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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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9 22: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정신의 반역 XI : 거짓 선지자의 소굴이 된 ‘한국 교회’


13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렸도다 14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이 저희에게 외쳐 이르기를 부정하다 가라, 가라,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저희가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이 이르기를 저희가 다시는 여기 거하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다(애 4:13~16).

앞의 본문은 주전 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해 망한 남쪽 유대 왕국의 처참한 상황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를 통해 기록하게 하신 내용이다. 본문을 좀 따라가 보자.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범죄를 지적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의인의 피를 흘렸다고 한다. 거짓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참 선지자들 예를 들면 예레미야와 같은 참선지자들을 죽였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전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애굽과 손을 잡으면 바벨론의 침략에서도 살아날 길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전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을 죽이면서 말이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제사장들은 무지하고 나약한 백성들을 멸망 때까지 속이며 백성의 재산을 우상에게 바치게 하고 백성들을 사주(使嗾)하여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죽였다.
이 거짓 종교 지도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데려와 처참한 심판을 행하셨다.  그때서야 백성들은 자신들이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거짓 지도자들은 백성인 자신들과는 신분과 질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왔기 때문이다.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듯 교묘한 거짓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리고 우상에게 제사하면 잘된다고 거짓말하는 거짓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보였다. 같은 인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반 백성보다 더 사악하고 더 지저분하고 항상 거짓을 일삼는 멸망의 아이콘이 바로 거짓 선지자와 거짓 종교지도자들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거짓 종교 지도자들은 바벨론의 침략 앞에서 더 비굴했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더 야비하게 굴며 이리저리 살 곳을 찾아 도망쳤다. 그러다 죽음에 직면하여 어디 숨을 곳이라도 찾다 이번에는 백성들에게 와서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 되었다. 백성들은 호통친다. ‘더러운 놈들! 가! 가! 가! 꺼져! 오지마!’ 이러한 장면에 대해 예레미야는 바로 여호와의 진노가 임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지금부터 2천 6백여 년이 넘은 이 사건의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생생한 것일까? 거짓 지도자와 거짓 제사장에 대한 유대 백성들의 치 떨림과 분노가 왜 우리의 심정과 심장을 대변한다고 느껴지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높으신 이름을 팔아가며 무지하고 나약한 성도들을 아직도 속이고 또 속이는 부패한 한국 교회의 많은 거짓 지도자가 판치는 상황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성도에 대해 개인적으로 혹은 예수님 죽이기에 앞장선 유대인 산헤드린 공회처럼 집단적으로 모여 거대한 거짓을 공모하는 집단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 꼼수를 부리며 교회 재산을 착복하는 자들은 그래도 욕심 많은 것이 인생이니까 저런다 싶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절대진리 성경에 무지한 채 성경과 정반대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뻔뻔하게 횡설수설 설교하는 작태는 그야말로 역겨움 자체다. 그런 말에 ‘아멘! 아멘!’하는 자들을 보면 비난과 비웃음보다 비통함이 더 커진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거짓은 성경에 대한 무지를 넘어 처음부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자기 욕망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경우다. 의도적으로 교회와 성도를 속이기로 작정하고 거짓 웃음과 거짓 친절로 사악함을 숨기는 거짓 지도자의 경우이다. 금방 드러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여 성도를 속인다. ‘사랑’을 강조하며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 마음에는 증오심이 가득한 데 마치 안타까운 것처럼 표정관리까지 하며 자신을 속이고 또 속인다. 사익추구를 포기한 듯 말하고 그렇게 행동까지 하지만 어느새 자기편을 만들어 교회법까지 고쳐가며 미래보장의 장치까지 마련한다. 이러한 술책을 성도들은 잘 알 리가 없다. 수년 후 혹은 십여 년 내지 수십 년 후의 교회장악 계획을 짰기 때문에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표정을 관리해야 하고 참아야 하며 거짓으로 웃어야 하고 성도들의 고통에는 무엇보다 발 벗고 나선다. 정말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악한 거짓 지도자들의 유형이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그때그때마다 적절하게 사용한다. 거짓을 은폐하려 성경진리를 악용하는 일이 점점 쌓여간다.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머리에 쌓는 상황이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멸망 무렵 부패의 상징이었던 예루살렘처럼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는 부패의 상징, 이미 나 자신의 부패도 함께 안고 가는지도 모르는 한국 교회다.
성경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한 한국 교회 부패는 점점 보편화하고 일상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거짓 지도자들의 불법적 재산 축적이나 세습 혹은 도덕적 비행에만 초점을 맞추면 부패의 본질을 간과한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앞의 본문 해설에서도 보았듯이 교회의 부패는 성경진리가 바르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 그  문제의 본질이 있다. 진리 수호의 목적이 흐려지거나 사라진 바로 그 틈에서 사악하고 더러운 거짓 지도자가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 지도자들은 성경진리가 자신들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성경진리가 정확하게 전달되고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하는 것을 거짓 지도자는 가장 두려워한다. 성경진리의 생명력이 운동하는 진리의 전당이 세워지는 것만큼 거짓 지도자가 예민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성경 많이 보고 성경에 관한 질문을 꼼꼼하게 하면 이단에 빠진 게 아닌지 의심하는 희한한 교회 풍토 이면에는 성경진리가 얼마나 강력한 거짓 세력들을 폭로하고 파괴할 수 있는 무기인지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더러운 자기 욕망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어리석고 비참한 인생이 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만 더욱 커진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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