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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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4-15 08: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절대 권위와 본문 편집의 섭리 과정 (Ⅴ)


<지난 호에 이어서>

3. 70인역과 불가타, 개역성경의 구조와 차이점

구약성경 헬라어 번역 70인역(Septuagint, LXX)은 제롬(히에로니무스)이 라틴어로 번역했다. 제롬은(에우세비우스 소프로니우스 히에로니무스,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약 347년-420년) 현재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국경 부근 스트리돈(Stridon)에서 출생했으며 로마, 수리아 안디옥, 베들레헴 등에서 활동했으며 베들레헴에서 사망한다. 그는 이전 라틴어 성경들이 70인역(LXX)을 기반으로 한 것과 달리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으며 신약성경은 구(舊) 라틴어 성경(Vetus Latina)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제2정경(외경)’은 70인역에 추가한 책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황과 교회의 요구에 따라 불가타에 포함시켰다. 그는 대략 23년(382~405년)에 걸쳐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다. 불가타 번역 성경은 이후 로마 가톨릭의 공식 성경이 되었으며 종교개혁 이전까지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 역할을 했다. 그는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Pope Damasus I)의 요청으로 라틴어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먼저 기존 구(舊) 라틴어 성경(Vetus Latina)의 사본을 수정하는 작업부터 착수했으며 385-389년에는 베들레헴으로 이주해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구약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390-405년에 구약성경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번역하여 기존 70인역(LXX) 번역과 구별되는 라틴어 성경 ‘불가타 성경’을 내놓는다.

‘불가타(Vulgata)’란 라틴어는 ‘불가타 에디치오(Vulgata Editio’)’라는 표현에서 나왔다. 불가타 어원은 형용사 ‘vulgatus’이며 ‘대중적인,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통용하는(common, popular)’이라는 뜻이며, ‘Editio’는 ‘판, 출판된 책(edition)’을 뜻한다. 그래서 ‘Vulgata Editio’는 ‘통용되는 판(common edition)’이란 뜻이며 줄여서 ‘불가타(Vulgata)’라고 한다. 라틴어 사용의 서방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성경이며 종교개혁 당시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에서 가톨릭의 공식 성경으로 선언한다. 그런데 제롬은 불가타 번역에서 70인역의 시가서 그룹에서 ‘욥기’를 시편 앞으로 배치한다. 이러한 편집 구조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마르틴 루터를 포함한 개신교 신학자들이 불가타의 욥기를 시가서 맨 앞에 두는 방식을 따랐으며, 루터 성경과 제네바 성경 등 향후 인쇄되는 성경에서도 욥기 배치 방식은 그대로 정착된다.

불가타에서 제롬은 욥기를 시가서 가장 앞에 배치하는데, 이는 그가 구약성경의 라틴어 번역을 70인역이 아니라 히브리어 원문을 사용한 것과 동시에 70인역의 본문 배치 구조를 동시에 고려한 결과다. 그는 히브리어 구약 본문과 그 구조에 바탕을 두고 라틴어 번역에 임했다. 하지만 70인역의 구약 성경 본문 배치에도 중요한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구약성경 (역사적, 신학적, 문학적) 전체 상황을 고려해 욥기를 마치 서론처럼 시가서 제일 앞에 둔다. 제롬은 문헌상 욥기가 가장 오래된 문헌 중 하나로 보았다. 적어도 족장인 욥의 경우는 족장 시대(아브라함 시대) 인물일 가능성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는 히브리어 성경(타나크)의 시가서(케투빔)의 시편 앞에 욥기를 배치함으로써 ‘신학적 중요성’을 고려한다는 의도도 있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욥기는 인간의 고난과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진리를 다루는 지혜 문헌임을 강조하고 욥기를 시가서의 시작으로 배치한다. 이러한 배치의 변화에서 제롬은 히브리어 원문의 권위와 가치를 고수하려는 의지, 동방 교회의 70인역과 의도적으로 차별화하여 서방 기독교 전통 수립을 꾀했다고 할 수 있다.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히 4:12)의 권위가 라틴어 번역 성경 불가타를 주관하셨다!

나아가 제롬은 불가타에서는 70인역과 다른 몇 가지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먼저 ‘외경(外經, deute-rocanonica)’ 정리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제롬은 ‘외경’을 ‘교회의 읽을거리’로 인정하지만 정경(正經)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토빗서(원래 히브리어로 작성했지만 원본이 사라짐), 유딧서, 마카비 상, 마카비 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예레미야의 편지 포함) 7개를 외경으로 보았다. (동방 정교회는 더 많은 제2정경을 포함한다. 에스드라 1서, 마카비 3,4서, 시편 151편) 이는 모두 70인역 번역에 사용한 헬라어 책들이다. 물론 유대인 히브리어 성경 목록(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를 포함한 당시 교회의 주류 신학자들은 70인역의 정경 권위를 주장했다. 비록 헬라어에 능통하지는 못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70인역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이루어진 영감 받은 번역으로 보았으며, 70인역이 히브리어 원본과 차이가 있더라도, 하나님이 헬라어 번역자들을 통해 새로운 계시를 주셨다고 보았다. 그리고 70인역은 교회가 사용할 공식 정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방 교회는 정경으로 히브리어 성경(마소라 본문)과 70인역 어느 것을 따를지 논쟁에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70인역을 따른 라틴어 성경이 교회의 공식 성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정경관(正經觀)은 수긍할 수 없다. 외경을 포함한 70인역에 대해 정경 기록에 임한 하나님의 영감을 동등한 영감으로 적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외경 포함의 70인역을 교회가 사용할 공식 정경으로 주장한 것은 성경 권위에 대한 명백한 훼손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정경 확정의 과정이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의 원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엄격한 섭리 역사임을 보여준다고 본다. 다시 말해 성경 권위의 역사는 원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불가타 번역자 제롬은 본래 정경에서 외경을 배제한 자신의 번역이 교회 정경으로 채택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외경을 포함한 70인역을 정경이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로마 교회가 자신의 불가타 번역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결국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불가타 번역에 외경을 포함하게 된다. 외경에 교리적 권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제롬의 정경과 외경 분리의 반복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은 외경도 정경으로 더욱 확고히 한다. 이후 8-9세기경 샤를마뉴 대제에 의한 ‘카롤링거 르네상스(8-9세기)’와 함께 가톨릭교회는 자기 개혁을 단행한다. 특히 가톨릭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경 연구와 사본 정리를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주후 789년 아헨(Aachen) 공의회는 외경을 포함한 불가타 성경을 서방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확정했다. 특히 리용(Lyon)을 중심으로 가톨릭은 예배와 신학 교육에서 외경을 포함하는 불가타를 정경으로 확정한다.
70인역에 포함된 외경을 다시 정경으로 채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톨릭교회 권력이 외경을 정경으로 결정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 섭리의 주관자를 영존(永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본다면, 로마 가톨릭에 의한 외경 포함의 정경 확정 공의회는 절대진리인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의한 심판 사건이 그 본질이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성경의 절대 권위와 성경 본문의 편집(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