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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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07-11 21:4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에 대한 무지
폴 워셔가 하나님의 법정에 현대교회를 고발하는 두 번째 기소장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이다. 현대교회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인데(요 17:3)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어떻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현대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저자의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펄쩍 뛸 것이다. 워셔는 이 대목에서 자기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그는 때때로 여러 교회들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설교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곤 했다. 그럴 때 그는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신 것인가요?” 그러면 설교를 부탁한 목사는 “무슨 뜻인가요?”라고 되묻는단다. 저자가 “부탁하신 주제가 꽤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요.” 하면 설교를 부탁한 쪽에서는 이렇게 반문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하나님에 대해 설교해 달라는 것인데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설교를 하실 곳은 교회이고요.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워셔는 이렇게 대답한다, “목사님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초월성,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설교하면 가장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들 중에 몇은 일어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을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생각 속에서 만든 하나님이 있고, 스스로 만든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현대교회 교인들은 성경 속에서 자증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 속에서 형상화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예를 들어보면 그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사사시대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역사적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저자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베드로의 경우를 보자. 그는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고백함으로써 예수님께 극진한 칭찬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로 그 자리에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고 책망을 받는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베드로 역시 기대하며 기다리던 메시아는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였다. 유대나라를 가난에서 구제해 줄 메시아, 로마의 학정에서 구해 줄 메시아, 이 세상 전체를 다스리는 명실공히 왕 중의 왕이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난받고 죽는 그런 비참한 메시아가 아니었다. 아니 그런 사람은 메시아가 아니다. 베드로에게는 메시아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를 붙들고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만류하다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꾸중을 들은 것이다. 십자가를 강조하는 설교자들은 워셔처럼 다른 교회에 설교 초청을 받을 때 신중해야 한다. 생각 없이 나섰다가 괜스레 좋은 소리 못 듣고 다시는 청함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세태 속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설교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거짓이 가득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정직을 설교하면서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하면 듣는 사람들이 좋아할까? 높은 자리에 목을 매는 사람들에게 ‘낮아지라, 죽기까지 복종하라,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라’ 하면 좋아할까? 오로지 세상적인 축복을 원하고 이를 위해 주야로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족한 줄로 알라’,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라’ 하면 성경 속의 그 청년처럼 슬픈 얼굴로 교회를 떠나가지 않을까?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체험적 지식을 뜻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참되어서 그 지식이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하여 이렇게 말한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여기에서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못 한다’는 말은 남자와 구체적으로 동침한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안다는 뜻이다. 그 지식이 참된 것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 했다.
워셔는 차라리 주일 아침 예배가 없는 것이 낫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주일 아침이야말로 일주일 중 가장 큰 우상숭배의 시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원을, 욕망을 채워줄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예배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예배 중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가? 아니면 내 감정을 즐겁게 하는 노래를 찬양이랍시고 열창하고, 그 분위기를 은혜의 시간이라고 즐기는 것은 아닌가? 오직 그분이 영광 받으시기를 위해 기도하는가? 아니면 내 욕구, 내 소원을 기도하는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정말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셨다고 믿는가? 오늘 들은 설교가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을 선포하는 설교였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영광이 바르게 선포되었는가? 아니면 성도들의 ‘아멘’을 유도하기 위해 이 세상 영광과 축복과 형통을 선포하지는 않았는가? 오늘 당신이 ‘아멘’ 했던 그 대목은 무엇을 선포할 때였는가? 호세아는 이렇게 외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예배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라고 말하는가?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시 50:22) 하나님이 현대교회를 향하여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2007년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을 때, 고 옥한흠 목사는 10만 한국교회 성도들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한국교회는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구제사업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로 설교할 때, 죄와 회개, 거룩함은 할 수 있으면 언급을 피했습니다. 회개나 반성보다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을 골라 설교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음을 변질시켜 갔습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겉모양은 돌아가지만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의 울먹임 섞인 설교와 함께 10만 성도들은 통성기도를 통해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하는 것이 없으면 들은 것도 없는’ 것이다. 당시 그는 한국교회 최고의 설교자이자 후배들의 롤 모델이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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