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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19-11-19 19:3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언어의 뿌리 2 : 태초에 ‘하나의’ 언어가 있었다


언어는 개개인의 의식적 창작물도 다수의 의식적 창작물도 아닙니다.(Friedrich Nietzsche, 『유고(1864년 가을~1868년 봄)』 니체전집1(KGW I4,II2,II4), 김기선 옮김, 서울: 책세상, 2003, 17.)

25세 약관의 나이로 특채된 스위스 바젤대학 고전어와 고전문학 원외교수 니체의 말이다. 니체의 초기 관심은 언어 문제로 시작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즉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전의 각종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자기 철학의 기초를 다진다. 인도-유럽어에 속한 많은 언어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니체는 많은 문헌들을 넘나들면서 그 문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도대체 언어의 기원은 무엇인가?’ 언어 사용의 천재적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니체이면서도 그는 또한 초기부터 언어의 기원을 비롯한 언어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를 누구보다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1900) 후 20세기 중반에 ‘언어철학’이 대두하긴 했지만 사실상 니체는 언어철학이 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기 한 세기 전에 이미 언어철학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고 있었다.
앞의 짧은 인용문에서 보듯이 언어는 인간의 의식 활동 즉 지각 작용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순서로 보면 언어가 있었고 그 이후에 인간의 지각 작용이 있었다. 문제는 도대체 ‘무슨 언어, 어떤 언어’가 있었느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용에서 짐작하듯이 의식은 인간의 근본을 규정하는 개념이라면, 언어는 인간 이전에 존재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언어의 도움이 없다면 인간의 의식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말을 인용한다. “이성의 용무 중 상당 부분, 아마도 대부분은 이성이 이미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개념들을 분석하는 데 있다.”(앞의 책, 17. 이하 인용은 같은 면) 니체가 인용한 칸트의 이 말에는 인간 이성의 지각 작용은 단지 이미 자신 안에 주어진 언어(개념)를 정리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먼저 언어인 그 무엇이 있었다는 말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런 언어 기원과 관련된 전제는 인간 밖에 있었는지 인간 안에 있었는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약 인간 밖이라고 해도 인류 등장 이전에 언어라는 어떤 차원이 있어야 하고, 인간 안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해도 니체의 말대로 하면 인간의 의식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이미 언어란 그 무엇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유럽어의 문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와 술어의 관계다. 니체는 이렇게 정리한다. “주어와 술어에서 주체와 속성이라는 범주들이 성립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문법이 활용하기 이전에 이미 어떤 언어적 그 무엇의 ‘속성(屬性,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특징이나 성질)’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속성이 드러나려면 어떤 구체적인 존재가 있어야 한다. 언어의 기원에 대한 문제의 복잡성과 동시에 그 중요성에 대해 니체는 다시 이렇게 정리한다. “언어는 개개인의 작업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집단의 작업이기에는 너무 통일적인 것으로, 그것은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각 개인의 경우로 보면 언어는 인구의 수만큼 무수(無數)하다. 그런데 개별적 언어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고 공감(共感) 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언어는 통일된 ‘하나의 몸체’를 이미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철학적 통찰력을 지닌 약관의 고전학 교수 니체는 우선 자신과 같은 언어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던 언어학자,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서 현대 언어철학의 진입로를 굳게 닦아놓는다. 인간의 생각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그 차원의 ‘언어’에 대한 통찰을 통해 니체가 물론 초월적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지면에서 앞으로 유럽 언어 사용의 기원이 되는 고대 문헌들을 분석하며 자신의 (신학이 아닌) 철학적 이론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유럽 사상의 기원부터 그 이후 진행되는 서구 기독교 사상에 대한 니체의 비판에 이르기까지 ‘언어 자체’에 대한 니체의 통찰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니체의 통찰을 탐문하면서 성경에 나타난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니체가 살펴보려는 서구 사상이 헬라 반도에 수립되기 훨씬 오래전 이미 언어의 화려함과 풍부함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영원한 존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던 한 인물의 사적(事績)을 잠시 기억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리라 본다. “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31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32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33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34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왕상 4:29〜34)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왕에게 언어를 통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논문과 서적 삼천 부, 그것을 통한 하나님 찬양 서적 일천다섯 편,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하 만물에 대한 백과사전 편찬 등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거들이다. 천하 모든 왕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었던 당대 최고의 지혜를 소유했던 솔로몬왕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어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용도이고 그 언어 이전에 도대체 무엇이 존재했는지 분명히 알게 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솔로몬의 아비 다윗왕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차원을 분명히 보여주셨음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언어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니체의 깊어지는 고민과 함께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기원이 무엇인지 어떤 차원으로 우리의 생각이 향하고 있는지 그보다 더 깊이 사색할 수 있으리라 본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 19:1〜4)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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