-23 21: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미디어의 다양성: 유일한 계시는 없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 〈82〉


니체 이후의 유럽 지성은 언어에 대한 규정을 다시 검토한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절대적이며 불변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전달하려는 진리가 사라져 버렸으므로 전달 수단이었던 언어에 대한 비판도 당연하게 된다. 신(神)의 존재와 관련된 진리를 전달하는 매체(媒體, medium)였던 언어의 지위는 거의 ‘전권대사’와 같았기 때문에 신학에 퍼부었던 비판은 곧 언어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어의 폭정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구원”하라!✽ 프랑크 하르트만, 『미디어철학』, 이상엽 외, 서울: 북코리아, 2008, 135쪽. * 이하 129〜158쪽 참조. 인용 부분은 쪽수만 괄호에 기입
  19세기 초 보헤미아 왕국(현재 체코) 출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인식론적 회의주의자였던 프리츠 마우트너(Fritz Mauthner, 1849~1923)의 말이다. 이 명제는 언어적 기능에 담긴 현혹과 기만 그리고 억압을 경계하고 지적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학문의 탈을 쓰고 마치 진리증명의 전도사처럼 행세한 서유럽 형이상학의 언어도 해체해야 한다는 요구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의해 구축된 진리 체계가 미신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능력이 아닌) 한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활력을 잃은 개념 찌꺼기들이 응고되면서 인간 사유의 구조를 지배하는 폭정을 심화시켰다. 개념 정립을 통한 서양 형이상학의 전개 과정은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여 그 밖의 다른 집단을 더 교묘하게 억압하려는 ‘고문 기구’의 발달사였다. 추상화•관념화 과정에 진리로 둔갑하여 현실을 규정할수록 언어는 현실 지배력을 얻으며, 나아가 ‘신(神)’과 같은 개념을 구축하면서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해 ‘마녀사냥’과 ‘성전(聖戰)’을 불사한다.
  그런데 마우트너와 같은 언어철학자들은 이러한 언어의 권력지배의 특성에 대해 언어의 전면적 폐기를 말하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현실을 이해하는 다양한 매체(媒體, media)가 있다는 것을 더욱 강조한다. 감각적 경험을 고양시키는 예술, 추상명사를 실재(實在)로 믿는 순진한 신화(神話) 그리고 현상에 대한 과학 기술적 설명 등 매체들의 협동을 통해 현실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어의 다양한 유희 과정에서 인간들은 순간순간 ‘비언어적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언어의 피안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강하게 요청하게 된다. 이로써 언어에 의해 이미 초래했던 사유에 대한 억압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해방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를 어떤 세계의 재현(再現)이 아니라 하나의 은유(隱喩)로 봐야 한다. 정교한 어떤 문법과 설득력 있는 논리도 언어적 비유와 상징을 생산하는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런데 언어를 통한 진리 표현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언어의 회의주의적 특성을 강조하는 자들은 결국 언어는 세계를 매개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계시 기록인 성경도 하나의 비유와 상징적 기호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다양하게 작용하는 공감의 비언어적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의사소통의 무한한 잠재력이 바로 무한한 미디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듯 보이는 다양한 미디어 기술에 대해 광분하는 본성에는 바로 이러한 자만심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이 동원하는 모든 미디어들은 인간의 소통 능력을 무한히 향상할 수 있다는 헛된 착각을 조장한다. 유일한 진리 전달의 매체인 ‘성경 진리의 권위’를 폐기하고, 그 대신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고 이생의 자랑거리(요일 2:16)에 미친 듯이 현혹되도록 하는 인본주의적 미디어는 잡혀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벧후 2:12)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분명한 진노일터. 더욱 간절해지는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인도하게 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 14:26/바른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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