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26일 (금) 

> 학술 > 철학 >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대이동
기사공유 작성일 : 20-12-16 09:44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서른하나. 유럽의 모호한 경건주의, 북아메리카로 가다
16-17세기 유럽 가톨릭 국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시아 침략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로 진출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신학적 정체가 모호한 신학 이론도 북미 동부에 함께 정착하다. 그런데 잉글랜드 국교도들의 북미 원정을 볼 때 중요한 배경이 있다. 유럽에서 겪었던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개신교 내의 여러 종파들의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북미에서 인종차별까지 넘어서고 종교의 자유가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지만 정착 초기부터 이 문제는 깊이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잉글랜드 개혁파 후손들이 개척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정착민들은 무엇보다 국가 권력이 쥐고 있던 종교의 강제성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것을 우선 해결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국 잉글랜드를 등진 결정적 이유도 바로 국가에 의한 종교적 억압이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는 우선 모든 유신론자에게 종교와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잉글랜드 개신교,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장로교, 루터교, 급진적 종교개혁 후손들, 스위스-독일계 재세례파 종파인 아미시파(Amish)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이런 점에서 신대륙에는 중세 천 년 동안 그리고 종교개혁 초기에 유럽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신천지’가 펼쳐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톨릭교도와 유대인들 그리고 비신자들에게는 정치 참여의 권한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론자들과 타종교에 대한 자유를 상호인정하려는 펜실베이니아는 “근대적 미합중국의 특징적인 종교적 패턴을 발전시킨 최초의 식민지”가 되었다. 즉 “교회라는 배타적 지위를 요구하지 않고 함께 모여 교회를 구성하는 개신교 케이크의 한 조각인 교파(denomination)”(584)를 형성한다. 유럽에서 겪었던 종교적 갈등 나아가 종교 전쟁에서 종교적 관용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절감했던 것이다. 모든 종파가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은 중세 로마 가톨릭 제도의 완전한 극복의 신호이며 종교개혁의 자유가 북미에 실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사건에는 이미 유럽에서 여러 번에 걸친 종교적 자유에 대한 선언들(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ünden) 실용주의, 토르다 선언(Declaration of Torda) 속의 헝가리인들과 트란실바니아인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바르샤바동맹(Confederation of Warsaw)’)이 비록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배경이 되었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주목할만한 사상가는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이다. 계몽주의의 선구자로, 그리고 자연법 사상과 계약론을 통해 미국 헌법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당대 사상가였다. 그는 자신의 계약론을 하나님으로부터 왕권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왕권신수론자들과 벌인 논쟁을 통해 발전시켰다. 창세기 1장 28절에 나타난 아담에게 주어진 통치권이 영국 왕까지도 이어진다는 왕권 옹호자들에 대해 로크는 그 구절은 계약론이 그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로크는 성경으로부터 사회계약론의 토대를 확립하고 계약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그리고 개신교 명예혁명의 구세주로 불리는 조지 1세(George 1, 1660-1727)라는 인물이다. 그는 정적 스튜어트 가문의 복귀를 차단하면서 영국을 그야말로 대영제국으로 선도하는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해 준 것이 유럽 최초 ‘산업혁명’과 함께 가져다준 엄청난 부였다. 이러한 재력을 기반으로 영국은 인도에서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제압하고 대영제국으로 발전한다. 잉글랜드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영국의 모든 영웅담은 바로 이 시기에 쏟아진다. 가톨릭교도에게 왕위 계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의회 민주주의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명예혁명 이후 개신교 잉글랜드와 개신교 스코틀랜드는 대영제국 영웅담의 산실이 된다. 해 지지 않는 나라의 명성을 드높였던 영국인 영웅담 제작 이후 적어도 한 세기 이상 이것은 동시에 개신교의 승리담으로 이어진다.(592)

하지만 북미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17- 18세기 영국인들의 정신을 움직이던 동력은 대영제국 발전의 사건보다 경건주의(Pietism) 운동이 더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영국 개신교 발전은 다르게 말하면 경건주의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개혁파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건주의는 종교개혁 신학의 정통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30년 전쟁, 20년간 대북방전쟁 등 영국인들이 겪었던 전쟁 논리의 바탕에 종교적 근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은 신학의 본질보다 인간의 이상적인 상호공존의 계약론을 수립하는 것이 훨씬 좋아 보였다. 이렇게 보면 영국에서 큰 발전을 이루고 북미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요구가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중세 가톨릭의 상징이었다가 종교개혁으로 잠시 사라졌던 수도원, 수녀원, 탁발수사가 각각의 신도회를 중심으로 자선사업, 순회설교, 명상 등을 통해 부활한다. 이는 이후 개혁파 신학의 정체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로마 가톨릭 방식을 다시 회복하는 양상을 띠게 한다. 독일 북부와 스칸디나비아 개신교 교회를 둘러보면 로마 가톨릭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이유가 바로 수 세기 동안 경건주의를 표방한 결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종교적 이념의 갈등보다 먼저 고아원이나 의료기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과 생존기술을 가르치는 전문대학 설립, 시민들을 위한 도서관과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은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선교 전략임이 틀림없다. 종교 생활도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의식과 예배 전통을 다시 복원한다. 이렇게 경건주의는 개혁파 신학이 성경권위를 바탕으로 명확한 진리체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혼돈을 거듭하는 동안 개혁파 신학의 극복처럼 보이며 영국과 북미로 확산한다.

<202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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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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