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3-07-05 09: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구약성경의 메시아 언약


구약성경은 여호와의 언약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언약한다. 이 주제의 깊이를 심도 있게 확인하는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성경의 주제를 확인하여 확증하지 못하면, 쉽게 흔들려 성경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 이 주제를 강렬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창세기부터 말라기서까지를 연결해 보고자 한다.


1) 창세기의 세 가지 언약부터

아담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메시아를 언약하기 위해서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바로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성경 전체이며 시작이며, 동시에 구약성경의 시작이다. 또한 섭리를 통한 언약(창~에)의 시작이다. 시작은 관점이나 방향 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대단히 크다. 성경은 더더욱 그러하다. 창세기에서 창조 목적을 성경대로 확인하면, 요한계시록의 심판목적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입체적인 관점에 중점을 두고서 본다면, 7일 창조는 아시아의 7교회와 7인(印)과 7나팔 그리고 7대접까지 매우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여기서는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해 두고 싶다. 창세기에서의 세 가지 언약은 아담에게 주어졌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表象)이다. 오실 자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시편 2편에는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아들을 언급하며 낳으셨다고 강조한다. 이 아들은 아담을 창조하면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에서, “우리”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었다. 이 복이 바로 세 가지다. 첫째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며, 둘째는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한 것이다. 셋째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모든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서의 명령문이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성경 해석에서 역사적인 해석과 신학적인 해석을 거치면서 논리적이고도 정당하게 풀리게 된다. 이 세 가지는 나라의 요소인 국민과 국토와 국권으로 정리된다. 창세기 17장부터 이 국민(자손) 언약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요셉에게 꿈을 넣어준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인간 자신의 두뇌에 꿈이 꾸어졌다고 해서, 그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는가? 이것은 선악과를 만든 목적과도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욥기에서 세 차례의 큰 논쟁은 결코 중구난방(衆口難防)식이 아니다. 너무도 논리적이며 입체적인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시편 150편은 메시아를 언약하기 위해서,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이 마치 마태복음의 직임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구약시대가 선지자 중심 시대와 왕 중심 시대 그리고 제사장 중심 시대로 되어 있는 것 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아가도 모두 이 메시아의 3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2) 말라기의 제사장 언약까지

이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을 매우 든든하게 정리해 놓았다. 말라기서의 마지막 문장에 큰 관심을 가져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 문장은 바로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이다. 이 문장 뒤에는 대선지서에 많이 기록된 것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내포되어 있다. “내가”는 창조에서의 “우리”와 동일하다. 단지 단수와 복수로 표현되었지만, 같지 않다고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그 땅”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그 땅이 아닌가? 학개부터 말라기서까지 “만군의 여호와”는 매우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구약성경을 정리하는 주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의미로서 강조되었다. 창세기의 “여호와 하나님”부터 말라기서의 “만군의 여호와”까지는, 같은 주제(主題)로서 강조되어 있다. 말라기서 2장에서는,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됨을 강조하고 있다. 3장에서는, 사자(使者)인 언약의 사자가 그 전(그 땅)에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이 언약의 사자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은, 4장의 “내가 와서”와 동일하다. 말라기서 앞에 위치한 스가랴서 9장에는, 王이 나귀를 탄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가랴서 14장에서는, “王 만군의 여호와”를 누차 언급하고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폐쇄적 종교에서 계시의 발생으로 전환
종교 폐지를 주장하고 자기가 상상한 교회를 제언하는 바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