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0일 (금) 

> 오피니언 > 시론 >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XXXIII
기사공유 작성일 : 20-05-01 10:28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심판론 회복하기 2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3:3-8)


성경 본문은 피조물의 불의(不義)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이를 심판하시는 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불의는 불신(不信)으로 드러나며 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만 참되다는 사실로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인간의 불복종(不服從)과 불순종(不順從)은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인간 불의의 뻔뻔함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변명하여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부당하다며 다시 하나님을 거역(拒逆)하고 거부(拒否)하는 데서 불손함의 끝판을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모든 섭리 과정이 인간이 불의한 피조물임을 확증하는 심판과정이다. 피조물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반역과 불순종의 죄성(罪性)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운 인류는 하나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개혁파 신학이 400여 년 전에 이미 주장했지만 현대 신학에서 퇴색해 버린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의 인간론이다. 이러한 죄론을 성경을 바탕으로 재정립하는 것은 성경 중심적 올바른 신학을 수립하는 데 주요 과제로 항상 남아 있으므로 생각의 깊이를 더하여 보고자 한다.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가 범죄하고 추방당한 이후 하나님의 정하신 심판 섭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의 최후 심판까지 계속 일어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 역사가 드러나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뜻이다. 가령 한국 교회가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한다는 말은 현상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말씀이 전해지기 전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임하고 있었고 140여 년 전에 성경진리가 선교사들의 순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질 때도 심판은 임하고 있었으며 일천만 규모의 현재 한국 교회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임하고 있다. 영벌(永罰)과 영생(永生)의 심판(마 25:46)에 바탕을 두지 않는 기독교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성도 개인에게든 두세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이든 수천수만이 모이는 곳이든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배제하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진리 선포는 왜곡된다. 그만큼 기독교 진리에서 필히 강조해야 할 신학적 원리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론’이다.

성경에 명시된 심판론을 우리 교회의 현실로 가져오면 심각한 문제가 한두 곳은 아니다. 한국 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기독교의 결정적 오류가 있다. 심판의 주권자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목사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을 대언(代言)한답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같은 형제(마 23:8)를 향해 폭거(暴擧)에 가까운 명령문을 남발한다. 그야말로 자기 말이 자신을 심판하며 정해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심판을 자초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복 받으라’라고 고함을 치는 현장은 성경진리에는 명확히 배치하는 것을 보면 그곳은 복은커녕 심판의 현장이 된다. 예수께서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신 것처럼 한국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아버리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는 들어가지 못 하게 하는’(마 23:13) 현장처럼 보인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마 23:15) 무서운 심판의 현장이 우리 한국 교회임을 흔히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와 그분의 무한하신 은혜를 우리 좋을 대로 함부로 끌어다가 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로마서 본문을 다시 보면, 타락한 인간 본성의 사악함은 항상 불의를 행하는 자신이 끊임없이 심판주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거역하는 과정을 통해 심판을 자초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악함이 더욱 폭로되는 과정은 하나님의 관용 이전에 충분히 내려진 심판의 확정 과정이 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신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임한 심판의 증거가 된다. 인류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며 거짓을 숭배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거짓 집단에 내려진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리는 진노를 비웃는 광경은 그 자체 스스로 자신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8절)하다는 것을 자백하는 꼴이 된다.

심판에 처한 인간의 고약함은 하나님에 대한 반성과 회개는커녕 자신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높이기 때문에 불의를 행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한 것이라며 반항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간교한 변명 의지는 인류의 본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죽도록 회개해야 하는 데 사용해야 할 입술이 열리자마자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야기하는 모든 탓을 하나님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돌린다. 뻔뻔함은 극에 달하여 자신이 범한 악행은 하나님의 의의 영광을 선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의를 심판하는 것은 불공정 판결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해 ‘적그리스도적 행위’를 자행한 결과 그 간교함이 고발당해 진리의 적대 세력으로 분명히 드러나지만, 심판주 앞에서 굴복은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불의를 의(義)처럼 강변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태는 더욱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장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이 단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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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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