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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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8 20:5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자신도 잘 알기 힘든 마음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남아 오는 것은 아마도 그 말의 뜻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이 말이 지닌 설득력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마음의 본질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음과 성경이 말하는 마음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근본적인 차이의 중심은 영(靈)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가의 유무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동서양에 공통으로 남아 있는 난제가 바로 영혼불멸설이다. 이러한 문제를 여기서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방향이 아니다. 이렇게 시작부터 이 마음을 이 짧은 지면에서 주제로 내세운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삶의 핵심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마도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가를 제기하기 위하여 연구문제의 성격으로 세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지혜가 주관하는 마음이다.
마음을 잡아당기며 좌지우지하는 그런 지혜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마음의 근본이 되는 지혜이다. 이런 지혜는 모든 지식의 근본이며 모든 마음을 밝히는 빛이다. 아마 절대적인 지혜일 것이다. 이런 지혜는 성경만이 밝혀주고 있다. 이 지혜는 성경 진리에서 나오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부터 이 지혜를 내세우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는 것은 바로 지혜의 영이다. 이 지혜의 영은 수면을 운행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 영이다. 이러한 지혜를 집중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의 시가서가 아닌가? 그중에서도 잠언(箴言)서에서는 이 지혜가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찬양하고 있다. 잠언서의 중간 부분(잠10:~22:16)은 ‘왕가를 세우시는 여호와(성경강론 8권)’이다. 왕가를 세우시는 것은 마음을 주관하시는 일이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절대자의 명령을 수행한다. 이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표상이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 마음의 근원이 지혜의 영에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 언어를 다스리는 마음이다.
언어는 자기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보통 말조심해야 한다고 많은 교육을 한다. 이 중요한 말이 어디에 있는가? 성경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일반적으로도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 대개 동의하고 있다. 성경은(창 11장) 이 언어를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다스린다고 선언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근거를 이러한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강림했을 때 방언의 표적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신다는 확증이었다. 그 확증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입에서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근원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하였는지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말하려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입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개 알고 있다. 이렇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다스리는 마음이 있을까? 이것 또한 중요한 연구 문제이다.
셋째, 믿음을 착각하는 마음이다.
믿음을 착각한다는 것은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의미이다. 성경은(마 17장)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단언한다. 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위에서 말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분별하는 것도 더욱 만만하지 않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고후 13장) 믿음 안에 있는지? 또 믿음 위에 섰는지? 자신에게 시험하라고 마음을 두드리고 있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목차의 가치
칼럼_외식(外飾)하는 세태(世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