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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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1-21 21:3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치우치는 구습


온전하고 흠이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생각들이 지나치게 치우쳐 극우(極右)나 극좌(極左) 등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시간은 어김없이 2023년 연말에 다가왔다. 이 시간 속에 강하게 묻어 있는 것이 바로 구습(舊習)이다. 구습은 예부터 내려오는 낡은 습관이다. 악습은 나쁜 습관이다. 구습은 시간에 강조점이 있고, 악습은 인간에게 지목된다. 구습이든 악습이든 모두 인간의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2023년 11월 초에 KBS ‘아침마당’에서 한 강연자가 “뇌춘(腦春)”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었다. 강조점은 바로 우뇌와 좌뇌를 균형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있었다. 균형적이고 조화롭게 사용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병이나 사고 등이 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이나 슬픈 소식들이 더 많이 빨리 전달되고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소식을 기다리며 찾고 있을 수도 있다. 구습이나 악습 중에서, 무의식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들은 유언비어나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소식이나 일 등을 쉽게 믿고 추종하는 것들이다. 구습이나 악습은 그 자체로 우상화될 수도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구습들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특정한 인간에게 치우친다. 인간에게 치우치는 밑바닥에 인간의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특정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치우친 국가나 사회는 대개 후진국들이다. 서로를 알아가야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그 해석능력은 목숨과도 같다. 애국을 빙자하여 쉽게 상대를 빨갱이라고 단정하여 손가락질한다. 특정한 목사를 선지자로 떠받들며 자랑을 일삼는다.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악습은 모든 인간에게 구습으로 젖어 있다. “그 인간 때문에”라는 식의 핑계로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인간의 문명 가운데서 책임 전가를 하는 것보다 더 잘 발달한 것이 있을까? 인간들은 핑계의 명수(名手)다. 자동차의 충돌사고가 생기면 우선 큰소리부터 치고 본다. 이것은 인간의 구습으로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허울 좋은 명분 이면에도 핑곗거리는 수없이 존재한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치우치는 구습들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상대를 완전히 밑바닥으로 깔아뭉개고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한 인간을 우상처럼 떠받들기도 한다.
둘째, 특정한 지역에 치우친다.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한 이래로 땅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지금도 세계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 세계는 가자지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인지상정이기에 구습이나 악습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역주의가 잘 발달 되어 있다. 국민들의 대다수가 좋지 못한 구습으로 여기고 있다. 특정한 공간이나 지역에 따라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도 한다. 특정한 정치인을 두고서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 수 있는가? 곳에 따라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 구습은 누구나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지역을 성지(聖地)처럼 떠받들고 신뢰하기까지 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치우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셋째, 특정한 시간에 치우친다,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먼저 바친다고 한다. 새벽 시간은 하루 중에 분명히 정신적으로 더 맑을 수 있다. 계절이나 어떤 날을 잡아 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새벽 시간을 신성시하여 우상화하는 것은 그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것은 주일성수(聖守)와 직결되고 있다. 새벽 기도를 언급하면, 과거에 새벽 종소리가 연상된다. 공동문화생활에서 새벽 종소리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내었던 과거의 전통에 과연 문제는 없는가? 이 질문에 새벽 종소리에 잠이 깨어난 주민들의 원성이 없었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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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以色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