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을 위한 예수
영어판 예루살렘포스트에 실린 이브 리바비 페인슈타인의 글에는 ‘유대인들을 위한 예수’라는 눈길을 끌만한 제목이 붙여져 있다. 이 글은 인디애나에 있는 푸르두 대학의 제브 가버 교수가 편집한 ‘유대인 예수:계시, 사상, 교화’라는 제목의 논문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버는 스스로를 ‘실천적인 유대인’으로 묘사했는데, 그는 아미틸 레빈의 책 〈The Misunderstood Jew:The Church and the Scandal of the Jewish Jesus〉를 읽은 후 예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버는 ‘실천하는 유대인’은 예수를 선지자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 고뇌했고, 그녀가 틀렸음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 결과물이 여러 유대인 학자들이 쓴 예수에 대한 에세이 작품집이다.
“이 책에 따르면 교회의 임무는 이 책의 헌정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의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더욱 긍정적이고 정중한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페인슈타인은 썼다. 요약하면, 유대인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심사숙고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대화를 증진시킬 것이다. ‘예수의 신앙을 실천하는’ 자들의 정체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글의 문맥상 그들은 유대인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안에서 신앙을 믿는’ 자들로 여겨진다.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서 예수에 대한 나의 유대적 해석은 그를 역사 안에서는 이해하지만, 신성은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가버는 기록했다.
다른 그리스도론에서의 예수는 유대 신앙 안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 그것은 ‘위격의 연합’이라는 신인사상이 철저하게 일신교 신앙인 유대교의 가르침에 생소하기 때문이다. 약속된 메시아로서 그는 예언자-랍비적 전통이 메시아의 도래와 연결된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진실로 이스라엘에는 메시아 시대의 징조인 조화와 자유, 평화와 연합이 없으며, 증오와 반목이 충만했다. 그는 가짜는 아니더라도 십자가상의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에서 증거되는 것처럼 유대인의 구원자는 되지 못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거짓 메시아라기보다는 실패한’ 이들이 전통적인 랍비적 유대 신앙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는 신념은 논의되어야 한다”고 폐인슈타인은 결론내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유대인 공동체에서 널리 받아지게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Tsvi SADAM
<교회들이 이스라엘을 비난>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중동의 기독교 상황에 대한 논쟁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견해에 또다른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30명의 신학자들과 사회과학자, 정치인, 교회 대표자들은 그리스 볼로스에서 진행된 5일간의 만남에서 이 지역 전체에 걸친 기독교 공동체 감소 원인을 중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협의회는 “팔레스타인과 같은 갈등의 상황은 심각한 기독교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이라면서도,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훨씬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 이집트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무장병들에게 살해당하고, 교회들이 파괴되었지만, 협의회는 기독교 인구 감소 원인을 ‘경제나 이민’ 문제로 돌리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가 하마스와 이슬람 단체들의 협박과 핍박을 받고 있는 가자 지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5억 세계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347개의 개신교 교회와 교파를 대표하는 WCC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2007 회의에서 이 단체는 성경의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결시킬 정치적 십자군 운동을 요구한바 있다. 중동에서의 모슬렘 인구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폭발적 증가는 기독교 인구의 감소 원인으로 꼽히지도 않았다.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것이 더 쉽고, 더 ‘정치적으로 옳기’ 때문이었다.
WCC와 이와 유사한 다른 단체들은 단순히 교회가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가르치는 대체 신학의 반유대적 교리를 재등장시키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현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이나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은 비성서적, 인도주의적 의제를 따라가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을 위한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결코 제자들에게 정치적 주권 추구를 위한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고 압제자들을 향해 다가가라고 가르치셨다. WCC의 의제는 알게 모르게 이슬람 대의명분으로 흐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 땅에 대한 섭리에는 역행하고 있다.
Ryan J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