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8-10-23 19: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니체의 한국 교회 진단: 목사의 도덕적 설교에 속는 얼치기 교인들


그리스도교란 사물에 대해 잘 종합된 전체적 견해이다. 그리스도교로부터 그리스도교적 신에 대한 믿음을 떼어내면, 그리스도교적 가치평가들의 체계 전체가 붕괴된다 :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무엇이 자신에게 좋고 나쁜지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다고 전제한다 : 인간은 그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신을 믿을 따름이다 : 그리스도교적 도덕은 피안으로부터의 명령이며,  그러한 것이기에 인간적 평가의 피안인 것이다. (Friedrich  Nietzsche,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니체전집20(KGW VIII 2), 백승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05, 200~201쪽) 

이 내용은 130여 년 전 유럽 기독교에 대한 수십 년 간의 심층 취재로 결국 ‘신 죽음’의 급보(急報)를 유럽 전역에 폭로한 니체의 말이다. 우선 그의 말을 새겨보면서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 보자. 기독교는 신이 아닌 ‘사물’에 대한 전체적 지식이다. 니체의 전반적 세계관에 의하면, 서양 기독교는 세계의 모든 사건과 현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멋대로 재구성하여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억압과 탄압, 통제와 폭압을 일삼았던 사악하기 그지없는 종교 집단이다. 그래서 첫 번째 명제에 담긴 뜻은 결코 편안한 평가가 아니다.
그런데 서구 기독교가 역사와 인류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의 키워드가 있다. 그것이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란 개념은 니체에게 가장 순수한 인간의 종교적 본능이 아니라 가장 사악한 의도로 조작된 점점 서서히 무지한 자들을 병들게 하는 억압의 독극물이다. 니체는 이러한 믿음을 제거할 때 기독교의 모든 체계가 붕괴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모든 인생 여정을 통해 서구 기독교를 대할 때마다 ‘도덕’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가장 잔인한 서양 기독교의 비도덕성을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했다.     
니체의 말을 계속 따라가 보자. 그의 말대로라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서구 기독교는 결코 확증되지 않는 신을 믿음의 절대 대상으로 조작하여 모든 세상을 통제하는 공포의 신인 하나님을 조작했다. 과히 가공할 조작기술을 발휘하고 뿌리부터 독성(毒性)에 오염된 거대한 거짓 체계를 날조하여 전 유럽에 유포시켰다. 가장 허구적인 것이 가장 확실한 진리처럼 둔갑하여 유럽의 2천 년 역사와 문화를 병들게 했다. 그리고 인간은 선과 악을 알 수 없는 무능한 자로 규정했다. 동시에 그 선과 악의 대답은 인위적 도덕으로 날조한 선과 악의 지배자인 종교지도자들에게 복종할 때 얻을 수 있다고 속였다. 종교인들의 천사와 같은 자기희생과 이타적 봉사 이면에 악마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일반 무지의 얼치기 성도들은 알 리가 없다.
어떤 장소와 시간을 조작하여 이른바 ‘예배’라는 특정한 의식을 만들어내고 종교 지도자만 입는 특별한 복장을 입고, 마치 신인 것처럼 행세한다. 무지한 대중은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그에게 몸과 영혼을 맡긴다. 이른바 종교 지도자란 자도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은 자기 자신을 다른 피조물로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속인다. 조금 다른 말과 행위를 하는 것일 뿐인데 무지한 신도들은 영혼의 모든 관리를 그런 자들에게 모두 맡겨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를 압도한 거짓 지도자는 자신도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시장판 흥정에서도 장사꾼의 논리가 있는데 이보다 못한 허황된 소리를 하는데도 ‘아멘’하고 믿는다고 한다. 사실 이 무지한 대중이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심각함이 있겠는가? 그 대중은 어쩌면 그 거짓 지도자보다 앞서가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이 대중들도 이미 종교 지도자의 거짓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거짓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길 계산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속이고 속고 또 속는 속임수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그 역사가 니체가 보는 이미 퇴락하고 몰락한 유럽의 교회이며 동시에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 교회다.         
니체는 믿음을 ‘피안으로부터 온 명령’이라고 한다. 결코 편안한 말이 아니다. 명령이란 말부터 보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안에서 왔다. 거짓 지도자는 자신도 모르는 피안의 세계를 마치 알고 있는 듯이 속이며 확신에 찬 듯 자신의 말이 피안인 저 천국의 요구라며 명령한다. 속임과 욕망의 굴레 속에서 조작된 피안이며 인간이 날조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치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저 천국에 가기 위한 천국의 명령이라며 후안무치 뻔뻔함의 끝판왕이 된다. 이러한 정신 나간 광기 앞에 또 ‘아멘’이라고 한다. 130년 전 니체가 본 유럽 기독교나 그가 볼 수는 없지만 우리 눈앞에 드러나는 한국 교회의 천태만상의 사기극은 결코 다르지 않다. 니체는 자신의 이러한 진단이 자신의 사후 한 세기 후에 더욱 확산할 것이며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도 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 그리고 어머니의 엄격한 루터교 규율로 양육 받은 니체는 이렇게 유럽의 거짓 교회를 진단하고 폭로했으며 그의 철학은 거의 이러한 거짓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 일을 바로 여기 한국 교회에서 더욱 분명하게 눈만 뜨고 귀만 열면 들을 수 있다. 니체의 몸부림과 발버둥의 해답 없는 처절한 고뇌와 고통은 인간적 연민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도 하다.
니체가 만난 기독교, 니체가 폭로한 거짓 기독교, 그리고 니체가 찾고자 했던 신 혹은 참된 종교, 이러한 고민을 함께한다면 우리는 니체가 제대로 가 보지 못한 진리의 길을 다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 정말로 마음대로 그 해답을 줄 수는 없지만, 영혼에 생기는 갈급함으로 ‘성경이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직도 내 눈앞에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한마디를 다시 기억하면서 말이다. 진리의 말씀 성경의 확고부동한 진리체계를 외면하고 지금도 거짓으로 속이고 속는 거짓 목사와 얼치기 성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0~2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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