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4-01-16 17: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사람보다 높은 하늘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6장까지는 오직 하나의 진정한 생명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 장(章)으로 잘 알려진 13장도 이 생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 15장에서는 부활을 증명하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고, 사람의 모양을 지니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다. 로마서는 시작하면서 사람처럼 죽으시고, 그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복음으로 강조하고 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남의 표현은 신약성경에 있다. 이 의미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서부터 많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은 바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의미와 떨어질 수 없는 내용이다. 또 말라기서의 4장에서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생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좌우하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에서 된(became) 것은 하나님 영인 성령에 의해서이다. 이 점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과 본질상 동일하다. 되다(become)는 자동사(自動詞)이다. “become”은 be와 come으로 되어 있다. 육신이 된 것에는 “……이다”와 “오다”의 두 가지의 뜻이 잘 어우러져 응축되어 있다. 말씀이 스스로 육신이 된 것이다. 본체가 육신을 입은 것(成肉身)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이루어진 것은 구약성경 전체의 성취이며 완성이다. 말씀이 육신(a human being)이 된 것은 신비(神秘) 중의 신비이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성령(holy spirit)으로 의(義)로우시다는 확증을 얻으셨다. 이처럼 신비롭고 복음 중의 복음이 된 것은,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을 따라오셨고 동시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죽었다는 것은 과거의 살았음에 기초하여 어떤 과정을 통하여 나온 결과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생명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생명이 바로 하늘이다. 이 하늘이 사람보다 얼마나 높은지를 눈비(snow and rain)까지 비교하여 강조해 보고자 한다.


1) 땅에 붙은 인간

사람을 인간으로 표현하면, 그 인간에 바로 공간과 시간이 밀착되어 있다. 땅과 때는 이 땅 위에 머무는 사람과 동반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땅과 때는 성경 전체에 각각 2000번 이상 나타나 있다. 그것들과 관련되는 것들을 합치면 상당히 많다. 땅이 때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용되는 것은 곳과 날이다. 사람은 직립보행을 한다. 한 걸음은 채 1미터도 되지 못한다. 한 발짝을 디딜 때도 다른 한 발은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 두 발이 다 공중에 있다면 이동할 수 없다. 두 발을 공중에 두고 이동하는 것은 새이다. 잘 때에는 몸 대부분을 땅에 붙여야 한다. 땅에 기반을 둔 인간에게 잠(sleep)은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들은 대부분 하루에 잠을 자는 데 거의 매일 삼 분의 일을 들여야 한다. 잠(sleep)은 “스르르”와 “lip(입술)”을 연상시킨다. 잠은 바로 이목구비인 얼굴 전체와 밀접하다. 귀에 소리가 들리면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잠이 눈과 코와 입에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가! 인간은 땅에 본능적으로 소망을 두기 때문에, 하늘을 사모하거나 소망을 두는 것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2) 눈비 위의 하늘

하늘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주기도문 출발도 바로 “하늘”이다. 이 하늘은 생명과 연계하면 머리에 비유되며, 존재로 보면 근원이다. 이 근원의 존재성은 영(靈)적이다. 이 영(spirit)에서, “pi” 소리는 비(雨)에 연계되어 연상된다. 비 우(雨) 자를 보면, 하늘 천(天) 자가 빗방울을 위에서 내리며 또 담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소리(口音)를 거론하는 이유는, 땅에 붙어 있는 인간들이 노아 때의 홍수(洪水)와 같이 큰 비에 대비하기 위해 성과 대를 하늘에 닿도록 하고자 했던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하늘은 시편 다음으로 요한계시록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분량을 비교해서 보자면, 성경 전체에서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모두 비와 우박과 지진 등과 밀접하다. 눈과 비 등이 내리고 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눈과 비와 지진 등은 성전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눈과 비는 신체의 위인 머리에 먼저 떨어진다. 이 하늘은 극히 높기 때문에 땅과 상대적으로 비교될 수 없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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