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나무, 상수리나무 이야기
호도는 히브리어로 ‘에고즈 멜렉’이라고 한다. ‘에고즈’는 땅콩, 잣 등과 같은 모든 ‘견과류’를 통칭하는 단어이고, ‘멜렉’은 왕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호도는 히브리 원어적으로 왕께 바치는 진상품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도의 모양이 사람 머리의 뇌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호도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호도는 전혀 다른 상징과 문화가 깃들어 있다.
호도의 단단한 껍질과 그 안의 내용물이 단단하게 얽혀 있는 모양을 통해, 유대인들은 ‘결혼생활의 화합’을 상징하는 열매로 본 것이다. 아가서의 저자는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을 만나러 왜 ‘호도동산’으로 내려갔을까? 이는 바로 호도열매가 유대인들에게 남녀간의 사랑, 특히 결혼한 부부의 끈끈한 결합과 화목을 상징하는 열매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성서시대 유대인들의 결혼식에서 신랑을 향하는 신부 행렬에 호도를 던지며 축복하는 풍습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전통의학에서 호도는 중풍으로 인한 전신 또는 반신마비에 사용된 약재이다. 호도 잎을 진하게 갈색이 될 때까지 달여서 몇달동안 이 물을 섞은 물로 목욕을 함으로써 마비증세를 치료했다고 한다. 또한 장내 기생충 제거를 위해 호도를 튀겨 먹거나 포도주에 호도 잎을 담가서 마시기도 했다.
상수리 나무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 산지에 자라는 ‘일반 상수리’와 북쪽의 다볼산을 중심으로 자라는 ‘다볼산 상수리’로 나뉜다. 일반 상수리는 히브리어로 ‘나아쭈쯔’라고 하는데, 이는 압정을 뜻하는 ‘나아쯔’에서 온 단어이다. 일반 상수리의 잎이 잎사귀 주변에 가시가 많아서 자칫 찔리기 쉬운데서 유추된 단어라고 한다.
이와달리 다볼산 상수리는 그 잎이 가시처럼 뾰족한 부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다볼산 상수리는 히브리어로 ‘나할롤’ 또는 ‘나할랄’이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도시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시온의 찬란한 회복을 노래하는 이사야 55장에는 ‘가시나무’가 등장하는데 이는 잎사귀가 많은 일반 상수리인 ‘나아쭈쯔’를 의미한다. 우리말 번역 성경에는 모두 ‘가시나무’로 번역되어 있지만 그 히브리 원어를 모르면 전혀 다른 나무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유다 산지의 삼림에 가장 무성한 나무가 일반 일반 상수리나무다. 메시아의 날에 시온이 회복되면 일반 상수리나무(가시나무)를 레바논의 잣나무가 대신할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여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사 7:18∼19).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과 아람의 르신 왕이 연합해서 남유다의 아하스 왕을 공격할 때인데, 사면초가에 처한 남유다로서는 최대의 위기 상황이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베가와 르신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며 하나님을 굳게 의지할 것을 권고하셨다(사 7:4). 그러나 아하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강대국 앗수르의 힘을 빌어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를 아신 하나님은 또다시 이사야를 통해 북쪽의 강대국 앗수르의 개입은 또다른 강대국인 애굽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고, 결국 둘 사이에 낀 이스라엘은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초토화될 것을 경고하셨다. 애굽 하수에서 온 ‘파리’와 앗수르의 ‘벌’은 두 강대국을 가리키는 말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연기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한 두 강대국을 조롱 섞인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본문에 이스라엘 전 국토가 애굽과 앗수르의 군대로 가득하여 초토화될 것을 표현하는 비유 가운데 히브리어를 아는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는 식물의 비유들이 나온다.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은 네게브 사막과 광야로 이루어진, 즉 골짜기와 바위가 많은 이스라엘의 ‘남부’ 지방을 가리킨다. ‘가시나무 울타리’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아쭈쯔’로 되어 있는데, 이스라엘 ‘중앙’에 위치한 유다 산지에 많은 일반 상수리 나무를 말한다. ‘초장’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할롤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북부에 많은 다볼산 상수리나무를 말한다.
이사야는 ‘혼미하게 하는 영’을 보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듣고 ‘주여 어느 때까지 입니까?’라고 물었다. 이 때 하나님은 유다가 완전히 황폐화될 때까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완전한 황폐화와 함께 거룩한 그루터기의 소망을 말씀하시는데, 이때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의 비유를 들고 있다. 그러면 남은 그루터기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루터기의 소망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잎’과 관련된 비유이다.
우리말 성경에 밤나무로 번역된 나무는 히브리어로 ‘엘라’라고 하는 나무다. 엘라는 11월경 초록색이던 잎에 노랑, 빨강의 단풍이 들어 이스라엘 산지를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나무다. 11월경 단풍으로 물든 엘라는 이스라엘 나무 중 두드러지는 최고의 영광을 상징하는 나무다. 그러나 그러한 엘라 잎도 오래지 않아 모든 영광을 뒤로 한 채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이처럼 웃시야 왕 때 남유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유다의 찬란한 영광이 문둥병으로 죽은 웃시야와 함께 쇠퇴의 길을 맞게 되는 것이 마치 엘라의 잎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수리나무를 같이 언급하셨는데, 이는 상수리나무 잎의 독특한 특성을 알 때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상수리나무 잎은 엘라처럼 화려한 단풍은 들지 않지만 기존 잎이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새 잎의 순이 함께 나온다. 그래서 결코 앙상한 가지만 비참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없다. 이로써 멸망이 끝이 아니고 멸망과 함께 새로운 희망이 그루터기와 같이 남아 있음을 그 잎으로 웅장하게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