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종려나무 이야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신 8:7∼8). 신명기는 요단 동편의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모세가 마지막으로 했던 고별 설교 모음집이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으로 본격적인 정복전쟁을 하기에 앞서 주어진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성격을 띠고 있다.
본문에는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을 대표하는 7개의 작물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보리와 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름 실과들이다. 이는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감람), 그리고 꿀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언급된 ‘꿀’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스라엘에서는 꿀도 여름 실과에 속하는 것일까?
가나안의 대표적 작물로 언급된 7개의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식물이 아닌 것이 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꿀이다. 이 꿀에 대한 해석을 놓고 성서가 태어난 본 고장의 유대인들은 우리들과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바로 종려나무 열매인 대추야자로 만든 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추야자를 영어로 ‘date’라고 하며 대추야자를 졸여서 만든 대추야자 꿀을 ‘date honey’라고 한다.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은 대추야자 꿀을 즐겨 먹었고,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대추야자 꿀은 아침마다 유대인들이 즐기는 토스트에 발라먹는 대표적인 잼 가운데 하나다. 성서시대 유대인들에게 대추야자 꿀은 그냥 줄여서 ‘꿀’로 통했고, 이 꿀이 문맥에 따라서 벌꿀을 의미할 수도 있고, 대추야자 꿀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 길에 나오는 ‘욧바다’라는 곳이 있다(민 33:33). 사해를 따라서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한 에일랏 항구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이 곳은 현재 대추야자 꿀로 유명한 키부츠(집단농장)와 함께 이들이 직영하는 휴게소가 있어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대추야자 꿀을 전부 먹어 보았지만 이스라엘 욧바다 키부츠의 꿀이 그 중에 최고였다는 여행 매니아들을 종종 만나 보았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묘사하는 시적인 표현 가운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 작가들의 작품에도 종종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나온다. 성경에 18회 가량 등장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가나안 땅에 양과 염소의 젖과 벌꿀이 널려 있다는 문자적 의미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꿀 가운데 벌꿀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유대인들에게는 삼손의 이야기와 요나단의 이야기에 나오는 꿀과 함께 잠언에 나오는 경고만이 실제 벌꿀로 인식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젖’은 우유를 생산하는 양과 염소들이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초장을 의미하고, ‘꿀’은 대추야자 꿀과 같이 단 여름 과실을 생산하는 과실수들을 의미한다고 유대인들은 해석한다. 즉 ‘젖’으로 대표되는 목축업과 ‘꿀’로서 대표되는 농업이 조화를 이룬 곳이 바로 가나안 땅이라는 해석이다.
성경에서 여리고는 종려의 성읍이라는 별칭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여리고 도시가 해발 -250m에 위치해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를 보이며 샘이 많은 자연적 환경으로 인해 종려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종려의 성읍인 여리고를 보았는데, 지금도 날씨가 좋으면 요르단에 속한 느보산 정상에서 요단강 서편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여리고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사사시대에 모압왕 에글론은 국경을 넘어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종려의 성읍인 여리고를 점령했지만, 하나님은 왼손잡이 사사인 에훗을 세우셔서 이를 격퇴하셨다. 현대 이스라엘의 총리 중 한 명의 이름도 본문에등장하는 에훗이다. 그가 바로 중국 태생의 유대인인 에훗 올메르트이다.
로마시대에 여리고의 종려 농장은 클레오파트라의 소유였다.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인 옥타비안과 정략 결혼을 한 안토니우스는 레피두스를 끌어들여, 줄리어스 시저의 죽음으로 끝난 로마에서 2차 삼두정치(troika)를 재개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한 안토니우스는 결국 옥타비안과 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했다. 안토니우스는 여리고의 종려 농장을 자신의 부인이 된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 주었고, 이런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된 헤롯대왕의 최고의 정적이었다.
권력보다는 사랑을 택한 안토니우스는 결국 옥타비아누스와의 진검승부를 벌여야 했는데, 악티움해전(주전 31년)에서 맞붙은 두 사람의 결투는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끝나고 클레오파트라가 자결을 하면서 이집트 역사는 로마 제국의 변방의 역사로 편입되었다.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여리고를 자신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한 헤롯에게 넘겨주었다. 헤롯은 이곳에 여름 별장을 지었고 이곳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현대 이스라엘을 여행하다보면 최남단의 항구도시인 에일랏에서 사해를 따라 북쪽의 갈릴리로 올라가는 요단 계곡의 평야에 즐비하게 늘어선 종려나무 농장을 자주 보게 된다. 요단 계곡 자체가 해발 -200m에서 -400m로 낮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연중 따뜻한 날씨를 보이며, 이런 날씨에서 자라는 이스라엘의 종려나무 열매는 무척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현대 이스라엘의 요단 계곡 광야에서 보면 대부분의 종려나무 농장들은 물을 끌어다가 쓰지만 성경 속에 등장하는 종려나무는 전혀 달랐다. 성서시대에 광야를 여행하다가 멀리서 ‘종려나무’가 보이면 반드시 그 근처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오아시스 곁의 종려나무 밑에서 종종 캠프를 쳤기 때문에, 광야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종려나무는 무척이나 친근한 나무였다. 마라의 쓴물 사건 후 엘림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12개의 오아시스와 70그루의 종려나무를 보았다. 광야의 40년을 기억하는 초막절의 절기에 유대인들이 흔드는 4가지 식물 가운데 종려나무 가지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광야의 추억을 바로 떠올려 주는 나무가 종려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