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담과 가시나무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세겜 주민들을 향해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외친 요담의 ‘나무의 비유’는 잘못된 왕을 추대한 백성들이 당하게 될 고통과 비참한 결과를 암시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를 순서대로 찾아간 나무들은 세 나무들이 자신들의 왕이 되어 줄 것을 모두 거절하자, 마지막으로 찾아간 나무가 가시나무였다. 가시나무는 자신을 기름부어 왕으로 삼고자 하는 나무들에게 왕이 되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이는 가시나무 그늘 밑에서 편하게 쉬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수하에 들어 철저히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라’고 위협과 협박을 하고 있다.
왕정체제의 허와 실
사사기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배경으로 ‘누가 진정한 왕인가’를 다루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이방 국가들은 왕을 세워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열두지파 체제를 고수하며 국가적 위기의 때에만 사사들이 등장해 다스리는 철저한 지방분권 정치를 펴고 있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는 신정국가를 세우기를 원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주변 왕국들의 위협 앞에 자신들도 열방처럼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왕의 제도가 갖는 실상과 허상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면서 그래도 왕을 원하는가 하고 백성들에게 물었다. 왕을 세우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위한 군대에 강제 징병당할 것이고 과중한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왕이 자신들을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왕정’ 자체가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희생과 출혈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왕정체제
기드온의 아들로서 자신의 형제 70명을 한 바위 밑에서 모두 죽인 아비멜렉은 인면수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다. 가시나무가 온통 가시로 덮여 있듯이, 아비멜렉은 악한 행위로 덮여 있었다. 그는 결코 선한 왕과는 거리가 먼 악한 자였지만, 세겜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비멜렉을 옹립한다. 가시나무는 철저히 자신의 수하로 들어와 복종할 것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 백향목을 다 태워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 가시나무에서 나온 불이 레바논 백향목을 태워버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가시나무와 백향목이 자라는 지역을 알아야 한다. 두 나무는 서로 다른 지형에서 자라는 대조적인 나무다. 가시나무는 주로 평지에서 자라고, 백향목은 산지에서, 그것도 이스러엘 북쪽의 레바논 국경 산지에서 자란다. 그런데 가시나무에서 나온 불이 레바논 백향목을 태워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잘못된 왕을 세운 파급효과가 전체 이스라엘 국토에 미칠 광범위한 재앙을 초래할 것에 대한 상징이었던 것이다. 가시나무의 불이 이스라엘 전 국토와 함께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경계인 레바논 산맥에까지 미쳐 그 곳의 백향목까지 태워버린다니… ‘왕정’이라고 하는 이방의 국가체제가 가지고 있는 실상과 허상이 잘 보이는가?
또 다른 가시나무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의 또다른 후보로서 ‘이크샤트’라고 하는 나무가 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아타드를 요담의 가시나무 후보로 보지만, 이스라엘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시나무가 이크샤트이기 때문에 종종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크샤트와 구별되는 아타드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성서 본문에 부합되는 나무가 바로 아타드 밖에 될 수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크샤트는 ‘활’을 의미하는 ‘케셰트’에서 온 단어인데, 이는 이크샤트의 생긴 모양 자체가 활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지들이 얽히고 설켜서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정적을 유지하는 독특한 나무이다. 보통 0.5-2m까지 자라는 이크샤트는 성서시대에 효과적인 담장으로 사용된 나무이다.
가시가 많아 이스라엘에서도 가시나무로 불린 이크샤트가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로 이크샤트는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아타드와 달리 그늘을 제공하지 않는다. 성경의 가시나무는 ‘내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말했는데, 이는 가시나무가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특성이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로 이크샤트는 가지에 수액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불이 붙지 않는다. 가지 끝에 불을 붙여도 그 불이 끝까지 타들어가지 않고 중간에 꺼져 버린다. 이와달리 아타드는 불을 붙이면 나무 전체가 금방 타들어가고 주변의 나무들까지 삽시간에 태워버린다. 이런 이크샤트의 특성은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레바논 백향목을 태운다’는 성경본문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긴 장례행렬이 한번 쉬어가는 정거장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히브리어로 ‘아타드’라고 한다. 이는 요단계곡과 평야를 중심으로 잘 자라며 큰 나무로 자라 넓은 그림자를 제공해 주는 나무다.
성서시대에 밀밭 사이에 주로 자라던 아타드는 추수하는 농부들의 좋은 휴식처였다. 지금도 아랍 속담에 ‘아타드 그림자 밑에서 먹고 낮잠을 잔다’는 말이 있는데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아타드에 대한 상징이 현재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장례행렬은 죽은 장소에서 무덤까지 향하는 중간에 몇번 쉬는 장소가 있는데 이는 주로 야타드의 나무 밑이었다.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야타드는 긴 장례 행렬이 한번씩 쉬어가는 좋은 정거장 역할을 할 것이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의 동쪽인 고센 땅에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시체를 그의 유언대로 조상의 무덤이 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묻기 위해 긴 장례 행렬이 출발했다. 이때 이스라엘의 헤브론으로 향하던 야곱의 장례 행렬은 요단강을 건넌 후 아닷 타작마당에서 쉬었는데, ‘아닷’은 바로 아타드 나무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가시면류관
야타드는 가지의 수많은 가시들로 인해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을 만든 나무의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그래서 히브리어 이름으로 야타드인 가시나무는 일명 ‘Christ’s thorn’으로 불린다. 정확한 학명은 ziziphus spina-christi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