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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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4 21: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본 찾기 잃어버린 형상을 찾아


무엇이든지 원본이 중요하다. 법정이나 중요한 기관에 서류를 제출할 때는 반드시 원본을 요구한다. 특히 사진은 그 원본이 중요하다. 요즈음은 기술이 좋아져서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사된 것은 믿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여러 번 복사하다 보면 화질도 떨어진다.
사람의 원본은 아담이다. 모든 인류는 아담의 복사물이다. 그것도 찌그러지고 변질된 복사물이다. 그래서 오늘의 인간에게서 사람의 원본을 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원본인 아담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담의 원형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데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한 지식은 인간 자신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이웃과의 관계, 또 자연과의 관계를 비롯한 모든 사물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래야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 연구가 어려운 것은 인간의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 때문이다. 인간의 보이는 부분은 연구가 간단하다. 인간의 육체를 물리적 가치로 분석해 보면 인간의 육체는 ‘닭장 한 개를 칠할 수 있는 석회, 한 개의 못을 만들 수 있는 철, 몇 개의 비누를 만들 수 있는 지방, 몇 개의 성냥개비를 만들 수 있는 인, 두세 번의 사진을 조명할 수 있는 마그네슘, 차 한 잔에 탈 수 있는 설탕, 물 약 40리터!’ 그것이 전부다. 돈으로 계산하면 그저 몇만 원어치에 불과하다. 아무리 비싸게 쳐도 10만 원을 넘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의 전부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내면세계는 복잡하다. 영혼, 생명, 인격, 마음, 감정 등등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들이다. 인간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 또 사람을 알기가 어려운 것이 본래 사람은 선한 자인데 악해진 것인지,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이 따로 있는지, 인간 존재가 제한적인지 무제한적인지 그 정의가 어렵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사람을 선하게 창조했는데 그가 죄를 범하고 타락해서 악한 존재가 되었다고 가르쳐 왔다. 그 악한 존재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그 피로 사람의 죄를 덮어주시므로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하셨다고 가르친다. 그 구원은 죽어서 천당을 가는 것이 구원인 것처럼 교회들은 가르쳐 왔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말은 미래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의미도 있다. 현재적 구원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그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피조물에게는 신성의 충만한 것이 임재해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회복”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의 타락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아담 안에 머물던 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 형상의 원형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형체가 없으시다. 그런 의미에서 형체와 형상은 다르다. 하나님은 형체는 없으시지만, 형상은 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두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타락하기 이전 아담의 모습에서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알려면 두 가지를 연구해야 한다. 하나는 타락 전의 아담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러면 그들에게서 찾아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인격으로 본다. 물론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도 있긴 하지만! 그러면 인격이란 무엇인가? 인격이란 자아의식이 있고, 자아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스스로의 의식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 결정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을 인격이라 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다. 그러니까 아담은 인격체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여기 형상이나 모양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나 아마도 하나님을 쏙 빼닮았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을 때, 거기에는 몇 가지 부차적으로 따라붙은 은사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원시지혜이다. 원시지혜란 인간 자신과 하나님과 세계에 대해서 완전히 아는 지혜로서, 곧 올바른 이성과 선한 양심을 뜻한다.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언약의 주이심을 바르게 알고,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온 힘과 정성으로 섬겨야 할 존재임을 잘 의식했으며, 온 세계가 전능하신 창조주의 창조물로 지어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담이 이렇게 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지식체계에 상응해서 사물을 알고 직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각종 동물의 이름을 짓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름은 그 사물의 특성을 나타낸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그 동물들의 속성과 특징을 잘 파악하고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지식과 직관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그 동물들의 속성에 맞게 이름을 지어 불렀다는 뜻이다. 아담은 선악과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뱀의 정체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그 유혹자를 물리칠 수 있는 충분한 능력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 지식과 지혜와 능력도 부여하지 않고 아담을 그 위험 속에 내보냈다면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를 위험한 곳에 홀로 내버려 두어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피조세계를 다스릴 통치자로 세우셨다. 물론 하나님도 통치하시지만, 아담을 대리 통치자로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아담에게 주어진 삼중직 중에 왕의 직분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해 피조세계를 다스릴만한 충분한 지혜와 위엄과 능력을 주셨다는 뜻도 된다.

그것은 마태가 기록한 대로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신 것과 비슷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자로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전도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아담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닮았다. 그러므로 피조물 수준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것이 인간의 원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하기 전의 아담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를 좀 더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적 오류를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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