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4-03-16 19: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소진화와 대진화

성경적 관점에서 본 과학(76)

banner

׸1. ȭ(macroevolution) ȭ(microevolution) 䵵
banner

׸2. ̾ ȭ 㱸

태평양의 한가운데 사는 작은 흰동가리가 있다고 하자. 이 작은 물고기는 때때로 자신의 환경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힘들며 그리고 자신이 속한 바닷물이 거대 해류를 따라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는 더더욱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물며 자신이 거대한 지구의 작은 부분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날 당장 자신의 먹이와 자신의 숨을 곳이 중요하다. 
 
  겉보기
  거대한 태평양 한 가운데의 작은 흰동가리가 자신의 먹이에 신경쓰느라 큰 바다 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의 제한적 능력 때문에 어떤 대상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인간이 잘 하는 것은 겉보기이다. 어떤 물체에 대하여 제일 먼저 관찰되는 것이 외모이다. 그 외모를 기준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인식하며 그것을 올바르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과학의 역사 속에서 허다하게 발견된다. 
  천동설은 제한적 관점에서 옳다. 지구에서 관찰하면 모든 것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듯하다. 그리고 진화론도 제한적 관점에서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생물의 외모와 구조 그리고 심지어 DNA 조차도 변한다. 진화론이 옳다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품종을 개량할 수도 있으며 유전적 특성을 조작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서 진화론을 믿는 것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속보기
  지구가 정지해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지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물의 외모가 조금 변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구에서 우주를 판단하는 것과 같다. 태평양의 작은 물고기가 자신에게 보여진 환경을 근거로 ‘모든 세상은 이와 같을 것이야’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겉보기에 충실하다. 그러나 이제 지구와 플랑크톤과 DNA와 그리고 사람의 뇌 등에 숨어있는 진정한 메시지를 들여다볼 때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장 20절) 
 
  성경은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겉보기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셨다고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제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아차릴 때가 온 것이다. 진화는 대표적인 겉보기의 실패 사례이다. 이것을 소진화와 대진화라는 주제로 살펴보자. 

  소진화와 대진화
  소진화(microevolution)는 작은 진화를 말하며 한 종이 종 내에서 여러 가지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진화하여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사람인데 과거의 사람에 비하여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진화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되었는데 그것이 왜 진화이어야 하는가? 이것은 소진화가 아니라 무(無)진화라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대진화(macroevolution)라는 것이 있다(그림 1). 이것은 한 종에서 더 진보된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단세포 생물이 전혀 다른 사자와 같은 생물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진화는 바로 이 대진화를 말하는 것이다. 
  1980년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시카고의 자연박물관에서 160명의 세계 최고 권위의 진화론자들이 모여 ‘대진화(macroevolution)’란 주제로 회의를 가졌었다. 그들은 회의 결론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그 회의에서 제출된 논문들을 묶어서 논문집으로 출판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 회의의 결과는 진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그러한 결론을 출판물로 확정 짓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윈(Roger Lewin)이라는 기자는 회의 내용과 몇 명의 참석학자들과의 대담 등을 종합하여 Science지에 발표했다(Science, Vol210, 21, Nov 180).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 제목은 ‘불타 없어져 가는 진화이론(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이다(그림 2). 이것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보고이다. 그 회의의 결론에 의하면, 소진화가 쌓여 대진화를 이룬다는 종래의 진화론의 기본 명제가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주요 논제는, ‘소진화(종 내에서의 작은 변이)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연장하여 한 종에서 더 진보된 다른 종으로 변화한다는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답은 분명히 “No”라고 결론지었다.

  성경과 소진화
  사실 소진화는 진화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노아홍수와 관련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피조물들을 심판하실 때에 여러 동물들을 방주에 태웠다. 그렇다면 나비는 몇 쌍이 탔겠는가? 개는 몇 쌍씩 탔겠는가? 수많은 나비와 개 등은 방주에 단지 한 쌍만 타면 충분하다. 방주에 올라탄 그것들이 자손을 번식시켜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나비와 개와 돼지와 딱정벌레와 개미가 만들어진 것이다. 굳이 그들의 용어로 부른다면 이것이 소진화이다. 그러므로 소진화는 당연히 있는 것이다. 있어야만 오늘날 지구에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종류가 어떻게 모두 방주에 올라타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노아심판이야기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고 주장한다. 소진화가 답이다. 방주에 올라탄 8명의 사람으로 인하여 오늘날 70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되었다. 70억 명은 모두 생김새가 다르게 보이나 결국은 노아의 후손일 뿐이다. 
  성경은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 온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어서 땅에 널리 퍼지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시카고 회의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 당시 모인 학자들은 창조론자들이 아니라 모두 진화론자들이다. 이들은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진화론에 접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학술적으로 진화론이 합당한지 진리 탐구 차원에서 접근한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 모인 학자들이 진화론에 대한  화석학적 증거들에 대하여 몰랐을까? 진화론에 대한 화학 진화설을 몰랐을까? 이 학자들이 진화에 대한 발생학적 증거에 대하여 몰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이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석학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자신의 신념에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결론을 내렸을까? 간단하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구해도 대진화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증거도 없는 이러한 이론이 오늘날 모든 대중적인 영향력과 권세와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단의 이론이 온 세상을 뒤덮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덮으려하는 엄중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태양계의 형성에 관한 잘못된 신념
하나님의 섭리와 지질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