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국제관계 속의 대한민국
2019년 지금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국제관계가 중요한 시기이며 시대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한국 정부는 더욱더 그러하다. 비록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남·북·미 정상회담을 미국에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20일 동아일보는 일면에 한국이 “남·북·미 정상회담 열자”고 제안을 했다는 큰 글자를 실었다. 그다음 날 같은 신문에서 청와대의 대변인이 3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런 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말한 것을 인용해 실었다. 그러한 사실의 여부와 관계없이, 남한과 북한과 미국은 이제 과거 그 어떤 나라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국제적인 관계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를 기초로 삼아 미래를 전망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 중요성은 표면적으로는 외교나 정치적인 성질로 많이 논의되고 부각된다. 실제적으로나 이면적으로는 그 중요성의 중심은 경제적인 측면이다. 외교나 국제관계가 경제적인 득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대개 잘 알려져 있다. 오대양 육대주 속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이하다. 그 가운데서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6·25전쟁을 치르고 약 70년을 지냈다는 점은 아주 유별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유의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주요한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국제적인 관계의 상태를 두 정상과의 관계로 미화하고 포장하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국제적인 관계나 어떤 양국(兩國) 간의 연결은 어떤 국가의 정상이나 대표에 의해서 좌지우지될까? 이러한 문제 제기를 던지는 것이 이 글의 논지가 될 수도 있다. 너무도 복잡하고 종합적인 글로벌(global) 시대를 진단하고 통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를 통하여 세계관이나 역사관 등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점이나 논지를 밝히면서, “北에 얻어맞고 美 경고받고 ‘샌드위치 한국’(2019년 3월 22일 동아일보 1면의 큰 글을 인용함)”을 보고 주요한 국가 간 관계를 중심으로 아주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첫째, 남·북·미의 관계이다. 이 남·북·미의 관계는 세계 속에서 남한과 북한과 미국이 함께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유기적으로 된 것이다.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통하여 생겨났다. 큰 전쟁을 겪은 남한과 북한은 강대국들의 지원과 지지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전쟁으로부터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과 미국은 각각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국제무대 특히 유엔(UN)과 같은 국제적인 기관이나 기구들을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2020년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경향으로 치닫는 것을 보며 국가마다 점점 더 분주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주 긴밀하게 관련된 남한과 북한과 미국은 각각 국내의 상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둘째, 한·중·일의 관계이다. 위의 남·북·미가 상대적으로 1950년에 집중된다면,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매우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있다. 또 이 긴 시간은 함께 더 가까운 공간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공간적인 관계는 문화적으로도 더 깊게 영향을 주고받았다. 과거의 긴 얽힌 관계는 지금에 이르러 경제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한·중·일의 관계는 남·북·미의 관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남한과 북한의 관계이다.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혈안이 되어, 그 이익에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제거하기까지 하면서 자기 나라들을 유지해 가려 한다. 이러한 각축전(角逐戰) 속에서 남한과 북한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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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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