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존재와 비존재
2008 9 10 ù ϴ ִ Ŵ밭ڰӱ(LHC, Large Hadron Collier). ѷ 27km, ġ 100~175mƷ, 10, 10,000 ڿ 100 , ̿ ġ
내 손에 신문이 있다. 종이가 있다. 손이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왜 존재하며, 이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동양의 종교와 사상가들이 空卽是色 色卽是空(공즉시색 색즉시공, 텅 비어 있음이 곧 형형색색의 만물이고 형형색색의 만물이 곧 텅 비어 없음과 같은 것)란 구절에 빠져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물질에 칼을 들이대었다. 칼로 잘라보고 충돌시켜보고 태워서 분석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과학 문명이 성립하였다. 분석해본 결과 인류는 많은 정보와 현상 그리고 법칙들을 섭득하였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존재를 논하다
‘물질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결국 ‘질량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로 귀결이 된다. 질량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정의되기는 뉴톤의 시도가 최초이다. 뉴톤은 질량을 ‘어떠한 물체의 속도를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힘’과 관련지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질량의 크기를 서술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지 질량 자체를 알아낸 것이 아니다. 아직도 인류는 질량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질량의 사전적 의미는 ‘물체의 고유한 역학적 기본량’이라고 하는데 물질의 고유한 양이 무엇인가? 뭐가 이리 모호한 정의가 있는가! 뉴튼의 운동제2법칙이 ‘물질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운동할 때 이렇게 참고로 하라는 정도이다. 우리는 뉴톤법칙으로 물질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뉴톤 조차도 이 법칙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뉴톤법칙과 같은 것을 우리는 ‘경험식’이라고 하는데 ‘격어 보니 이러한 식으로 사용하면 모든 곳에 적용되더라’라는 경험에서 나온 법칙이다. 아인슈타인도 이 뉴톤의 법칙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반상대성이론의 마당방정식이 나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물질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이야기 해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현대과학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현대과학자들은 물질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분석하니 아무것도 없다
현재까지 과학들은 물질을 열심히 세분하여 관찰하였다. 그 결과, 놀라운 것은 물질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은 대부분 빈 공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원자들은 사실 텅텅 빈 공간이다. 우선 원자의 크기가 엄청나게 작다. 원자의 크기를 1억 배로 늘리면 탁구공만 해지고, 현실의 탁구공을 1억 배만큼 확대시키면 지구 만해진다. 그 작은 원자가 올림픽 경기장이라면 원자핵은 경기장 한 가운데 있는 모래알갱이만 하다. 나머지는 모두 비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원자라는 입자는 대부분 빈 공간이다. 사람을 원자핵 수준으로 수축한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즉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세상에 이 빈 공간을 다 없애고 꽉 찬 원자핵으로만 되어있는 물질이 있을까? 있다. 그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중성자성(원자핵으로만 이루어진 별)이다. 이 중성자성은 중력이 너무 강하여 원자가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찌그러들었다. 대부분의 공간이 사라지고 원자핵으로만 이루어져있다.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원자핵도 거의 빈 공간이며 그 속에는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성자도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하여 붕괴해버린 것이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중성자나 양성자도 성립하지 않은 극도의 물질 압축공간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 대부분 빈 공간을 보는 것이라면, 우리 눈앞에 있는 모든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허깨비를 보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나는 보는 것인가? 단지 빛을 내 눈이 흡수하는데 그것을 나는 왜 존재한다고 느끼는가?
결국, 상호작용만이 존재한다
입자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이나 힘은 겉보기 현상일 뿐이다. 근본적인 것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이다. 질량도, 물질도, 힘도, 맛도, 촉각도 중력도, 모두 입자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존재한다. 결국 존재하는 것이란, 입자와 파동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현상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손으로 책상을 만질 때 부드러운 느낌을 갖는데 이것은 입자들이 가상광자를 통하여 전자기적 상호작용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볼펜을 놓쳐 땅에 떨어지는 현상은 중력자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과학자들은 상호작용의 결과로 일반물질(페르미온)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힉스입자’라고 추정한다. 이 힉스입자에 대하여 증명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질량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가상적으로 도입한 입자이다. 따라서 인류는 아직 질량의 본질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물질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데 아직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이 중심이 되어 약100여개 나라가 협력하여 이 힉스입자를 발견하기 위하여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2010년, 아직도 힉스입자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물론, 힉스입자를 발견했다고 해도 물질은 본질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그림 참조)
믿음으로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질량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데로의 ‘물질덩어리’가 아니고 대부분 텅 비어있으며 우리가 꽉 차있게 보이는 것은 입자들이 서로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힉스입자의 발견 여부에 관계없이 ‘질량의 존재’가 어떠한 입자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대부분의 자연현상을 입자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현대과학은 ‘질량도 힉스입자의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상호작용의 근원을 알면 모두를 아는 것이고 상호작용의 근원을 모르면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자들의 상호작용의 근원이 무엇일까? 입자들이 스스로 존재하여 아무 외부의 간섭이 없이 독립적으로 어떤 원칙이나 법칙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운동하고 있을까? 성경은 이것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계시하셨다.(출애굽기 3:14) 이 세상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힘입어 피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사도행전 17장 28절) 과학자들은 물질을 끝까지 분해하면 존재의 근원을 찾을 줄 착각하고 있다. 물질이 무슨 법칙이나 원리에 의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줄 오해하고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을 아무리 분해하더라도 존재의 근본을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이 입자를 존재하게도 하시고 상호작용하게도 하시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셔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물질은 스스로 존재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자신들끼리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존재하게 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이 상호작용하게도 하신 것이다. 그 결과로 핵력, 전자기력 그리고 중력도 발생하는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하나님뿐임을 믿는가! 정말로 하나님만이 자존(自存)하시는 천지의 주재이심이 믿어지는가! 믿어진다면 우리는 이미 물질의 근원과 존재의 근본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지식은 거대한 입자가속기로 충돌시켜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들이 모여서 질량의 근원을 찾기 위하여 분주하게 애쓰는 모습을 보시고 웃고 계실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그토록 찾는 힉스입자의 별명은 ‘신의 입자’이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보기에는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신의입자이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
과학의 기준과 성경의 기준 |
한 송이 국화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