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22일 (화) 

> 학술 > 철학 > 성경신학으로 보는 니체 평설 〈8〉
기사공유 작성일 : 20-01-09 19:2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서양 문법의 뿌리: ‘주어-서술어’ 구조의 허구
주어와 술어에서 주체와 속성이라는 범주들이 성립되었습니다.(Friedrich  Nietzsche, 「유고(1864년 가을~1868년 봄)」 니체전집1(KGW I4,II2,II4), 김기선 옮김, 서울: 책세상, 2003, 17.)

언어의 천재적 감각을 가진 25세 스위스 바젤대학 고전어와 고전문학 교수 니체가 한 말이다. 그가 언어의 천재인 이유는 서양 문법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고 서양 문법으로 수천 년 진행되었던 서양중심적 진리론을 토대부터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니체 사상 초기 과목은 고전학이었으나 그 작업은 헬라어 전통으로 수립된 서양사상의 전달 수단인 문법을 새롭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법이 먼저인지 인간의 사유가 먼저인지 적어도 니체 이전에는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 청년 니체는 인간이 사용하는 인위적 문법이 인간의 사유를 뿌리부터 지배하고 있다는 가히 혁명적이며 충격적인 발상을 전개한 것이다.

우선 앞서 인용한 니체의 명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도유럽어족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반드시 ‘주어(subject)’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인칭주어’ 혹은 ‘가주어(假主語)’라는 주어도 있다. ‘가주어’는 주어의 효력은 없지만, 형태로는 주어인 그야말로 ‘가짜 주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어는 모두 이미 서술어(predicate)를 전제한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문장의 5형식’으로 시작했던 기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5형식 문장에서는 ‘주어-동사’의 구조가 기본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be’가 왜 동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자동사로는 ‘존재하다’라는 뜻이라고 하고 불완전동사로는 ‘~이다’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난감했던 기억도 있다. ‘존재하다’는 뜻과 ‘~이다’는 전혀 다른 뜻인데 어떻게 같은 단어에서 이렇게 다른 뜻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성적을 위한(?) 영어 공부에 최선을 다했던 기억도 난다. 대학에 들어가 ‘언어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인도유럽어족의 문법 구조와 인간의 의식 구조와 활동의 관련성을 들을 때 의문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동사’라는 말보다 주어에 대해서는 ‘서술어’가 더 타당함이 분명하다. 서술어는 주어를 전제하며 주어의 동작이나 특성 혹은 상황을 풀어주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내용이 우리가 배우는 서양 문법의 핵심이다.

니체의 모국어 독일어도 앞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 앞의 인용에서 보았듯이 니체는 ‘주어-서술어’ 관계가 ‘주체-속성’의 범주(範疇, category)보다 앞선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후자가 분명하기 때문에 전자의 문법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주체와 속성의 관계에서도,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처럼, ‘속성(屬性,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특징이나 성질)’은 우선 ‘주체(主體)’를 전제한다. 그런데 주어(主語)가 아니라 ‘주체(主體, subject)’가 되면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주어라고 하면 그 지칭하는 바의 실재(實在)가 있는지 없는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체’라고 하면 문법적 주어(subject)는 이제 ‘실재하는 그 무엇’ 즉 현상 이면에 있는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본질(本質, essence)’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구도를 만들면 문법의 주어(subject)는 단지 본질(essence)을 담는 수단이 된다. 다르게 말하면 문법적 주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알 수는 없지만, 신과 같은 그 어떤 ‘본질’이 있어야 한다. 가령 ‘I am a pastor.’라고 할 때, 문법적 주어로는 단지 ‘I’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I’를 ‘주체’라고 하면 ‘I’라는 ‘본질’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가령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문법적 주어로서 ‘I’는 분명히 있지만, 본질로서 불변의 ‘I’가 과연 있느냐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God is love.’라고 할 때, 문법적으로 보면 완전한 문장이다. 하지만 주체와 본질의 문제로 접근하면 주어 자리에 위치한 ‘God’이 과연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만약 ‘God’이 ‘없다면’ 문장의 주어 자리에 ‘God’을 사용하는 것은 난센스(nonsense), 언어도단(言語道斷)이 된다.

젊은 고전학 교수 니체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기존의 발상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신과 같은 불변의 본질이 있기 ‘때문에’ 문법상 주어가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문법 구조를 주어-서술어 구조로 관습적으로 사용한 결과 마치 항상 주어(subject/ 독일어는 Subjekt)가 있듯이 ‘불변하는 그 무엇(essence/독일어는 Substanz)’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그 착각이 고착화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어가 항상 있어야 언어 활동이 가능하듯이, 주어와 같이 영원한 본질이 항상 있어야 인간의 ‘생각’이 가능하다는 가설(假說)과 억측(臆測)이 진실처럼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어가 항상 있으므로 인간 내면에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재-서양 사상에서는 대표적으로 그것은 ‘신(神)’이었다-도 항상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본질주의’ 혹은 ‘실체주의’라고 한다. 니체는 바로 이러한 주장을 착각이며 조작이며 허구라고 비판한다.

니체에게 인간의 문법이란 자기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표현상의 인위적 규칙인 것처럼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도 단지 인간의 생존 본능을 충족시키는 표현 수단일 뿐이다. 주어 자리에 ‘신’이라고 하든, ‘불변의 실체’라고 하든, ‘영원한 존재’라고 하든 그 모든 것은 단지 자기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며 수사학적 기법의 결과이다. 종교에서는 ‘신’, 도덕에서는 ‘양심’, 정치에는 ‘정의(正義)’, 경제에서는 ‘가치(價値)’라는 말들이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 강조하지만, 니체에 따르면, 그것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며 표현 기법상 조작된 허구이며 은유적 표현일 뿐이다. 때로는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고, 때로는 화려하게 또 때로는 격한 논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차피 그러한 다양한 표현 방식들은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설득하여 강요하며 자기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도구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고전학으로 자신의 학문 여정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철학적 문제에 몰입했던 젊은 교수 니체는 스스로 말했듯이 서양 사상을 뒤집는 ‘다이너마이트’가 되고 있었다. 

<187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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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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