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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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11-08 16:51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안식 향한 죽음과 멸망 당한 죽음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ⅩLII: 안식 향한 죽음과 멸망 당한 죽음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3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사 57:1-5)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7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예언의 말씀으로 받았다. 그 내용 중 일부가 앞의 본문이다. 이사야 66장 전체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전반부는 남유다를 창세전 작정과 모세와 맺은 언약대로 하나님께서 때리신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남유다가 반드시 망한다는 예언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남유다가 멸망 후 포로로 잡혀가지만, 반드시 돌아오게 하여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즉 싸매어 주신다는 예언이다.(사 37:26;사 30:26)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유다는 605년부터 586년까지 바벨론제국에 의해 무려 20여 년 동안 3차에 걸쳐 침략과 약탈과 노략을 당하면서 철저하게 멸망한다.

앞의 본문은 이러한 남유다의 멸망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주권적인 방법으로 보호하는 ‘신비한’ 섭리를 하는 내용이다. 당시 남유다의 왕들과 모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연합하여 십계명의 제1계명(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을 저버리고 보란 듯이 이방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우상 숭배를 반대하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고 외치는 의인들은 오히려 핍박을 당하거나 순교를 당하는 실정이었다.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는 의인의 외침을 듣기 싫어하는 지배 계급들은 그렇게 외치는 의인을 죽이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정황은 곧이어 바벨론의 무자비한 침략이 시작한다는 전조(前兆)였다.

남유다의 멸망 시간이 다가올 무렵 이미 벌어지고 있던 두 가지 종류의 죽음과 또 다른 하나의 죽음이 준비되고 있었다. 하나는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고 외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인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남유다의 자녀들이 왕과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이방신 몰렉의 제물로 불태워지는 죽음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지속적으로 약속한 바 있는 ‘자손 번창’의 언약을 남유다 지도자들은 폐기 처분해 버렸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풍습을 모방하여 언약 자손으로 태어난 자신의 자녀들을 아이들이 불에 타면서 지르는 비명을 좋아한다는 몰렉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죽음은 왕과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바벨론제국의 칼에 심판당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다.

앞의 두 가지 죽음의 경우,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을 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수용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의인이 죽어가는 상황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견딘다는 것은 정말로 인간의 근본 한계다. 더더욱 힘든 것은 어린 자녀가 이방신의 제물이 되어 불에 타는 광경이다. 아이의 비명을 보며 몰렉신이 응답한다고 열광하는 남유다 왕과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들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살아있는 신이 맞는지 절망적 의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하지만 행악자들에 대한 심판은 약속한 기한이 차고 바벨론제국의 침략군이 와서 포로로 잡아가거나 칼에 죽이는 일이 벌어질 때까지 의인들의 죽음은 지속해야 한다. 참으로 인간의 보편적 감정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너무나 무서운 하나님의 섭리 상황임이 틀림없다.

다시 본문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간구하며 우리의 상식이 극복되길 소원해 본다. 남유다 멸망 시기에 사람들은 의인의 죽음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의인은 [바벨론제국의 침략에 의한] 화액(禍厄, 재앙과 곤란함)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제국의 침략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뜻이다. 바벨론제국이 와서 남유다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미리 죽는 것이 바른길을 행한 자가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의인이 대접받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무당 자녀들,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간음자와 음녀가 두 번 세 번 거듭 멸망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원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편하게 쉬게 하심’ 즉 ‘안식’하게 하는 방법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방법이 결코 아니다. 이방신을 향해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죽이는” 자들이 먼저 죽어야 마땅한데 이들은 의인보다 더 오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준비해 놓은 의인 보호 방법, 어린 자녀 보호 방법, 그리고 더럽게 우상 숭배하는 간음자와 음욕이 가득한 자에 대한 멸망 방법은 인간의 상식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 밖의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보다 하나님께 속한 지혜와 총명이 절실하고 꼭 필요하다. 안식을 보장해 주시려는 자비와 긍휼의 과정도 우리 상식에서 벗어나 있고, 멸망당하게 하려는 심판으로서 죽음도 우리 감정에서 벗어나 있다. 함부로 말하는 슬픈 죽음이다, 행복한 죽음이다, 모두 어리석은 판단에 불과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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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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