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탄절의 기적(1)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5. 계시의 비밀(Das Geheimnis der Offenbarung) 2. Wahrer Gott und wahrer Mensch “참 사람과 참 사람”이다. 바르트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마리아 교리라고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말씀이 육신이 됨”을 현실성(Wirklichkeit)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실성은 하나님의 활동이 인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는 예수가 신에게 철저하게 순종한 것을 성육신과 동등하게 평가하였다. 예수의 자의식 속에서 신과 연합된 구도로 보았다. 신의 자기전달(Gottes Selbstmitteilung/the selfcommunication of God)이 예수 안에서 실현된 것으로 이해하였는데, 바르트의 자유와 현실성의 개념을 더 사색적으로 진행시킨 것이다. 칼 라너는 바르트가 만든 “성탄절의 기적(das Wunder der Weihnacht/the miracle of Christmas)”을 유지하고 있다.
바르트는 계시의 객관성을 성육신으로 구성한 것은 기존 이해를 변경한 것이다. 통상 계시의 객관성의 선은 십자가로 구성한다. 필자는 계시의 객관성, 구원의 객관성이란 어휘를 동의하지 않는다. 바르트는 객관적 현실성(objektive Wirklichkeit)이라고 하였다(GG., 221). 다음 섹션에서는 주관적 현실성(subjektive Wirklichkeit)을 다루게 될 것이다. 바르트의 문장, Gottes Offenbarung in ihrer objektiven Wirklichkeit ist die Person Jesus Christus(KD., 187)로,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앞에서 바르트는 인간 예수에 머물고 있음을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인간 예수의 인격이다.
바르트는 여기에서 비밀(Geheimnis), 기적(Wun-der)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비밀이 기적이 되는 구도이다. 아마도 그것은 비밀이 대상이 되는 기적이라고 제시하고 싶다. 바르트는 계시를 인식의 대상(Gegenstand unserer Erkenntnis)으로 규정하였다. 바르트는 계시가 인간의 사고와 개념 안에서 파악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바르트는 계시를 인간의 사고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인식된 계시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상은 인격이 되어야 하는데, 바르트는 인식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바르트가 인식한 내용을 대상으로 세웠기 때문에, 누구든지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Möglichkeit)이 합리적으로 개방되었다. 인간이 이해한 인식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인식 안에서 객관적 현실성이 되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인간 인격 안에서 현실화된 지식은 모든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바르트는 성육신이 예수에게 실현됨으로 가능성이 개방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르트의 이러한 구도를 바르트가 개인적으로 세운 도식, 전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틸 박사는 바르트의 전제를 거부한 전제, 전제주의로 현대신학을 변호하였다. 반틸 박사의 전제주의적 변증학(presuppositional apologetics)은 정통 신학(삼위일체)에 근거한 성경의 사상에 근거하여 세웠다. 우리는 바르트가 예수를 인간 예수로 세우고, 그 인간 예수 안에서 발생된 신의 계시가 객관적 대상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예수에게 객관화된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이 된다. 그래서 예수는 화해자, 성령이 그것을 적용하는 구속자가 된다. 인식(Erkenntnis, 인지, 지식-knowledge)을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특이한 일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사건은 언제 발생했을까? 바르트는 사건의 날짜가 아니라 사건의 발생 성격에 초점을 두었다. 그것은 화해(Versöhnung), 신과 인간의 화해의 현재화이다(GG., 222).
성탄절 소식의 내용(der Inhalt der Weihbachtsbotschaft)은 인간을 향한 신의 계시와 인간을 향한 신의 화해가 나타난 것(Gegenwart/presence)이다. 바르트가 제시하는 성육신은 인간과 세계(Welt und Menschen)에 나타난 신의 계시라는 것도 특징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함께 하였다는 것(zusammenkommen)이다. 그리고 그 성탄절의 소식을 듣는 사람에게도 이해할 수 있다. 바르트가 말하는 대상 지식은 인식한 내용이며, 그 인식한 내용의 객관성도 한 사건, 예수 사건에 제한되고, 모든 각 사건에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들은 자에게 주어진 인식은 주관적으로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기독론적 대상을 “참 신과 참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그것을 경험한 인간이 인식한 내용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것이 신의 행동(Tat Gottes)이고, 현실성이다. 바르트는 현실성 안에서 인식의 가능성을 말할 수밖에 없음을 지시하는데(GG., 222), 역으로 표현하면 현실성 외에 다른 인식 체계에 대해서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신의 계시가 발생한 것을 현실성으로 규정하고, 그 사건의 때를 성탄절로 규정하고 있다. 1세기 어느 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를 성육신으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다. 계시를 인식할 수 있는 어느 날에 성탄절이 실현된 것이다.
바르트는 교리(Dogma)를 경험을 통한 인식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리를 성경 해석의 산물로 규정하였다(Dogma interpretierte Heilige Schrift). 바르트가 규정한 교리 개념은 정당하지 않다. 먼저 교리는 믿음 고백의 산물이다. 믿음은 인간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이성을 초월하며, 지식의 내용도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교리는 합리적 문장이 아니다. 경험을 통한 문장이 아니라 믿음 고백의 일치를 위한 문장이다. 그런데 교회의 권위로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규정하여 세운 문장이 교리이다. 둘째, 교리는 성경 해석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해를 규정한 문장이다. 바르트가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신인인격으로 규정한 존재론적 규정을 표현한 문장이다.
바르트는 신의 존엄성과 인간의 비참이란 두 대립된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는 것이 비밀(혹은 신비)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통일성(Einheit)은 이해가 가능하고 승인될 수 있고 고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GG., 223).
바르트는 교리가 이해 가능한 영역으로 규정하는데, 정통신학에서 교리는 이해 불가능한 영역의 문장이다. 바르트는 성육신을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신 사건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 된” 성경 문장을 신의 존엄성과 인간의 비참함의 대립이 통일, 화해되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통 신학은 말씀이 육신이 됨을 문자대로 말씀(Logos,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베들레헴 탄생으로 믿고 고백한다. 바르트는 예수 안에서 실현된 계시를 듣고 이해하는 고백하는 구도이다. 그 소식(message)의 전달 방식은 정통신학은 오직 은혜의 복음 선포로 전달되는데, 바르트는 소식을 듣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바르트의 성탄절에는 예수 나심이 없다. 다음에는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면서 동정녀 탄생을 주장하는 내용을 살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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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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