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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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11-27 20:1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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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8:8,10~11,12)


남유다는 바벨론제국에 의해 기원전 605년경부터 586년경까지 20여 년에 걸쳐 침략과 약탈을 당하고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앞의 본문은 이러한 상황이 시작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러 남유다 멸망의 필연성을 선언하는 내용이다. 어느 날 바벨론제국이 쳐들어와 망하는 모든 과정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정해 놓았으며 이것을 남유다에 미리 알려주고 그대로 이루겠다는 것이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의 상황은 참으로 무서운 상황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망할 무렵 남유다는 많은 제사장도 있고 선지자도 있고 여호와의 율법을 온 나라가 나름대로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그렇지 않다. 피조물이 보고 듣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판정하시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차이가 있다. 남유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섬기는 것이 아니라 곧 멸망할 수밖에 없는 패망의 조건을 만드는 상황이다.

그런데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멸망시키는 방법을 너무도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충격적이다. 아무리 모세 시대(레 26장; 신 28∼29장)에 예언한 내용이라고 해도 유다의 멸망은 매우 처참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절되지 않도록 계속 기록하여 전하는 서기관이 사용하는 붓이 거짓 붓이 되게 하신다. 그렇게 믿었던 서기관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짓말로 만든다는 말이다. 다른 문서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도 서기관이 조작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거짓 선비의 붓 끝에서 법이 조작되었다. 그런데 멸망 방법을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주는 것은 그 목적이 분명하다. 멸망당하는 날에 바벨론제국의 무서운 칼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언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으로 망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쏟아붓는 진노 앞에 세상 처세술에 능하다는 자들의 지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줬던 지혜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이 자신의 아내마저도 지키지 못하게 하신다. 목전에서 자기 품의 아내를 침략군이 탈취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부분도 그렇지만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선지서 기록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멸망 시 벌어지는 처참한 상황에 대해 기록한 내용의 본문 주어에 바로 ‘여호와 하나님 내가’라는 표현이 수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신관념으로 선지서를 읽고 해석하기란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호와의 율법을 전했던 자들 곧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모두 거짓을 말하게 한다. 어디에서도 참된 소식을 듣지 못하게 했던 상황이 바로 남유다 멸망 당시 상황이었다. 오직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말만 참된 진리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남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싫어했다. 바벨론제국에게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결코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멸망은 확정된 사실인데 정작 멸망한다는 말은 듣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안전하고 평안하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백성들은 그것을 사실로 믿는 사건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벨론제국의 침략을 받아 처참한 멸망을 당한다. 정보의 진실성은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만 있다. 그리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도 내 마음대로 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거짓이고 참인지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주권성에 달려 있다. 거짓이어야 할 것이 참이 된다. 즉 멸망하지 말아야 하는데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망해버린다. 반대로 평안하다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말이 참인 줄 알았는데 거짓으로 판명된다. 참과 거짓, 유익과 무익, 행과 불행의 정보 분별은 우리 손을 떠나 있다. 

통상 거짓 정보는 조심해서 경계해야 하는 대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서기관의 붓이 거짓을 쓰게 한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거짓말을 하는데 사실처럼 들린다.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전한다고 믿었던 곳이 거짓 뉴스의 출처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지 않으면 진리를 들을 수 없다. 동시에 진리를 전하게 한다고 해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귀를 열어줘야 한다. 인간들이 보기에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면 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정보의 정점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가 명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왜곡된 정보는 분명히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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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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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ⅩLIV: 성경적 국가존망론
안식 향한 죽음과 멸망 당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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