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ðǥ(talk , workshop йݰ, elective ð, discussion )
‘넬슨 만델라의 나라’, ‘무지개 나라’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오랜 기독교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구의 75% 이상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나라이지만 사회 내부의 인종갈등과 그와 맞물려 돌아가는 빈부갈등은 대한민국의 동서갈등을 애교라고 부르고 싶게 만들 정도로 심각하다.
한 달 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때 카풀하는 친구가 세워둔 차의 브레이크 등이 깨져있는 것과 한 장의 메모지를 발견했다. “I am really sorry. 자전거를 타다가 실수로 부딪혀 깼습니다. 보시면 연락주세요 000-0000” 필자는 영어를 못하는 친구를 대신해 전화를 걸어주었고 견적을 낸 후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한 후 끊었다. 다음날 17만 원이 나온 견적서를 들고 그 학생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 학생은 필자만큼이나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친구였다. 난 바로 다음 주부터 그 학생이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남아공의 성공회가 성경중심의 교육을 하기 위해 가톨릭을 닮아가는 영국성공회와의 관계도 끊는 등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에 간 지 2주 만에 부활절 기간에 열리는 5일간의 사경회(young adult convention)에 참석하게 되었다.
사경회엔 필자가 속한 행정구역에서 모인 모든 성공회 교회들의 젊은이들이 참석했고, 인종은 유일한 아시아인인 필자를 포함해 백인, 흑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있었다. 사경회의 주 강사는 “Phillip Jansen”이라는 70이 훌쩍 넘은 호주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목사였고, 강론 본문은 에베소서였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참석한 필자는 도착하자마자 그들이 내주는 시간표와 분반공부용 교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4박 5일 동안의 시간표에 노는 시간이 한 시간도 없고 모두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 시간표를 보고 불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며, 세 번째로는 이곳의 시간 구성과 운영방식이 필자가 교사로 있을 때 교회학교에서 시도했던 교육개혁의 방식과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주어진 교재의 구성이 필자가 기존의 교회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박살낼 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교재에 대한 글은 다음 호에 싣도록 하겠다)
▲ 시간표 (talk는 강의, workshop은 분반공부, elective는 선택강의, discussion은 토론)
필자가 놀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성삼위 하나님의 예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에베소서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자 대부분 에베소서 공부가 처음인 150명의 젊은이가 하나같이 진지하게 빠져들었다. 강의가 끝난 후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는 학생들 절반이 손을 들고 질문 차례를 기다릴 만큼 열의가 대단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질의응답이 예정된 시간으로 인해 마치자 학생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가서 강사를 붙들고 끊임없이 본문 해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성경본문으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동성애자를 교회에서 받아들이는 문제, 학업과 신앙에 대한 갈등, 오순절 교회와의 연합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일흔이 넘은 백발의 노인이 나흘 밤을 12시가 넘도록 학생들과 토론을 이어갔던 것이다. ‘어떠한 열정과 애정이 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며 토론하는 가운데서 나이도, 인종도, 학벌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오직 남은 건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강조한 하나 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뿐이었다. 넬슨 만델라가 만들고 싶던 진정한 ‘무지개 나라’가 탄생한 것이었다.
▲ 토론장면
필자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사경회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호와의 절대주권을 깨달았다고 자랑하면서도 마음속에 가득한 내 중심의 욕망들과 태만의 들보는 간과한 채, 서양 기독교의 몰락에 대해 비난만 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낭비했던 경건주의와 자유주의신학의 긴 역사를 반성적으로 사고하여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이와 같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성경의 전체적인 구조를 제외하고는 다 가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바로 성경의 의미를 밝혀준 성경신학총서가 절실한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진리와 생활로의 무장을 넘어 체제 무장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투쟁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요나’라는 친구가 내게 포옹하며 마지막으로 던진 인사말을 나누고 싶다. “형제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날로 더욱 자라가시오. 내년에 또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2:19-20)”
변도근 (남아공 스텔렌보쉬 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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