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전통적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바르트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5. 계시의 비밀(Das Geheimnis der Offenbarung)은 “그리스도론의 문제”로 시작한다. 우리는 바르트가 문장에서 제시한 “성령 잉태와 동정녀 마리아 탄생”이 전통적인 견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에서 삼위일체를 오류라고 규정했고, 새롭게 교정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가 없는 신학에 “성령 잉태와 동정녀 마리아 탄생 교리”가 있을 수 없다.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도 삼위일체 교리가 오류가 있다고(KD., 136, GG., 160, CD., 124, if not as an error, at least as a lurking source of error in earlier Christian doctrine) 반복하고 있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2, § 13에서 계시의 객관적 가능성, § 14에서 계시의 주관적 가능성에 대해서 제시했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은폐된 사역과 계시된 사역으로 구분하며,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은폐된 것으로 부활을 계시된 사역으로 전제(Voraussetzungen/presupposition)시켰다(GG., 159). 반틸 박사는 바르트의 전제(presupposition)를 거부하는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를 밝혔다. 바르트는 자기가 설정한 전제로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구성시켰다. 바르트의 신학은 정통신학(Orthodoxy)이 아닌 신정통신학(Neo-orthodoxy)이다. 신정통주의를 정통신학에 근거한 새로운 신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은 부당한 이해이다. 정통신학에 근거한 새로운 이해는 좀 더 개혁된 신학이다(semper Reformanda). 신정통신학은 정통신학을 해체한 새로운 신학 체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Wer ist Jesus Christus?)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라는 정통 신학에 대해서 제시했다(GG., 159). 바르트는 고대 기독론의 특수한 진술(besonderen Satzgefües)로 평가하고, 인식 가능한(herrschend und erkennbar) 문장으로 보지 않았다. 인식되지 않은 명제들은 교회교의학으로 부당하다고 제시했다. 바르트는 그러한 기독론을 특수한 기독론(besondere Christologie)으로 제시했다. 바르트는 내용적 명제(inhaltliche Satz)와 형식적 명제(formale Satz)를 제시하면서, 성탄절의 기적,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을 형식적 명제로 규정했다(über das Wunder der Weihnacht, das heißt über Jesu Christi Geburt aus der Jungfrau Maria).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완전한 논의는 화해론 부분에서 진행하겠다고 제시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이중 주제(doppeltes Thema)를 다루기 전에 몇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첫째,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적 본질과 현존재를 선택하고, 거룩하게 하시고, 취하셔서 자신과 하나 된 존재로 만드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서 스스로 인간에게 선포되는 화해의 말씀이 되시기 위함이다”(GG., 161). 우리는 바르트의 신학을 죄 사함이 없는 신학이라고 정리하기도 한다. 앞에서 진술한 문장도 그러한 유형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본질과 현존재를 선택하여 하나 된 존재가 되는 구도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 명제를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로 지칭시켰다. 바르트는 비밀이 복음서의 기자와 사도들에 비추어 분명하게 할 수 있다고 제시하지만, 분명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바르트는 인간이 사고와 언설하는 유일한 대상을 지목하면서, 인간이 사고하는 언어를 결코 넘어설 수 없음을 지정한다(Grenzen des Menschen, GG., 162). 바르트(1885-1968)의 개념은 “언어의 한계(limit of language)” 개념을 제시한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1889-1951)에게도 있다.(참고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 Philosophicus)』, 1921). 바르트는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Ihre Grenzen)를 동등한 가치로 제시한다.
바르트는 인간의 한계를 제시하면서,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0?-1528)가 그린 이젠하임의 제단 그림(Isenheim Altarpiece)- 십자가에 관한 그림-을 연결한다. 바르트는 오히려 그림이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재로 제시하는 것 같다. 바르트는 그림에 신성에 대한 제시가 없는데 그리스도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GG., 163).
바르트는 정통 문장을 비밀을 지칭하는 속성을 지닌 것으로 제시했다. “참 하나님 그리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일성의 생성에 관한 옛 교회적 그리스도론의 핵심적 진술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서술과 함께 이루어지며, 이것은 풀 수 없는 비밀을 지칭하는 속성을 지닌다.” 바르트는 이 문장을 계시의 비밀(Geheimnis der Offenbarung)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양성에 관한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제시했다. 공의회는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한 믿음으로 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공적고백문장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바르트가 칼케돈 공의회에서 고백된 문장이 형식은 있지만 내용이 없다고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르트는 헤르더(J. G. Herder 1744-1804)가 옛 교회의 그리스도론이 지성주의(Intellektualismus)라고 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 바르트는 헤르더의 견해를 리츌이나 하르낙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방할 수 없는 신적 환영(göttlichen Phantom)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그것은 헬라적 감각과 사고에 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헬라적 신화 개념이 유입된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신성 체계가 아닌 그리스도 안의 인간적 본성에 대한 통일성으로 이해할 것을 제언했다. 결국 바르트는 칼케돈 신경의 그리스도 양성 교리는 계시 자체의 걸림돌에 부딪치는 것으로 제시했다(Er richtet sich gegen das in der Zweinaturenlehre der alten Kirche allerdings sehr schroff formulierte Argernis der Offenbarung selber. Die moderne Christologie will won Haus aus etwas ganz Anderes sagen als die altkirchliche, KD., 142, GG., 167). 바르트는 현대적 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이라는 내용을 옛 교회의 그리스도론의 형식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에 주입시키려 한다.
바르트는 예수의 육체적인 부활, 동정녀 탄생을 신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고 제시한다(GG., 169). 그것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언어의 표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정통신학의 신학 어휘(형식)를 인식 가능한 내용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적인 겸허”와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 앞에서 겸허”를 대조시켰다. 바르트의 신학을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라고 평가하지만, 신 중심 신학의 시발자로 평가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론을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로 규정했다(GG., 170). 바르트는 모든 사건을 유일회적으로 평가하는 합리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독특성을 부여하며,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일반성을 부여한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그리스도론을 대상을 고정시킨 용납할 수 없는 오류(Fehler/error)를 범했다고 평가했고, 고대 그리스도론은 세부적인 사안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형식은 보존했다고 평가했다.
바르트는 고대 그리스도론에서 제시한 “참 하나님과 참 인간”, “동정녀 탄생”은 형식으로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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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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