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제5장 면죄부와 연옥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3권
제5장 면죄부와 연옥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5)는 한 구절의 말씀에 기초해서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연옥에서 불로 정화의 단련을 받아 죄 값을 치러야만 천국으로 입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들의 성경해석은 맥락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결과로서 연옥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법인 것이다. 바울의 논점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으면’에 강조점이 있으며, 여기에서 말하는 불(火)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판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은 건축물은 심판 때에 불로 태우는 것과 같이 소멸될 것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진 건축물은 불 가운데서도 견고히 보존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되거나 모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연옥에서 죄 값을 치러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2:59)는 성경을 근거로 제시한다. 여기서도 한 구절을 인용하기보다는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2:57~59)는 문장을 하나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 말은 예수께서 심판의 사실을 경고하시면서 옳은 것을 판단하지 못하여 옥에 갇힐 염려를 하라는 질책하시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박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예수께서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옳은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믿는 것을 뜻하고, “너를 고소할 자”는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자기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곧 예수님이 외식하는 자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고소하므로 영원한 지옥에 갇힐 것을 염려하여 예수님 자신을 붙잡아 빌라도에게 끌고 가는 도중에 놓아주도록 힘쓰라고 외식하는 자에게 당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준 죄의 값을 다 갚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곳이 지옥이라는 뜻으로서, 다시 말하면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위의 글에 나타나듯이, 그리스도를 부인한다거나 그를 정죄한 죄 값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최종적으로는 지옥의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을 뜻한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연옥에 가서 죄 값을 다 치르면 나올 수 있다는 자의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1:23)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어떤 자들’은 바로 앞의 구절에서 보면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유 1:22)는 뜻으로서, 현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게 하여 불같은 세상권세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그런데 그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는 말을 엉뚱하게 연옥의 불길에서 죄 값을 치르게 한 다음 구원해 내야 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와 같이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의 연옥설은 성경해석상의 오류가 명백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의적이며 인위적인 해석임을 확고히 한다. 더군다나 인간의 죽음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됨을 뜻하는 것인데, 영육(靈肉)은 시간차가 없이 분리되며 낙원과 음부로 구분되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의 죄까지도 속죄하는 미사를 드리는 주술(呪術)적인 행태를 교리로 채택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행동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더 나아가 11월을 위령성월로 지정해 죽은 자들을 위한 위령 미사 등을 통해 교리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죽은 영혼은 확정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으며, 이 세상에 올 수도 없음을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고 말씀한 바 있다. 낙원과 음부는 서로 왕래할 수 없으며, 인간의 영혼은 창세전부터 이미 천국과 지옥으로 확정되었고, 한 번 정해진 영혼의 상태는 어떤 방법으로도 전환(轉換)되거나 이동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예정섭리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이나 사제들의 기도로 바뀔 수 없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교황이나 사제들의 기도와 성사를 통해서 영혼의 처소를 이동시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와 같은 교리는 하나님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사상으로서 비기독교적이라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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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 (대구동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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