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5-07-12 18:4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창조(2)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다. 이것이 믿어지는가? 만일 이것이 진실로 믿어진다면 인생에서의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 인간관계 속에서의 갈등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들 그리고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저절로 해석된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다. 좁은 내 머리 속의 생각을 떠나본 적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생각의 여행을 떠나보자. 우리가 사람과 같이 생각할 수 있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고, 밖에서는 관찰할 수 있는 튼튼하고 큰 유리로 된 원형의 상자에 이 로봇을 넣어두었다고 하자. 로봇제작자는 로봇이 관심가질 만한 것들을 유리상자 안에 많이 넣어 두었다. 흙과 돌 그리고 물이 흐르게 하였으며, 나무, 풀, 장난감 그리고 천정에는 천체들의 모양을 딴 별과 달처럼 생긴 모형을 걸어 두었다. 이 로봇에 전원을 넣고 상자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놓아두었다. 그리고 이 로봇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기로 하였다. 로봇은 인공지능을 가졌으나 자신은 자신의 존재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자신은 존재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로봇은 자기 존재의 출발이 어디인지 궁금하여 자신의 몸을 만져보기도 하고 주변을 살펴보기도 한다. 흙을 파 보기도 하고 유리상자를 두드려 보기도 한다. 그리고 유리상자의 천정에 매달려 있는 별 모형을 보기도 하고 물을 먹어보기도 하며 나무를 흔들어보기도 하지만 속시원히 자신이 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로봇이 생각하기를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에서 출발되었을까?’, ‘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물음은 로봇 자신이 해결하려고 해도 그 해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로봇이 처한 상황은 현재 인생들 앞에 놓여진 상황과 동일하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놓여졌으며 그 존재의 기원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태어난 사람은 약 70억 명 중에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 과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자들의 노력은 매우 애처롭다. 로봇이 자신이 밟고 있는 흙을 파보고 자세히 보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자신들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을 한없이 쪼개어 보고 충돌시켜보고 분석해 본다. 국가들이 연합하여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만들기도 하며 우주공간에 망원경을 띄워 놓고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을 살피기도 한다. 흙을 아주 자세하게 분석하고, 멀리 있는 별에서 오는 빛을 분석해 본다. 그렇게 연구한다고 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복잡한 수식과 우주망원경으로 블랙홀을 연구한다고 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유리상자 안의 로봇이 벽을 두드리고 땅을 파헤쳐 보고 유리상자의 천정에 달린 별 모형을 아무리 뚫어지게 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바로 공자나 아인슈타인과 같이 인간 중에서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유리상자 안에서 본질적인 것을 알아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이 로봇은 자신을 알 수 있는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하여 지식의 습득경로를 살펴보자.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경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밖에서 안으로 유입되는 지식이다. 경험적 방법을 중시하는 귀납적 지식습득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유추하는 지식이다. 인간의 합리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연역적 지식습득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인간이 일상적으로 연구하여 얻을 수 있는 지식습득의 형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에 의해서는 결코 진리나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대한 유리상자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제아무리 오랫동안 연구하고 그리고 깊이 생각하고 거대한 규모의 연구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자 안의 진리일 뿐이다. 평생 동안 물(水)만 연구한 사람, 곤충만 연구한 사람, 미생물만 연구한 사람, 분자들만 연구한 사람 등 수많은 자연과학자들이 오늘도 이 피조세계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연구한다. 이들 자신이 연구하는 것을 통하여 진리에 이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학문을 연구하여 진리에 이르렀다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아무도 없다.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대단한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는 그보다 더 나은 과학적 성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진리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아무리 연구하여도 진리에 이를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인간이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딱 한 가지 남아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위로부터 우리의 머리와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로봇제작자가 유리상자의 뚜껑을 열고 ‘너는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상자 내부에서 지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것이 안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상자에 갇혀있는 이 로봇은 제작자가 뚜껑을 열고 알려주기 전까지는 도저히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제작자가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려 준다면,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아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 될 것이다. 가로막혀 있는 천정 건너편에서 벽을 넘어 전달된 주인의 메시지가 바로 성경인 것이다. 현대과학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경은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장 7절)
바로 이것이 우리의 주인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이는 자는 이미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이 듣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인의 책망을 각오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는 화가 미칠 것이다.
1절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성과 영광을 온 세상에 선포하셨으며 그 중에서 특별한 것을 성경에 기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통하여, 하나님이 전능자이시고 세상을 지금도 운행하시는 주관자이심을 보여주셨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로 성경의 어느 하나도 귀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욥기의 이 부분(욥 38:4~6)은 선지자나 사도를 통하여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러져 두려움과 떨림으로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을 지으셨다고 선포하고 계신다. 욥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욥기 38장 4~6절)
지구가 45억 년 전에 불덩이에서 서서히 식어서 오늘날과 같은 지구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그들이 지켜보고 있었는가. 그들은 그 때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45억 년 전에 불덩이를 보지도 못하였으며, 7억 년 동안에 걸쳐서 지구가 식어가는 것을 보지도 않았다. 45억 년 전에 불덩이가 식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과학적인 증거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과학적인 증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섬기기 싫어하므로 세상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땅의 기초를 놓으시고 그 도량을 정하였으며 모퉁잇돌을 놓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직접 설계하고 지으셨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욥기 38장 8~16절)
바다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선포하고 계신다. 그리고 바다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경계를 정하시고 더 이상 육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004년 서남아시아의 쓰나미로 인하여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과 2011년 일본의 동쪽에서 일어난 거대한 쓰나미를 본 사람이라면 바닷물의 침범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달이 지구와 조금 더 가까웠다거나 달의 크기가 현재보다 조금만 더 컸다면 지구에는 엄청난 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교대로 일어나서 2011년 동일본의 쓰나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하루에 두 번씩 지구의 전 육지를 쓸어버렸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지구의 육지 위에는 어떠한 육지 생물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바닷물의 침범을 한정하셨으며 우리는 거대한 쓰나미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지낼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살피기 위한 사랑과 자비에서 나온 것이다.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욥기 38장 31~33절)
묘성이란 천문학에서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The Pleiades?M45)으로 불리는 것이다. 과거에 이 별들은 우연히 겹쳐져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누구도 이들은 서로 묶여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들의 별들은 산개성단이라고 하여 서로간의 인력이 작용하여 하나의 단체로 행동한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성단(星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1781년, 윌리엄 허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까마득한 고대에 이미 이 별들은 그룹으로 서로 묶여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연속적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신다. 삼성은 오리온자리에 있는 세 개의 밝은 별을 가리키는데, 겨울 밤하늘을 관찰하고 있으면 쉽게 이 삼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세 개의 나란한 이 별들은 매우 밝고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별들은 항상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이 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욥아 네가 이것을 서로 떨어지게 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현대 천문학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 말씀의 진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세 개의 별들은 지구에서 볼 때는 연속적으로 나열되어서 같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부분에서 왼쪽부터 ζ Alnitak, ε Alnilam, δ Mintaka라고 하는데 ζ Alnitak는[1] 지구에서 약 800광년 떨어져 있고, ε Alnilam는[2] 약 1340광년 떨어져 있으며, δ Mintaka는[3] 약 915광년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위에서 본다면 거의 삼각형 모양으로 위치하고 있다. 즉, 이 별들은 항상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나 처음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별들을 처음부터 떼어놓으신 것이다. 오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두 궁성의 별자리를 배치하셨다고 욥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든 별들의 위치를 명하시고 모두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욥에게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알고 있느냐고 묻고 계신다. 우주와 그 천체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배치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땅을 만들고 하나님의 손으로 하늘을 펴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이사야 45장 12절)
오늘날 천문학은 거센 파도의 격랑 속에 빠져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보다 모르는 것이 오히려 늘어났다. 우주의 가속팽창,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심해우주에서 관찰되는 성인우주 등 현재 천문학에는 어지러운 현상만 존재하고 이것을 정리해 줄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가 지어질 때부터 하늘의 법도가 있는데 이것을 인간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빅뱅과 관계되는 것이다. 빅뱅으로 설명하려니 추가적인 가정과 가설이 점점 많아진다. 간단하다. 빅뱅이론을 버리면 된다. 애초부터 빅뱅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과 사소한 것을 직접 모두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욥기 38장 25~29절)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욥기 38장 41절)
오늘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일지라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온 끈질긴 생명체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진실로 신기하다. 야생의 그 험한 환경 속에서도 모두 추위와 극한 환경을 이겨내고 있으니 말이다. 까마귀가 먹을 것이 없어 부르짖을 때 그것들을 위하여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을 깊이 생각하면 진실로 놀라운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까마귀가 송충이나 나무에 사는 각종 벌레를 먹고 산다면 그 벌레들은 나뭇잎을 먹고 살 것이며 그 나무들은 광합성을 하여야 한다. 그 나무들이 광합성을 하려면 햇빛도 있어야 하고 공기도 있어야 하고 흙 속의 무기양분도 있어야 한다. 그 나무가 햇빛을 쪼이게 하시려면 태양이 필요하며, 태양이 빛을 주기 위해서는 핵융합반응을 일으켜야 하며,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수소와 핵 속의 쿼크도 적당하게 조정되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물질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까마귀의 먹을 것을 준비하셨다는 것은 온 세상을 하나님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창조하셨으며 오늘날도 그것을 주관하신다는 말과 동의어인 셈이다. 세상은 한 가지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수백만 가지의 배경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공룡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다. 자연주의 과학자들에게 이 공룡에 관한 문제는 미스터리이다. 자연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공룡은 중생대 동물로서 약 6500만 년 전에 멸종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사람의 출현은 충분히 오래전에 출현했다고 해도 500만 년을 넘지는 않는다. 공룡이 멸종하고 약 6000만년이 흐른 후 사람이 출현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룡과 사람은 결코 서로 살아서 만난 적이 없어야 한다. 자연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과학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다. 성경 중 욥기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지으신 짐승들 중의 으뜸이라고 하시면서 공룡으로 추정되는 동물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 막대기 같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칼을 가져 오기를 바라노라 모든 들 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내느니라 (바른성경 욥기 40장 15~20절)
위의 그림에 나타난 이 짐승의 꼬리를 보라! 백향목과 같은 엄청난 굵기의 꼬리를 자랑하고 있다.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것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다리와 꼬리와 허리에 엄청난 힘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자나 호랑이는 사람에 비하여 매우 크고 엄청난 민첩성과 용맹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 짐승과 크기를 비교하면 사자나 호랑이는 다리뼈 하나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짐승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지으셨다고 친히 말씀하고 계신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
(욥기 41장 1~2절, 18~22절, 33~34절)
위의 서술은 공룡의 특징과 대부분 일치한다. 욥의 시대에 공룡이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오늘날의 과학자들의 이론이 옳다면 성경은 틀린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책이다. 그렇지 않고 성경이 옳다면 오늘날의 자연주의 과학자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잘못되었으면서도 거의 맹신적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하여 말씀하셨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신다.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아는 데에 있어 인간의 증거는 필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하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유물과 화석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옳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공룡이 사람과 함께 살았다는 증거는 너무 많이 있어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이다.
먼저 캄보디아의 유명한 유적지 앙코르와트에는 놀라운 부조가 있다. 불과 수백 년 전의 유적에서 스테고사우루스의 모습이 발견된 것이다. 앙코르와트를 지었던 사람들은 스테고사우루스와 함께 살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은 이것을 두고 미스터리라고 한다. 미스터리가 아니다. 잉카제국의 사람들은 아예 트리케라톱스를 소처럼 타고 다녔으며 그 증거들이 많은 유적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멕시코의 아캄바로에서는 공룡과 소녀가 함께 노니는 장면의 흙 모형과 같은 것들이 약 2만개 이상 발견되었다. 심지어는 아직도 육질이 관찰되는 공룡조직이 발견되기도 하며 일본의 원양어선은 1977년에 남태평양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수룡의 시신을 건져 올려 사진으로 촬영한 바 있다. 이러한 유적들이 속속 드러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이러한 것들을 사람과 함께 지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하는 자연주의자들에게만 신비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 우주와 사람과 짐승들을 직접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하나님의 창조(3)
하나님의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