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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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9-01 23:2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말씀이 육신이 됨 (2)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5. 계시의 비밀(Das Geheimnis der Offenbarung) 2. Wahrer Gott und wahrer Mensch “참 사람과 참 사람”에서 두 번째 내용, “말씀이 육신이 됨”을 GG 189쪽에서 시작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선 일반적으로 그것이 인간이, 그것도 참되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으며, 인간적 본질과 현 존재 바로 그 자체에, 인간적 본성과 형제 그 자체에, 또한 우리들이 소유하는 역사성 그 자체에 참여하였음을 뜻한다(GG 189, 신준호)를 제시하였다.

2.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물론 그것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오직 말해질 수 있는 의미에 관하여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묻는다: 말씀이 된 바 그것은, 그것이 말씀이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육신이 되는 중에서,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말씀이기를 그쳤는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대답하게 된다: 그것은 육신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되어야 한 것은 “육신”이 우선적 그리고 그 자체적으로 인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 본질과 현존재를, 인간적 유형과 본성, 인간성(humanitas)을 뜻하는데, 이것은 한 인간을 하나님과 천사와 동물과 구분하여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GG 192, 신준호). Daß das Wort “Fleisch” ward, heißt allerdings: daß es ein Mensch ward. Aber es gilt vorsichtig su sein hinsichlich der Meunung, in der das allein gesagt sein kann. Fragen wir: was das Wort wurde, indem es in seiner Fleischwerdung, ohne aufzuhören das Eort zu sein, nun dennoch aufhörte, nur das Wort zu sein? und lassen wir uns sagen: es wurde Flesich-so ist zu bemerken, daß mit “Flrisch” zunächst und as sich sein, menschliche Art und Natur, Menschhiet, humanitas, dasjenige, was einen Menschen zum Menschen macht im Unterschied zu Gott, zum Engel, zum Tier(KD., 163).

바르트는 “말씀이 육신이 됨”을 말씀이 인간의 본질과 현존재에 참여(teilhaftig/participant)하는 구도로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 본질(Wesen)과 인간 현존재(Dasein)를 모두 동일한 인간으로 보고, 둘이 합한 것을 인간성으로 본 것(makes a man as opposed to God, angel or animal)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 본질이 인간 현존재가 되는 과정에 말씀의 참여가 있게 된 것이다. 인간 본질이 인간 현존재가 실현되는 것을 현실성(Wirklichkeit/reality)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르트는 양자론과 가현설을 피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상태에 머문 성육신 이해를 전개하고 있다.

바르트가 근거로 삼은 문장은 Christus non hominem, sed humanitatem, non personam sed naturam assumit(J. Wolleb, Chr, Theol, comp, 1626, I. C. 16. can, 3.1.)이다. 볼렙(Johannes Wolleb, 1589-1629)은 바젤에서 폴라누스(A. Polanus, 1561-1610)에게 배웠고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한 신학자이다. 폴라누스는 바젤에서 활동하며 루터 사상과 칼빈 사상 그리고 개혁파 사상을 종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의 『기독교 신학 개요(Syntagma theologiae christianae)』(1609년)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라미즘(Ramism)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바르트가 인용한 볼렙의 문장 뒷부분, “인격이 아닌 본성을 취하심”은 무인격적 취택(Anhypotatia)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앞부분 “인간이 아닌 인간성을 취한다”는 인간성을 취함에 대해서는 모호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르트가 인용하는 볼렙과 폴라누스는 바젤 신학자로 칼빈의 후예들이 있는 제네바와 신학 구성에 약간 차이가 있다. 칼빈의 업적 중 하나는 스위스 칸톤의 여러 신학을 한 믿음 문장, 즉 블링거가 작성한 제2 헬베틱 신앙고백서에 서명하여 연방국가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칼빈 계열과 블링거 계열의 신학에서 언약 이해, 쌍무와 편무에서 차이가 있다. 칼빈파는 교회와 형제 연합을 위해서 희생과 인내를 견지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고 참 사람임을 제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 인간이 나란히 현실적으로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참 하나님이 참 인간이 된 상태로 제시한다(GG., 193).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자체이다(Dieser Mensch aber als solcher ist), 즉 그 인간 자체(Er ist, sein)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특수한 가능성(besondere Möglichkeit)을 현실화시켰다. 인간적 본질과 현존재가 특수한 가능성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점유(Aneignung/apporpriation)된 것, 인간적 본질과 현존재의 이러한 특수한 가능성이 하나님의 아들의 가능성으로써 취해지고 수용되어지며(Aufgenommenwerden/adoption and assumption)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현실화(Verwirklichung)를 그리스도의 육체(Fleisch Christi)에서 창조하고 유지한 유일한 현 존재적 근거(Daseingrund)이다(GG., 193-194).

바르트의 성육신 이해에서 “인간 예수”, “육신 그리스도”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성령 잉태를 굳이 세우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 15. 3. 성탄절의 기적”에서 설명을 보면서 더 면밀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육신에서 특수한 가능성에 의해서 현실화되는 것이 바르트가 제시하는 성육신 이해이다. 특수한 가능성이 없다면 말씀의 육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die Wirklichkeit Jesu Christi)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인격 안의 하나님 자신이 행동하시면서 육체 안에서 현재하신다. 인격 안의 하나님 자신이 현실적이며 인간적인 존재와 행동의 주체이시며, 이 존재와 행동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써 현실적일 수 없다. 그것은 참되고 순수한 인간적 존재와 행동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쯤의 신이 아니다. 그분은 천사가 아니다. 그분은 이상적 인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와 동일한 피조물로서 개인적 인간으로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다. 그래서 또한 우리를 불순종으로 몰아가는 위치와 상황에도 동일하게 놓이셨다(중략) 그래서 그분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며 우리의 하나님과의 화해이시다”(GG., 194-195).

바르트는 인간 예수의 인격 안에 하나님(Gott selbst in Person)을 규정하며, 행동의 주체로 세우고 있다. 인격 안에 신이 행동의 주체가 되면 인간 예수의 행동은 신적인 행동이 된다. 순수한 인간적 행동이지만 신적 행동이 된다. 반 신(demigod)이 아니라 이상적 인간도 아닌 한 개인으로 동일한 인간(equal state)이다. 바르트의 큰 맹점은 “왜 동일한 한 인간 예수”만이 우리를 위하여(für uns), 하나님을 위하여(für Gott) 다가서는 행동하였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예수가 우리의 대표(represents)를 자처하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르트가 세운 전제(前提, presuppositions)이다. 반틸 박사(Cornelius Van Til)는 바르트의 전제를 거부하면서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ts)를 표방하였다. 김성삼 박사는 바르트의 신론 전제(행위하는 신)가 칼빈의 전제(존재하는 하나님)와 다름을 밝혔다. 바르트는 성육신 이해에서도 자기 전제를 세우고 그 전제 위에 자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는 바르트 개인이 세운 신학 체계를 따를 것인지, 정통 신학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제언하고자 한다. 정통 신학은 신학 체계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의 진술이다. 바르트의 체계에서 체계의 아름다움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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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이메일 : ktyhbg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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