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정론의 담론(談論) 12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로마서 5장 20절-21절 개역성경)
죄의 문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타학문으로 이를 설명하기 어려우며, 신학적으로도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여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셨다’는 주장으로, 죄의 책임을 인간에게 전가하려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온갖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죄를 허용하셨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 전반을 하나님께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기독교의 일원론적이면서도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죄의 허용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된 의도에 의한 허용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신정론자들은 성경에 의한 논리로 하나님을 변호하기보다는 타 학문과의 융합적 접근에 치중한 비정상적인 논리로 하나님을 옹호하려는 경향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결과, 성경을 단순한 고문서로 취급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무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죄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죄의 필요성’이라는 표현에 의문을 품는 것은 기독교 신학자 대부분일 것이다. 전통 신학에서의 죄는 하나님과 전혀 무관하고 사탄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것이 사실이며,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의 필요성은 은혜로 살게 하시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섭리 가운데, 협의(狹義)적인 관점에서 본 죄의 필요성은 죄로 인해 죽은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게 하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해 죄를 범하고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로고스 λόγος)에 따라 예정된 택한 백성들이 그 은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죄로 죽게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로마서 11장 32절 본문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와 갈라디아서 3장 22절 본문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과 죄 아래 가두어 두시는 것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과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 역시 창세전에 약속하신 은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살펴보면 죄의 필요성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성취를 이루시기 위한 계시섭리의 일환이다. 위의 본문 로마서 5장 20~21절 본문에서도 죄의 필요성이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명쾌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에 대하여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 관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신 이유는 인간이 죄를 범하고 죄 아래 갇혀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속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여 은혜로 살게 하시려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어 놓으셨다는 뜻이다”라고 밝혀주고 있다.
죄의 필요성은 은혜를 알게 하시려는 데 있다.
죄의 기원에 대해 신정론의 담론 세 번째 기고 글에서 이미 서술한 바가 있다. 죄(악)는 인간 타락보다 앞선 창세전에 하나님의 모든 작정 속에 인간의 죄를 의도적으로 섭리하신 것이다. 죄를 의도적으로 계획하신 지엽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하시는 데 있다. 그러면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율법을 주셔서 죽게 하셨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해 주시는 섭리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에 근원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를 인간에게 역사 섭리를 통하여 계시하시지 아니하면 인간은 무조건적인 은혜를 감지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는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죄 아래 가두셨다가 창세전에 예정하신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시려고 계시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셨다.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로마서 3장 23절에서 24절 본문에서 뒷받침해 주시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증거하셨다.
그리고 로마서 5장 12절과 14절 본문에 아담의 선악과 사건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하면서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15절에서 18절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온 세상에 많은 사람이 정죄로 죽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아담이 타락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은혜가 전제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아담을 범죄 하도록 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도록 섭리하셨다. 이러한 목적은 택한 백성들로 하나님의 근원적인 영원한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데 있다.
또한, 예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탕자의 비유를 들어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 되어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와 사도 요한 역시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증거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성취의 내용들을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시려고 인간으로 하여 타락하게 하셔서 죄인이 되게 하고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해 주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인간이 범죄하므로 타락할 것과 타락한 인간을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하실 것을 계획적으로 의도하신 것이다. 그 목적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려는 데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문헌
박용기,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진리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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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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