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호칭과 시가서의 주권성
구약성경 시가서는 욥기와 시편을 비롯하여 잠언 및 전도서와 아가로 구성되어 있다. 욥기는 욥의 흥망을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전능성을 찬양하고, 시편은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신실성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잠언은 지혜로 나라를 세워 다스리게 하시는 여호와의 주권성을, 전도서는 영원한 행사에 대한 여호와의 영원성을, 아가는 변함없는 사랑을 솔로몬의 꿈을 통해 여호와의 자비성을 찬양한다.[박용기, 『성경강론 6』(성남: 진리의말씀사, 2000), 3194 참조] 이와 같은 시가서에 계시된 언약 자손의 찬양은 앞선 기고(261호) ‘여호와의 호칭과 구약의 논리적 통일성’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의 역사서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구약의 역사서가 역사 섭리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하신 내용이라면, 구약의 시가서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시문학적인 양식의 찬양을 통해 언약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서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계시 내용은 시가서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계시 내용의 근거 역할은 한다.[박용기, 『성경신학개론』(성남: 진리의말씀사, 1997), 167-168] 이러한 언약 자손의 찬양은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호칭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리고 이 호칭 이해는 인간의 의지와 요구와 행위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앞의 모든 찬양은 오직 신적인 절대 주권적 통치권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시가서의 차례대로 여호와의 주권적 속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전능하신 여호와
여호와의 전능성을 찬양하는 욥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욥에게 “주께서는 무소불능 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 42:2)라고 찬양하게 하신다. 이 구절에서 보듯이 언약하신 대로 만사만물을 주관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여호와는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절대주권자이시다.
욥기 전반부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욥을 오히려 사단에게 맡기고 욥의 집을 모두 망하게 하신다(욥 1:-3:). 욥의 가축과 종들을 빼앗고 아들들까지 죽게 만드실 뿐만 아니라 온몸에 악창이 나게 하고 아내까지 욥을 저주하게 하신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성은 사단에게도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뜻을 드러내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찬양한다.(잠 16:4) 이러한 의인 욥을 사탄에게 맡겨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보편적 상식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여호와의 절대주권적 섭리를 통한 전능성 계시는 인간의 무능과 무지를 철저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성은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에서도 잘 나타난다.(욥 4:-37:) 욥의 세 친구들은 차례로 나타나 한결같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신관에 근거해 욥이 당하는 고난이 죄의 대가에 따라 형벌로 주어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욥은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욥 23:13)라고 하며 여호와의 전능성을 강변한다. 이는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죄의 대가에 의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작정에 의한 신적 섭리 사건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인도 전능하신 여호와의 관리와 통제 아래 있다고 말한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욥기 21:7~9)한다고 하며 악인의 형통도 여호와의 주권성과 전능성이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여호와께서는 의인도 망하게 하시고 악인을 형통하게도 하시는 여호와는 인간의 행위 조건에 매이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하신 절대주권적인 뜻에 따라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심을 계시하신다.
친구들과 신관에 대한 논쟁이 끝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호와께서 친히 욥에게 나타나셔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들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르쳐 주시고 망하기 전 욥의 소유보다 갑절의 복을 주셔서 회복시키신다. 그리고 욥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뵙게 되었다는 고백과 함께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의 전능성을 찬양하게 하신다.(욥 38:-42:)[박용기, 『성경신학개론』(성남: 진리의말씀사, 1997), 168-178 참조]
이와 같이 여호와는 빛과 어두움의 창조자이시며, 인류의 타락과 부패도 섭리하시는 존재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욥을 사단에게 맡기고 욥의 집을 모두 망하게 하며 생명의 끝자락까지 욥을 몰고 가시는 절대주권자이시다. 즉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뜻대로 인간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전지 전능성을 오직 욥에게만 깨닫게 하신다. 사단까지 절대주권적 통치 능력을 계시하고자 사용하시는 전능하신 존재다. 그리고 욥을 통해 여호와의 전능성을 찬양하게 하는 과정은 그 자체 여호와 호칭에 담긴 주권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2. 신실하신 여호와
여호와의 신실성을 찬양하게 하는 시편에서도 여호와 호칭을 통한 주권성 계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호와는 앞선 기고 ‘여호와 호칭의 신학적 의미’(267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시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조들에게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구약의 주권적인 역사 섭리에 바탕을 두고 여호와의 신실하신 속성을 찬양하게 하는 계시의 말씀이다.
시편 1편 3-5절에는 ‘복있는 자는 형통케 하고 악인은 심판’할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이 계시되어 있다. 곧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한다’(시 1:6)는 것이다. 그리고 시온에 아들인 왕을 세워 대적을 멸하고 열방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며 그 아들을 여호와께서 낳으셨다고 증거한다.(시 2:6~8) 이러한 언약은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세우신 모형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체적으로 이루어 주실 것에 대한 언약의 말씀이다. 그런데 세우신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과정에는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가 적용된다. 즉 인간의 기대와 예측과 소원과는 무관한 절대주권적 방식으로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자신의 신실성을 계시하신다.
이렇게 계시된 여호와 신실성은 인간 중심적 판단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악인은 분명 망하게 하신다고 했지만 오히려 언약 자손이 고난과 수모를 당하고 대적들은 흥하는 과정이 발생한다. 언약 자손들이 받아 누릴 축복들은 온데간데없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직면하게 하신다. 택자들을 불택자처럼 대적에게 맡기는가 하면,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불태울 때도 여호와는 오히려 침묵하시면서 언약자손들의 간구를 통해 여호와의 신실성에만 의존하게 하신다. 이러한 언약자손의 간절한 기도가 여호와 신실성에 대한 찬양이 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악한 대적들이 언약자손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순간에도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통치와 권능을 기억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섭리 방식의 원리가 바로 여호와의 주권성이며 이 주권성을 바탕으로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신실성이 온전히 계시된다.
이상과 같이 복 있는 자의 형통과 악인의 멸망 언약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 ‘여호와’를 위하여 성취하시되 그 방법은 언약 자손들의 기대와 의지와 능력과는 전혀 무관한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게 하신다. 모든 언약 성취의 역사가 오직 은혜일 때만 여호와 중심의 주권성이 바르게 이해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