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기독교 과학
ó ߰ ٴ(NASA )
들어가는 말
현대는 과학이 우리 생활 속 깊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과학과 기술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영향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과학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방해되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학의 영향으로 인하여 성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이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빅뱅이론이나 분자가 저절로 조합되어져서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진화론 때문이다. 이들 자연주의 이론(세상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이론)들은 이미 교회 깊숙이 침투해 있다. 침투한 정도가 아니고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사상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누룩 외의 또 다른 누룩이다. 이 자연주의의 누룩과 독버섯은 교회 내에 깊이 침투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넘어지게 하려고 한다. 그 시도는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상들은 지상교회가 싸워야 할 아주 중요한 교회의 대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과학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더 풍요롭게 될 것이다. 인간들을 눈동자같이 아끼시고 보살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님을 찬양할 주제가 샘처럼 솟아나며 아주 다양해질 것이다. 성도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찬양의 주제가 많다는 것,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성경을 통하여 성도들은 인간의 본모습과 죄 된 모습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과학 속에서도 우리는 적나라한 우리의 모습과 인생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화로우신지,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글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나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알려진 과학적 사실을 통하여 성경을 증명하거나 과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인생들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으며 아무리 선입관을 배제하려고 해도 배제할 수 없다. 인간은 진리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과학을 보려고 할지라도 결코 과학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을 증명하거나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의도 자체가 지극히 불손하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필요 없는 진리의 책이며, 언약과 성취를 통하여 자체논리로 증명된 책이다. 진실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에 합당한 말만 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과학을 통해서 할 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으로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과 권능을 피조물들에게서 발견하여 그것을 기뻐하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기독교과학의 정의
앞으로의 논의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과학’과 ‘기독교과학’의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자. 과학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과학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가 존재하는 물질세계에 대하여 관측, 실험 그리고 검증 가능한 사실을 근거로 한 조직적인 지식체계’를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과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전역학이라고 부르는 뉴턴역학과 잘 일치한다. 뉴턴의 몇 가지 법칙으로 시작하여 성립된 고전역학에서는 사물의 행동을 명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뉴턴역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연은 하나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이므로 모든 것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구나, 어디서나 실험하여도 실험의 조건만 같다면 항상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을 뜻하는 것이다. 우려스럽게도 과학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러한 과학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현대적 과학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으며 일반적인 과학의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과학은 상대론과 양자론에 기초하는데, 이 두 기초가 되는 이론은 모두 사전적 의미에서 볼 때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 특수상대론의 두 가지 중요한 가정 중에서 하나인 ‘광속의 불변성’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그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다만, 현상이 존재하므로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양자론은 상대론보다 훨씬 심하다. 양자론의 ‘물질의 이중성’,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도약’ 등 어느 것 하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명확하고 합리적이고 항상 객관적인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전적 과학이다. 과학은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 따라서 과학은 다시 정의되어져야 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인간이 어떠한 대상을 관찰한 후 그것을 인간 나름대로 체계화한 사상만을 말한다. 논리적이라거나 합리적이라는 의미가 더해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자세히 보면 허점투성이의 과학이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과학을 맹신하고 있으며 성경보다 그 권위를 더 우위에 두고 있다.
기독교과학이란, 이러한 과학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기독교입장에서 과학을 바라본다는 것은 철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과학현상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른 기독교과학의 견해라는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여 물질세계를 바라보는 지식체계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성경을 근거로 하여 과학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만큼 과학세계와 물질세계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건전한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구속사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구속사란 ‘인간이 타락하고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이다. 구속사란 비교적 건전한 관점이기는 하나 성경해석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성경을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인간의 타락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이 아닌 돌발적인 사건으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할 것도 모르고 계시는 무능력하고 전지전능하지 않은 하나님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구속사적 관점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담기에는 기독교를 바라보는 그릇이 너무 작다. 따라서 과학의 모든 현상을 구속사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예를 들어서 상대성이론을 구속사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양자역학의 물질과 파동의 이중성을 구속사 신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것들은 구속사 신학의 범주에서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성경적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언약과 성취를 중심으로 본 성경신학이다. 여기서 성경신학이라 하면 기존의 성경신학과 조금 다른 의미이다. 기존의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성경 속에서의 파편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 신학적 내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은 성경의 구조적인 언약과 성취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 여호와 중심의 존재와 속성을 온전히 드러낸 신학으로 이해된다. (성경신학개론, 박용기)
본 글에서는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열역학까지도 다룰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구속사 관점으로 바라본 기독교과학론으로써는 도저히 해석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러나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피조물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코페르니쿠스 이전과 코페르니쿠스 이후에 해와 달과 별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혁명적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는 인간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었으나 코페르니쿠스 이후에 인간은 세상의 변방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세상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천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짐으로써 세상천지가 달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구속사적 관점과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의 관점 사이에는 이러한 차이가 있다. 성경과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구속사가 아니라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만물을 해석하는 범주가 크게 넓어져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세계의 모든 사건이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기독교과학의 정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경신학의 틀에서 살펴본 기독교과학은, ‘피조세계를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기 위한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온 천하 만물을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난 후, 성도의 가슴 속에는 감당할 수 없는 찬양과 찬송이 터져 나올 것이다. 기독교과학을 대면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가슴 터질 듯한 찬양이 필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과학의 총체적 결론은 ‘피조물을 통한 하나님 찬양’이다. 감동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없다면 그것은 기독교과학이 아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은 죽은 영을 가진 사람이듯이 창조주에 대한 찬양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과학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과 사랑이 모든 피조물에 깃들어 있는데 창조주의 그 근본 의도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기독교과학의 대상
성경신학은 성경이라는 분명한 교과서가 존재하지만 기독교과학은 물질세계와 물질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 전체가 교과서인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위로는 하늘을 만드셨으며, 아래로는 땅을 지으셨고, 그리고 그 땅 위에 모든 동물과 식물들을 채우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아(自我)를 가지고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모든 생물과 자신을 바라볼 때 이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과학의 대상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과학의 대상이다. 하늘의 별을 보면 천문학이 될 것이고, 땅을 보면 지질학, 동물을 바라보면 동물학, 식물을 바라보면 식물학, 인간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면 의학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교육도구이자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마다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여기 이 자리에 있는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진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하나님을 찬양할 주제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규모와 크기를 깨닫고 하나님의 한없이 크심과 전능하심을 찬양하고 땅과 바다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아끼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같은 대상을 보고 있지만 그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기독교과학은 이토록 일반과학과 다르다.
<다음 호에 이어서>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
성경신학적 기독교 과학 |
빅뱅이론의 발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