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만물의 상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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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공간의 상대성
Ⅱ. 시간의 상대성
Ⅲ. 만물의 상대성( 만물의 상대성, 물질의 상대성)
(이 글은 공간의 상대성, 시간의 상대성에 이어지는 글 이며 다음 글은 물질의 상대성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이러한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지구, 하나님과 태양, 하나님과 사단, 하나님과 토끼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과 성립되는 관계이다. 그 중에서도 공간도 상대적이고 시간도 상대적이다. 이것을 우리는 전편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그 외의 다른 것들도 이러한 특징이 있는 지 살펴볼 것이다.
사상의 상대성
사상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설을 예로 볼 수 있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것은 각각 어둠과 밝음을 상징하며, 음은 여성적인 것, 수동성, 추위, 어둠, 습기, 부드러움을 뜻하고, 양은 남성적인 것, 능동성, 더위, 밝음, 건조함, 굳음을 뜻한다.(그림 1.) 이를 이용하여 세상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여 왔다. 땅이 음이면 하늘은 양이고, 암컷이 음이면 수컷은 양이고, 겨울이 음이면 여름은 양이다. 음과 양이 만나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이것이 삼라만상을 이끌어간다고 설명해도 설명이 잘된다. 이러한 음양설과 오행설은 매우 유용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세상과 인간이 상대적인 존재이므로 이러한 음과 양의 사상과 잘 들어맞는다. 음과 양이라는 말은 상대적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 될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하여도 이 정도의 원리까지가 그들의 한계일 것이다. 사상에서의 상대적 특성을 보여주는 서양의 예로는 헤겔의 정반합논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정반합(正反合, these, antithese, synthese)은 헤겔의 변증법을 도식화한 것으로서 헤겔 본인이 직접 사용한 적은 없으나 헤겔의 이후에 그의 논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용어이다. 하나의 이론이나 명제가 주어지면 그것과 반대되는 반대의 이론이나 명제가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정(正)과 반(反)을 초월하는 새로운 이론이나 명제인 합(合)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때 정(正)은 애초부터 모순을 가진 상태에서 탄생이 되었고 이 모순을 지적하고 나온 것이 반(反)에 해당되며 정과 반의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논리적으로 온전한 상태의 새로운 합(合)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합(合)은 다시 새로운 정(正)이 되고 이것의 모순이 발견되면 새로운 반(反)이 등장하며 또 다시 이것들의 논리를 초월하는 새로운 합(合)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진리에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헤겔 이후에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래서 오늘날 변하지 않는 최고의 진리가 인간세상에서 발견되었는가? 결코 그러한 진리가 발견된 적이 없다. 오히려 정반합의 논리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진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정반합의 논리가 수백억 번 반복되어도 그것은 절대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이 사는 이 해 아래의 세상은 상대적이고 주인이 없는 세상이라서 아무도 진리를 발견할 수 도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다. 진리는 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일방적인 선물인 것이다. 이러한 음양오행설이나 정반합의 논리적 전개과정을 알아낸 철학자들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이 그렇게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 존재이므로 자연스럽게 상대성이론으로 드러난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라. 영원할 것 같은 웅대한 로마제국도, 전 세상을 집어 삼킬 것 같던 징키즈칸의 제국도 모두 쇠락하고 이제는 역사의 추억으로만 기억 될 뿐이다.
정치체제의 상대성
정치체제에서 드러난 상대적 속성은 민주주의이다. 과거 인류대부분은 왕정국가를 형성하였다. 특별히 예외적인 나라도 있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왕이 대부분의 권력을 갖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힘과 군사력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순종하였던 때와는 달리 점차 인간의 지성과 본성이 살아나면서 왜 귀족이나 왕만이 권력과 재물을 누려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고 도전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모든 인간들은 서로 동등하다는 민주주의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본래부터 상대적 존재이므로 이러한 상대적 본능을 따르는 정치제도는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민주주의제도를 따르고 있다. 한 권력자가 모두 자신을 신처럼 모시라고 하면 고대인들은 칼과 창이 무서워서 그 권력자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지만 오늘날에는 국민들의 지성이 깨어있으므로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그가 신이 아님도 분명히 알고 있고 그가 절대자가 아님도 알고 있으며 그가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음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전지전능하지도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한사람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고 오히려 부족하지만 자신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차선책의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상대적 존재임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예술의 상대성
이러한 상대주의는 예술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술의 세계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상대주의가 다다이즘이다. 다다이즘(dadaism)은 1910~192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반(反)문명, 반(反)전통적인 예술운동이다.(그림 2.) 이러한 예술운동은 서구의 문학과 각종 예술성 안에 있던 무정부주의적인 반항심 예술의 형태로 보여준 것이다. 다다이즘 안에는 전통적인 문명이 세계 1차 대전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는 강한 비판의식이 숨겨져 있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의 모든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의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하려고 했다. 이러한 운동이 현대문명에 녹아들면서 기존의 전통을 가볍게 여기고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상대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보고 느끼기에 즐겁고 기쁘면 그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슬플 때 슬픈 것을 표현하고, 미치고 싶을 때 광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상대적 속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무대 위에 피아노를 올려놓고 피아노를 치면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면서 공연을 한다. 도끼로 음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는 소리가 예술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몸에 페인트를 잔뜩 묻힌다. 그 뒤 화폭에 그대로 나 뒹군다 그러면서 나타난 무늬를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음악과 미술의 기존 양식을 여지없이 파괴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이러한 것을 보고 즐겁고 기쁘다면 이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전형적인 상대주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조세계와 피조물이 본래 상대적 존재이므로 상대적 특성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가치, 무의미, 비존재이다. 그러므로 참 존재자 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을 사모하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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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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