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정론의 담론(談論)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에베소서 1장 3절-6절 개역성경)
유사(有史) 이래, 보편적인 사람들이 인식하는 악은 신을 부정하는 이들에게는 신의 부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전반적인 올바른 신앙생활의 근간(根幹)을 고사(枯死)시키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인간이 이해하는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윤리·도덕적으로 죄 없는 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방관하시는 듯한 현실이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악은 기독교가 풀어야 할 거대한 숙제이다. 그동안 열두 차례에 걸쳐 ‘신정론의 담론’이라는 칼럼을 통해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소는커녕 불편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하루아침에 해소된다면 누구나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면의 한계로 인해 충분한 표현의 어려움이 있기에 향후 깊이 탐구하여 더 자세히 밝혀 보려는 소망이 있다.
‘신정론의 담론’ 주제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앞선 두 번에 나누어 율법의 용도와 죄의 필요성에 관하여 서술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은혜의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은혜는 우리들의 행위대로 주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디모데후서 1장 9절에서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다양한 난제들의 명쾌한 해답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에 있다.
은혜의 부수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케 하시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인간들을 지으신 목적을 알려주시고 있다. 곧 목적이 백성들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데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세와 다윗, 솔로몬은 물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삶의 여정에 일어난 일들의 결국이 시가서에 표현된 것처럼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신 섭리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6절까지 위의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 택한 백성들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계속해서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14절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요약하면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성자 하나님께서 구속과 더불어 성령 하나님께서 믿게 하여 택한 성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데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의 예정하신 은혜와 성자 하나님 구속의 은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치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은 택함을 받은 모든 성도로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섭리하는 방법이었다. 이와 같은 것을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택한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들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섭리하셨다. 곧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부수적 목적을 이루신 것이다. 이러한 부수적 목적은 택한 백성에게 최고선의 가치로 작용하여 생존의 의미를 분명히 해준다.”라고 밝혀주고 있다.
은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시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작정하신 대로 택한 백성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로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은혜를 베푸신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 즉 영광을 계시하시는 데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약 역사서를 통해 택한 백성들이 언약하신 대로 되어지게 하신 일의 결국을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5대 속성, 다시 말하면 전능성(욥기), 신실성(시편), 주권성(잠언), 영원성(전도서), 자비성(아가)을 찬양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도 자비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원천이며, 인간이 받은 은혜보다 우선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자비성을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성의 영광을 계시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은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논리성을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으로부터 찬송을 받으시려는 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소유하고 계시는 자비성의 영광을 계시하시려는 데 있다”고 명확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
또한, 구약성경의 모든 언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이러한 언약이 신약성경에서는 실체적인 것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성에 대한 최고의 결정적인 증거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시 섭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죄(악), 율법은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성을 계시하시려는 도구, 곧 방편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범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성을 계시하시기 위해 세상 모든 종교의 이슈인 죄(악)라는 한 가지 도구를 사용하셨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충족(自充足)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계시하시기 위해 세상 모든 피조물을 섭리하셨던 것이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타종교처럼 복채(卜債)나 받으시는 잡다한 신으로 전락시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인들은 아직도 성숙지 못한 신학, 즉 율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참 진리를 깨닫고 참 자유를 누리는 21세기에 걸맞는 기독교로 탈바꿈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두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축약하여 전달하다 보니 아쉬움도 많이 남아 있다. 이번 기고문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신정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동안 책꽂이에 있는 것을 가끔씩 펼쳐 보게 하셨던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라는 책을 몇 번씩 되새김질할 수 있는 시간의 여건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30대 청년의 시기에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 기독교 역사관, 인생관, 세계관 등에 영향을 끼치게 하여 주시려고, 세상의 값진 보화보다도 귀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소개해 주신 은사와 교회동역자협회 신앙의 선후배를 만나게 하여 주시고 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아 믿고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로마서 11장 33절-36절 개역성경)
참고문헌
박용기,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진리의말씀사)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