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4-03-19 17: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人生無常


인생무상(人生無常)은 온 인류와 밀접하다. 특히 동양사상의 주제이기도 하다. 인생무상을 잘 대변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서(PASS)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 시간과 함께 인생무상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확증시켜 주는 것이 바로 생로병사다. 먼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분석하여 인생무상으로 종합해 보고자 한다. 생(生)은 이 땅 위의 사람이다. 어딘가에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몸의 기초로서 땅이며 흙이다. 이 땅에서 떠나면 그 사람의 이름만 남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사람의 이름은 중요하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로(老)는 몸이 구부러진 모양이다. 사람의 키는 더 이상 크지 않으면, 그 이후에 더 줄어드는 시간만 남게 된다. 땅바닥과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100세 시대에 노인의 연령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한다. 나이와 몸이 얼마나 밀접한가를 강조하고 있다. 병(病)은 기대거나 누운 자세다. 병이 있는 사람은 버팀목이 더 요구되기 때문이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움직이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눕는 자체나 앉아 있는 자체를 결코 비판할 수 없다. 이것은 시간과 깊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사(死)는 땅 밑에 있는 몸을 형상화하였다. 땅에 묻는 장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장례의 마지막 절차는 절하는 자세 등으로서 고인(故人)과의 마지막 이별이다. 이 고인은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간단히 생로병사를 분석하여 인생무상에 연계해 본다.

첫째, 인생이다. 인생을 시간에 중심을 두면, 일생이다. 죽기 전까지 시간적으로 단절되지 않는다. 인생에서의 생로병사는 변화이며 여정이다. 현상이지 본질은 결코 될 수 없다.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구도자(求道者)가 되고 종교인 등이 되기도 한다. 본질을 찾지 못하면 인생만큼 어려운 것도 드물 것이다. 구도자에게서의 본질은 바로 도(道)다. 구도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고 하였다. 이 도는 생명과도 같다. 죽음과도 바꾸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공간과 시간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한 생로병사만을 보아도 그 점은 인정될 것이다. 생로병사의 여정 자체에 모든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둘째, 없음이다. 없다는 것은 존재론과 직결된다. 인생에 시간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시간이 있는데, 그것의 짧음을 아쉬워하며 한탄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시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생로병사와 같은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생로병사와 같은 현상이 인생의 전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숙명론(宿命論)에 아주 가깝다.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에 대한 반대이다. 그 있다고 하는 것의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로 자기 앞에 펼쳐진 인생이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 것이다. 인생에서 참 생명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셋째, 영원이다. 인생무상에서의 영원은 시간의 단절이 없는 연결을 가리킨다. 구도자들에게는 인생의 목적이 영원을 찾는 것이 될 수 있다. 위에서의 도(道)는 시간의 연속인 영원과 밀접하고 통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에서 변화는 논리이며 중심이다. 시간의 과정이며 동시에 시간의 논리다. 시간 자체를 아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시간도 인생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수많은 인생경험이 그 자체로 인생의 본질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마음의 본질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다. 이 마음은 분명히 영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體唯心造)”는 잘 알려져 있다. 인생의 본질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선거전
정신 중심의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