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7-07-30 20: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셋. 말씀운동의 역사와 미혹의 영: 중세를 세속 철학의 미혹에 버리시다


3. 스콜라 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충견(忠犬)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고전 1:20)

인용한 구절은 매우 놀라운 의미를 담고 있다. 당대 모든 사상에 능통했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2천 년 전에 선포하고 있다. 유대주의뿐 아니라 헬라철학도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만든 거짓이며 허구라고 폭로한다. 이른바 서양철학의 역사는 위의 인용 한 마디에서 이미 심판을 받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존하는 서구 철학, 특히 중세 철학과 나아가 로마 가톨릭 사상은 하나님께서 쓰레기처럼 버린 미련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종교개혁 서광의 배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중세 후반기를 더욱 캄캄한 암흑기로 몰아가시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세 유럽의 종교 문화를 이끌어왔던 곳은 처음에는 베네딕트 수도원이었다. 그러나 11세기 성당 소속의 고등교육기관이 발전하면서 수도원 교육은 그 자리를 내어준다. 그런데 성당 소속 교육기관의 중요한 업적(?)이라면, ‘성경 해석’에 의한 체계를 갖춘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의한 인본주의로 결론이 나는) ‘신학’이라는 발명품이다. 1120년 파리 신학자 피에르 아벨라스(Peter Abelard)는 자신의 책 제목을 ‘기독교 신학’(Theologia Christiana)이라고 하면서 신학 개념을 일반화한다.
그런데 성당 부속 교육기관 외에도 이탈리아의 큰 도시에서도 11세기부터 고등교육기관을 세웠는데 그것은 이슬람 교육기관인 카이로의 ‘알-아자르’의 강의법, 교수, 학위 등의 제도를 모방했다. 11세기 이러한 환경이 ‘최초의 기독교 대학’(104)이 된다. 그리고 12세기에는 파리대학이 유럽 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중에 소르본느로 알려지는 파리대학의 신학부는 신학적 논쟁에서 교황들을 위한 자문기관 역할을 한다. 이는 이슬람 종교법 학자들이 이슬람 통치자에게 자문했던 방식을 빌려온 것이다.
그런데 중세의 신학대학이 이슬람에 신세 진 것은 제도와 방식보다 더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이전까지 서구 신학은 플라톤 사상이 지배했다. 하지만 11세기는 이슬람 학자들과 이들이 보호했던 유대인 사회가 함께 소유하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지식이 스페인으로 그리고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제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12세기 르네상스’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적 방법과 논리적 사고의 탁월함에 라틴 기독교는 놀랐다. 그래서 12~3세기 중세 기독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된다. 교황 중심의 거짓 교회에 봉사하는 충견인 중세신학은 동시에 고대 그리스 철학의 충견이 되어 두 주인을 섬긴다. 이것이 바로 ‘스콜라주의(scholasticism)’ 혹은 ‘스콜라 철학’이다.
‘스콜라’라는 말은 라틴어로 학교를 뜻한다. 정확하게 정의하면 ‘거짓 교회에 봉사하는 비성경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토론을 통한 지식 습득을 위한 방법 정도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반드시 스콜라 철학의 방법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언어를 사용하면 토론과 논쟁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독교 대학이나 서구 대학이 스콜라적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 성경 진리에 나타난 탁월한 논리적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는 경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스콜라철학은 후에 종교재판을 주도했던 세력인 도미니크파 수사들에 의해 교황권리를 옹호하고 교황 반대파를 색출하는 데 악용된다. 교황 권력에 도전하는 자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종교재판에 세우는 교황의 충직한 부하였던 도미니크파 수사들은 ‘주님의 사냥개(Domini canes)’로 불렸다.(110)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무장하여 종교재판을 이끌면서 수많은 대적자들을 정죄하고 화형에 처하면서 교황의 충실한 사냥개 노릇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1215년 제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 교리 중 ‘화체설’을 조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화체설은 빵과 포도주가 몸속에서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인간의 영혼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한 결과가 화체설이다. 인간의 몸은 유한하며 결국 소멸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유한한 몸속에 변하지 않는 불변의 ‘이데아’가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한다. 비록 이 세상에 속한 몸이지만 그 몸을 이끌어가는 불변의 어떤 구체적인 인자(因子)가 인간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구조를 모방하여 사제(司祭)는 화려하게 꾸며진 보관함에서 ‘성체’를 꺼내 (곧 사라져 버릴 물질이지만) 신도의 몸속에 넣어준다. 그러면 신성한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 된다. 그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악용한 말장난이며 종교적 사기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결국 13세기 도미니크회 수사 토마스 아퀴나스(1124~1274)에게 와서 절정을 이룬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데 정열을 쏟았으며 더 큰 업적(?)은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드리워졌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불신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아퀴나스에 의해 명실상부 아리스토텔레스는 로마 가톨릭 사상의 토대이며 기둥이 된다. 현재도 이러한 철학적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은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계승함으로써 자신이 세속 철학임을 스스로 수백 년 동안 자백하는 경우가 된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이데아론이 인간 본성이 타락하지 않고 이성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생생한 증거로 보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총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진술이다. 그리고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론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보고 하나님은 제1원인이고 그리고 인간은 그의 결과물로 보는 그야말로 인본주의적 신 존재 증명을 확립한다. 성경 계시에 의존하는 신 존재 증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철저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왜곡한다.
중세를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던 시대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학이 오히려 철학의 시녀였던 시대다. 중세교회가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바른 교회가 아닌 교황이 주인인 거짓교회였듯이, 중세의 신학도 신의 이름을 빙자한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 집단의 허구였다. 『신학대전』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을 둔 인본주의 사상을 마치 기독교 진리처럼 둔갑시킨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작품이다. 이른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고 날조한 ‘성체(聖體)성혈(聖血)’ 축제에 받치는 유명한 찬송시 ‘팡에 링구아’(127) 작성자도 바로 아퀴나스다. 이 곡은 로마 가톨릭 신도들이 『신학대전』은 몰라도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아퀴나스의 철학은 교황제를 논리적 구색을 갖추어 이론적으로 옹호해 주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로마 가톨릭의 근본 사상이 되고 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3백 년 전 중세는 더욱 암흑기가 된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용해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경진리의 본질을 철저하게 체계적으로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교황제의 폭력과 폭압도 그렇지만 이러한 인본주의 철학에 성경진리가 전체적으로 매장되었던 상황은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지 의심을 자아내는 암흑의 시기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며 이러한 암흑의 시대도 당신의 능력으로 섭리하고 계신다면, 이러한 암흑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성경 진리가 도저히 싹이 틀 수 없는 무서운 심판의 시대가 13세기부터 전개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37장에서 보여주듯이 뼈 무덤에서 새로운 자손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넣으신 놀라운 은총의 역사를 보여주신 것처럼, 이러한 암흑천지의 중세에서도 성경 진리의 광명이 떠오르게 할 시간을 준비하고 계셨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146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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