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6-08-25 21:0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교회체제개혁 총론 (9)


3. 체제개혁의 실제

체제개혁의 실제는 개신교가 안고 있는 당면한 문제들을 개혁하는 구체적 상태나 형편을 말한다. 곧 성경적인 올바른 교회체제로 탈바꿈하는 실제적인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앞서 개신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교회헌법에 의한 법치주의이고, 둘째는 교권남용에 의한 권위주의이며, 셋째는 허례허식에 의한 형식주의이다. 개신교는 성경적인 올바른 교회의 체제로부터 아주 멀리 빗나간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가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비 이단들의 맹렬한 활동이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의 정체성마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개신교의 체제개혁은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 아니한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다. 곧 개신교가 처한 심각한 현실은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성경에서 문제해결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를 아주 버리시지 않고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차제에 개신교는 성경말씀에 의한 철저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따른 문제해결에 대한 과감한 용단이 필요하다. 지금은 문제해결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때다. 다시 말하면 병세가 심할수록 정확한 진단에 의한 질병의 원인을 찾아 치유방안을 강구할 때라는 뜻이다.
개신교가 당면한 문제들은 대부분의 종교집단은 물론 과거 유대교에도 있었다. 이는 인간의 타락성에 뿌리를 두고 언제라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 규명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뿌리를 제거하여 건전한 교회로 개혁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비성경적인 교회헌법에 의한 법치주의적 정치는 개혁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그뿐만 아니라 교권남용에 의한 권위주의적 행정을 비롯하여 허례허식에 의한 형식주의적 의식 역시 반드시 개혁해야 옳다.
1) 법치주의적 정치개혁

개신교의 법치주의적 정치개혁은 교회체제개혁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이는 법치주의적 교회정치가 인본주의에 기초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조장하는 산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교회지도자들이 교회헌법을 성경에 근거해서 제정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성경에 대한 정확한 뜻을 깨닫지 못해 성경관에 대한 논쟁이 지금도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회헌법은 정확한 성경적 근거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도자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제정한 잘못된 유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의 가부결정에 따라 제정한 교회헌법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다스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예외로 치더라도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개신교의 법치주의적 정치체제는 반드시 개혁을 통해 바로 잡아야 옳다. 개신교 안에는 성경교사 각자의 주관적인 성경해석으로 인해 여러 교파가 난립하고 있다. 이들 교파마다 자기들 나름대로 제정한 헌법으로 교회를 다스리고 있다. 곧 인위적인 다양한 교회헌법을 제정해 신본주의를 사칭하는  통치행위를 자행하는 셈이다. 이렇게 행하는 비성경적인 개신교 정치체제는 아주 다양하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몇 가지 유형으로 모을 수 있다. 첫째는 감독정치체제이며, 둘째는 조합정치체제이고, 그리고 셋째는 장로정치체제이다.

(1) 감독정치의 개혁

감독정치체제는 지도자들 가운데서 선출된 감독이 교회를 전적으로 다스리는 정치체제이다. 흡사 로마가톨릭의 교황정치와 방불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가별로 분권을 이루어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상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주로 감독교회나 감리교단에서 선호하는 체제이다. 이를 선호하는 이유는 교회의 질서유지와 일치단결을 유도하기에 편리하다는 점에서다. 곧 감독인 교회의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해서 온 성도가 일치단결하므로 교회질서가 잘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한다. 따라서 감독정치체제는 철저한 인본주의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전형적인 독제정치체제나 다름없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권력이 집중된 독제정치는 온갖 부패와 타락을 가중시키는 매우 잘못된 체제임은 자타가 모두 인정하는 바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마저 왜곡시키는 감독정치체제는 반드시 개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감독정치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결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직명(職名)의 의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하고, 둘째는 교회의 참 감독은 오직 그리스도임을 망각한 것이다.
ㄱ. 직명의 의미에 대한 오해   

일반적으로 ‘감독’이라는 직임의 명칭은 권위적이며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신약에서 ‘감독’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ejpivskop    ")’라고 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감독자’ 또는 ‘감독’이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에 감독에 해당하는 대상은 본질상 종교적인 특별한 의미에서는 신에게 적용해야 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감독’은 ‘보호자’ 또는 ‘후원자’라는 탈권력적 의미로 번역해야 한다. 이는 신약에 언급된 ‘에피스코포스’라는 말이 대부분 하나님이 아닌 성도에게 해당되는 직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돌보며 보호하는 ‘장로’나 ‘목사’의 직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감독정치체제는 마땅히 개혁해야 할 체제임이 분명하다.

ㄴ. 교회 참 감독인 그리스도

신약시대에 교회를 통치하는 진정한 ‘감독’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느 누구도 교회를 정치적으로 치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감독이 결코 될 수 없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영혼의‘목자와 감독자’라고 지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감독정치체제는 참 감독이 그리스도임을 망각하고 그 권한을 찬탈하는 인본주의적 정치체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근거를 전연 확보하지 못한 매우 잘못된 체제라는 사실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감독정치체제는 반드시 개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2) 조합정치의 개혁

조합정치체제는 지교회 대표들로 연합회를 이루어 서로 유익한 점을 의론(議論)하는 정치체제이다. 이는 산하 지교회들을 주관하거나 간섭하는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독립교회들의 연합회체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개교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자유정치체제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연합회를 조직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를 선호하는 데는 그럴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곧 다른 치리회의 관할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정치행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교회의 정치체제는 반드시 교회의 절대적 표지인 성경에 근거해서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조합정치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개 교회의 주관적 견해나 판단을 수용해야 함으로 결속력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교리나 신앙적인 탈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큰 것 역시 결함이다.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홍수나 비바람에 무너질 확률이 큰 것처럼 말이다. 조합정치체제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소홀히 여기는 데서 비롯한다. 곧 교회의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서 누린다는 사실과 교회의 온전한 연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ㄱ. 진리 안에서 교회의 자유

교회의 진정한 자유는 복음진리 안에서만 누릴 수 있도록 성도와 교회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떠나 조합정치체제 아래서 인위적인 정치체제와 제도에 따라 교회가 각각 개별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누리려는 생각은 옳은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리 안에서 얻은 자유로 어떠한 정치적 체제나 제도에 의해 통제받거나 억압 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떠나 누리는 정치적 자유는 육체의 기회에 빠지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잘못된 조합정치체제는 교리 및 신학적 또는 신앙적인 탈선의 위험이 많은 체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바른 정치체제로 반드시 개혁해야 것이 마땅하다.

ㄴ. 말씀 중심의 교회 연합

교회의 진정한 연합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교회연합은 정치적 조직이 아닌 같은 진리로 한 마음과 한 뜻을 이루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연합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섭리가 없이는 어떤 인간적인 정치적 노력이나 수단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성경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하나로 연합하는 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에 개 교회주의에 기초한 조합정치체제는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3) 장로정치의 개혁

장로정치체제는 교인들이 선택한 장로들이 당회를 조직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이다, 당회뿐 아니라 노회와 총회로 조직된 삼심제의 치리회를 통해 교단 산하 모든 지교회를 정치적으로 치리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치리권을 행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주로 장로교단이 선호하면서 말씀중심의 신본주의적 정치체제라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로 장로교 지도자들은 교회의 표지인 성경말씀에 따라 정치체제를 갖추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경의 정확한 뜻은 물론 성경관을 비롯한 신학적 논쟁이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과거 장로교 지도자들의 노력은 기대에 미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결국 장로정치체제 역시 정확한 성경적 근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지도자들의 주관적인 소견에 옳은 대로 개정 및 수정을 거친 잘못된 유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장로정치체제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것은 그럴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장로의 직무에 대한 오해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둘째는 교회정치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의 사역임을 등한히 여기고 있었다는 데 있다.
ㄱ. 장로의 직무에 대한 오해

개신교 ‘장로’를 유대교 산헤드린공회 회원인 장로처럼 권세 있는 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신약에서 ‘장로’는 헬라어로 ‘프레스뷔테로스(pr  esbuv  tero")’라고 하는데, 이는 ‘손위의’ 또는 ‘장로’라고 번역된다. 그런데 장로의 직무로 오해하고 있는 ‘다스린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인도하다’ 또는 ‘돌보다’와 ‘수행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프로이스테미(proi?s  thm i)’이다. 다른 또 하나는 ‘바른 지도’ 또는 ‘현명한 지도’라는 의미를 가진 ‘퀴베르네시스(kubevrnhs  i")’이다. 따라서 장로의 직무는 교회를 권력으로 다스리는 치리자의 역할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쳐 올바르게 돌보며 지도하는 목사(포이멘, poimhvn)의 역할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장로정치체제 역시 반드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ㄴ. 성령의 사역에 의한 정치

성경적인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통해 신령한 방법으로 치리하신다. 곧 성령께서 성도들로 성경말씀을 통해 각자가 받은 은사를 깨닫도록 역사하신다. 그리고 각자가 받은 은사를 사명으로 아는 자들이 서로 합력하여 선한 사업을 도모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은사에 따른 다양한 합력단체들에 의해 교회조직이 규모 있게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신다. 그렇게 해서 신령한 교회의 정치체제가 형성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정치는 성도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감독이나 목사 및 장로들의 몫이 절대로 아니다.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의 단독적인 몫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하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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