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3일 (토) 

> 학술 > 철학 > 성경신학으로 보는 니체 평설 〈6〉
기사공유 작성일 : 19-10-10 19:10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언어의 뿌리: 인간의 맹목성과 신적 의도성 사이
언어가 단지 인간의 정신적 힘을 통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면 신의 직접적인 선물인지 하는 의문입니다. 구약성서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신화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종교 문서입니다. 두 가지 요점은 신과 인간은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은 인간에 대한 사물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름들을 사물들에 짓습니다. 요컨대 동물들 등에 이름을 짓는 것은 신화의 문제였습니다. 즉 언어 자체는 전제되는 겁니다.-여러 민족들은 언어의 기원에 대해 침묵합니다. 그들은 세계, 신들과 인간을 언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Friedrich Nietzsche, 「유고(1864년 가을~1868년 봄)」 니체전집1(KGW I4,II2,II4), 김기선 옮김, 서울: 책세상, 2003, 19.)


이 인용은 25세 젊은 나이로 바젤 대학 고전학 원외교수로 발탁된 니체의 전체 전집 첫 부분이다. 짧은 글이고고 그 제목은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며 그중 일부분이다. 고대 그리스도 시대부터 당시 19세기 중엽까지 언어(言語)의 기원을 말한 학자들의 의견을 간단하게 메모한 내용이다. 말은 어디에서 발생했으며 글은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인류 역사의 기원을 물어보는 것과 동일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답하기 힘든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어가 인간의 정신과 의식(意識)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신(神)의 존재와는 또한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만 증폭되는 분야가 바로 언어에 대한 질문이다.

우선 젊은 교수 니체의 말을 따라가 보자. 니체는 언어가 인간 정신이 만들어 낸 것인지, 신이 직접 선물로 준 것이지를 묻는다. 언어의 기원에 관한 질문을 좁혀서 그 근원이 인간 정신 활동인지 신의 선물인지라고 묻는다면, 어느 지점에서는 만나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신(精神)이든 신(神)이든 모두 감각적 활동 이전의 상황이며, 관념적인 문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 활동과 신에 대한 관념은 그 뿌리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 활동 가운데 언어가 발생을 결정하는 요소가 있다고 볼 때, 그 발생을 신의 존재와 관련짓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도 궁금증을 더한다.
이러한 가운데 니체는 구약 성경을 언어의 기원과 관련짓는다. 이미 성경비평학의 영향을 깊게 받은 니체이므로 구약의 사건은 신화의 구성물로 본다. 신화적 구성 편집물로서 구약 성경은 언어의 기원을 말하는 유일한 종교문서라고 한다. 구약 성경의 특징은 기록의 주체와 문법적 주어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발화자 즉 말하는 자와 문법적 주어가 일치한다는 점이 구약 성경의 매우 독특한 점이다. 니체가 이러한 사실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니체가 다루고자 하는 언어의 기원 문제에서 최초의 음성 언어 문제와 문법적 논리의 주어와 서술어 관계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감안할 때 앞의 추론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니체는 구약 성경에 나타난 언어 기원의 두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은 그리스 신화와는 달리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의사소통에서 말과 뜻이 동일하게 전달되어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 니체는 이것 역시 신화 구성 문제에서 언어가 지배하는 일정한 약속의 규칙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인간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서양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전통과는 다른 발생 기원을 갖는다는 점, 그래서 구약 성경은 다른 배경 즉 ‘신적 계시’가 구약 성경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 개방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니체는 구약 성경의 두 번째 특징을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사물들의 ‘이름’을 짓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 시조가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동물에 대한 명칭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니체는 신화(神話)에서 문젯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민족 외에는 언어의 기원을 침묵했으며, 단지 언어 자체는 이미 있는 것으로 전제했다고 한다.

그런데 단순한 전제가 아니라 구약 성경은 신과 인간의 같은 언어에 대한 기원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나아가 피조물에 대한 이름은 피조물 존립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니체가 창세기 2장 19절-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 2:19)-을 염두에 두었는지 밝히지는 않았으나, 구약 성경 첫 부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어가 아담에게도 동일한 의미가 되도록 하며, 그 확증을 동물들에 대한 이름을 짓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고, 또한 아담한테 이름을 부여받은 후 각종 들짐승들과 새들이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보하게 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니체의 말 중에 ‘신화’라는 말만 제거한다면 구약 성경보다 분명하게 언어의 기원을 신과 인간과 세계에 대해 제시하는 문헌은 없으리라고 본다.

비록 인본주의 독일 신학의 성서비평학에 영향을 받아 구약 성경을 신화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있지만, 루터교 목사 아들 출신의 니체는 그동안 익숙했던 구약 성경을 언어 기원 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특징을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 나타난 언어의 특징을 간파한다는 사실은 구약에 소개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는 데서는 점점 멀어져 갔다.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확증을 떠나서는 언어의 기원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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