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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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5 20:2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존 요더의 윤리학


지난 호에서 필자는 “칼 바르트의 인간론”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 글은 바르트의 ‘인간론’을 신학적으로 다루고자 함이 아니었다. 단지 그 여비서와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 삶이 성경 윤리 곧 절대 윤리에 비추어 볼 때 온당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쓴 인간론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자는 의도였다.
이번에 다루는 “존 요더의 윤리학”도 마찬가지다. 성추행 문제로 물러난 사람의 윤리학은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존 H. 요더는 세계적인 신학자요 윤리학자다. 그의 사망 부고가 뉴욕타임스에 실릴 정도다. 그때 타임지는 “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존 하워드 요더(1927~1997)는 가장 영향력 있는 메노나이트 신학자일 뿐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꼽힌다. 그는 메노나이트의 대표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메노나이트 전통 안에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를 아주 작고 미약한 존재들로 여기는, 거듭거듭 현실성 없고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무시당해오면서 생긴 어떤 심리가 있었다. 루터파 사람들은 메노나이트들을 “종교개혁이 만들어낸 기형”이라고까지 말하곤 했다. 요더가 WCC에 초청을 받아 메노나이트 전통을 대표하게 되면서 요더에게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리처드 니버의 유형론에 따르면 분리주의 모델을 대표하는 재세례파-메노나이트들은 종교개혁 때부터 이미 조롱과 박해의 대상이었다. 요더는 이런 독특한 문화에서 출현했으므로 그의 기여는 단지 한 개인의 성취만이 아니라 재세례파-메노나이트들이 다양한 교회들에 제공할 수 있는 기여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능통했으며 학문적 관심은 매우 다양해서 신학, 윤리학, 사회과학, 성서학, 그리고 선교학을 아우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요더가 칼 바르트와 리처드 니버와 같은 그 시대의 대가들과 신학적인 논쟁을 시작했을 때 그는 겨우 30대였으며 죽을 때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대화를 전개했다. 로스는 또한 요더가 보여준 깊은 영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또한 요더는 아주 깊은 경건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 모습들은 거짓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깊은 기도를 했고. 그래서 이런 지적이면서 또한 경건함을 동시에 지닌 모습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이죠.”
그런 요더가 성폭행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까지도 요더의 성폭행의 진실은 감춰져 있었다. 지난 2015년 1월 <메노나이트 쿼털리 리뷰>에는 여성 역사학자인 레이첼 월트너 구슨이 쓴 “야수를 해가 없게 하다: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행과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이라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구슨의 이 논문이야말로 그의 성폭행 사건의 경위를 소개하는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 요더의 은밀한 이야기를 밝히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의 비행에 대한 매우 다른 해석들이 공존했었다. 예를 들자면, ‘여성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성적인 경계의 침범’ ‘성적인 비행’ 등으로부터 ‘성적 문제의 의혹’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요더가 벌인 일들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은 지난 세월 동안 이 사건이 얼마나 다양한 해석들을 낳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은 “요더와 피해자들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피해자들은 얼마나 존재하는가?”일 것이다. 1992년 8명의 여성이 다른 30여 명의 피해 여성들을 대표해서 메노나이트 교회 지도자들 앞에 나서서 자신들이 요더로부터 겪은 피해를 증언했다. 물론 요더가 완력을 사용했거나 여성들을 위협하지 않았지만, 요더의 ‘환영받지 못할 성적인 행동’은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구슨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요더의 징계절차의 한 부분으로 요더를 상담했던 두 명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증언을 기초로 100명 이상의 여성들이 요더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침범”을 경험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구슨, 2015, 10)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여성이 성희롱부터 성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적인 침범과 폭력을 경험했다.
요더는 자신이 “부분적인/단절된 흥분”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사정없이 이루어지는 삽입’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야수를 무해하게 한다”는 말을 설명하면서, 성적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가족 간의 친밀함”을 가르쳐 주려고 했으며 이 가족 간의 친밀함은 강간과 같은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안전한 방식으로 증명되어야 했다. 다음은 그가 여성들을 상담할 때 전형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 또는 행위들이다.
“A. 자연스러운 인사로서 만지기 B. 접촉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의미에 대한 토론; 구두 혹은 (더 많은 경우에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서를 통해서 C. A와 B를 전 단계로 같은 접촉은 더 의미가 있게 됩니다. 이것이 꼭 기대되거나, 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접촉은 어쩌면 손뼉치기가 될 수도 있고, 포옹이나 가벼운 입맞춤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의 표현들은 내가 기술한 약속들에 대한 서면 허락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그런 동의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D. 위와 같은 표현들이 하나의 기대가 되어서 다시 만났을 때 일상적인 기대가 됩니다. 여기에 문을 닫거나, 무릎 위에 앉거나, 더 깊은 입맞춤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E. 옷을 조금 벗기기 F. 옷을 모두 벗기기 G. 음경과 치골을 만지기 H. 부분적인/단절된 흥분/진정 상태를 탐험하기” 요더는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을 자기의 연구를 실험(?)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요더의 탁월한 지적 능력은 그에 대한 어떤 인식을 형성했으며, 이는 그가 오랫동안 저지른 비밀스러운 실험들을 숨기기에 충분했다. 요더가 왜 이런 성폭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완전한 답은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로 그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적 충동에서건 아니면 정말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건, 요더의 성폭행이 어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이뤄졌다는 것이다. 물론 두 경우 모두 그가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성직자들과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성폭행은 희생자들과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남긴다. 어쩌면 이런 형태의 폭력이야말로 영적인 권력을 가장 나쁜 방식으로 남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평화신학자 요더의 성폭행은 복잡한 질문들을 남겼다. 단지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의 신학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재세례파-메노나이트 평화신학의 매우 독특한 표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제자도의 핵심으로 비폭력과 평화의 원칙을 강조하는 사람이 어떻게 많은 여성을 고통 받게 한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평화교회를 지향하는 미국의 메노나이트 교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왜 실패했는가?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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