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기독교 예정론
Werner Heisenberg
ġ Ȯ ڿ .
오늘날은 인생들이 격었던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자유롭고 민주적이면서도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의 사상적 특징을 이야기하라면, 상대주의와 진보 그리고 불확실성등을 들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이러한 페러다임이 형성되기까지는 역사적으로 전환점이 되는 여러 가지의 사건과 뛰어난 사상가들은 선구적 철학이 있었다. 그러나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러한 시대적 사조에 분명하게 영향을 끼친 과학적 이론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과학원리중의 하나가 ‘하이젠베르크(그림1)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이 어떠한 물체의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철학과 사상 그리고 시대적 사상의 페러다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뉴톤역학이 등장하면서 결정론이 득세한 것과 같이 양자역학과 이 불확정성의 원리가 진실임이 밝혀지면서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사상의 흐름과 과학의 결과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뉴톤역학-절대주의-절대왕정’이 하나의 페러다임을 형성하였고 오늘날은 ‘양자역학(불확정성의 원리)-상대주의(포스트 모더니즘)-민주주의’가 하나의 페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우선 뉴톤시대를 살펴보자. 뉴톤역학과 산업혁명이 완성된 후 인간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몇 가지 역학적 법칙을 통하여 인간은 우주의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먼 곳에서 돌멩이나 포탄이 날아올 때 그 돌멩이의 위치와 속도(운동량)만 정확하게 알면 내가 있는 곳에 떨어질지 그렇지 않을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은 장비를 통하여 위치나 속도의 측정이 가능하므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 계산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으나 결국은 모든 물체의 운명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전지전능은 아니지만 전지(全知)자의 지위에 등극하게 되었다. 그 후 제어하는 기술을 알아내어 전지자에서 전능의 능력까지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그야말로 전지전능(全知全能)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과거 한 철학자(스피노자)는 ‘우주는 거대한 기계이며 인간은 작은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서술한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행복한 착각이다.
20세기초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자(electron)가 날아가는 것을 인간이 관측하는 상황을 살펴보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전자가 날아가는 동안 빛을 쏘아서 전자를 본다면 전자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그 전자는 교란되어서 그 진행방향과 속도(운동량)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그 전자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전지(全知)자도 될 수 없고 전능(全能)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어 버린 순간인 것이다.(그림 2)
온 세상에서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시며 나머지는 모두 그분의 피조물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전지한 상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 앎에 있어서 큰 강과 작은 실개천을 두셨는데 그 작은 실개천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인간에게 이 작은 개천은 태평양보다 더 넓은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이제 입장을 바꾸어 이 상황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서술해보자. 하나님이 전자를 날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인간이 관측하게 하시려고 광자를 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전자는 광자의 운동량을 받아서 방향이 달라지지만 그 방향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이다. 그리고 그 광자도 충돌 후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으로 달아난다. 한마디로 전자를 하나님이 날아가게도 하시며 광자와 충돌하게도 하시며 또 충돌 후 전자가 달아날 방향도 정하셨고 속도도 정하셨다. 전자의 상태를 모르는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자신이 모른다고 하나님도 모르신다고 착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확정성(完全確定性)의 원리’인 것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것들 중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중하다.(마태복음 10장 29절~31절)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참새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비유하시고 머리카락을 아주 사소한 것으로 여기셔서 사소하고 하챦은 것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모두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즉,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다. 그때 당시에 원자나 쿼크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성경이 조금 다르게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너희가 전자를 보라 전자가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전자의 파동성도 깨지지 않을 것이며 입자로 전환되지 않을 것이라. 아버지께서는 온 우주의 쿼크의 개수도 헤아리신 바요 글루온도 초끈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도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나님을 전능하다고 고백하면서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불확실한 세상’이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것이 초칼빈주의인가 이것이 초예정론 또는 초작정론인가? 그렇지 않다. 칼빈주의나 성경적 예정론이라는 것이 세상의 운행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아래 있고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는 것이 아닌가!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것이 결정론의 폐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모른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것이 인간 인식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성에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오늘날 불확정성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모든 서적과 사상가들은 결정론의 폐기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세상이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마음에는 안중에도 없는 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세상의 미래가 불확실하겠지만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미래이고 소망으로 가득찬 내일이 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들에게는 미시세계의 입자들이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서 운동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완전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는 입자들로 인식된다. 따라서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명확하게 운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
지층과 화석 |
우주의 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