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대이동
셋. 말씀운동의 역사와 미혹의 영:
우상숭배의 늪에 빠지게 하시다
1. 이방 여신에 대한 숭배: 솔로몬 왕의 자기 꾀에 빠짐
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32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33 이는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 그 아비 다윗의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치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나의 법도와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함이니라(왕상 11:31~33)
길게 인용한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의 신복(信服) 장수였던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찢어 열 지파를 주고 나라(북이스라엘)를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의 내용이다. 이유인즉 솔로몬 왕이 여신 아스다롯을 비롯하여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 섭리에서 우상 숭배는 언약 백성들을 시험하셔서 혹독하게 연단하시는 결정적 수단이다. 우상 숭배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으로 항상 다가와 있다. 이하에서는 종교개혁 시대에 성행하고 미혹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 ‘마리아 숭배’를 비판해 보고자 여신 숭배의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아스다롯은 고대 근동의 여신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아스다롯 여신에 대한 접촉은 이미 오래 전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모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혼음(混淫)을 동반한 매춘과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잔혹한 제사, 온갖 음탕한 의식과 광란의 축제인 아스다롯 여신 숭배는 결국 이스라엘 국가의 패망을 불러온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열조들이 살았던 당시에 여신의 이름은 도시의 지명으로 자리잡았으며 또한 삶의 일상을 지배하기도 했다(창 14:5;신 1:4).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여호와를 버리고 이 여신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길을 걸어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여호와의 언약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며 그곳에 정착한다. 여호수아 시대부터 다윗 왕이 오기 전 300여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이때도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여신 숭배는 널리 퍼져 있었다(삿 10:6). 그리고 사무엘 사사 시대에도 여신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적 종교생활이 되기도 했다(삼상 7:3,4; 삼상 12:10). 다윗 왕 이전에 잠시 왕이었던 사울왕의 시신도 아스다롯 신전에 두기도 했다(삼상 31:10). 후에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선왕(先王) 솔로몬이 멸망산(감람산)에 세운 이 아스다롯 신전을 불결한 것으로 단죄해 버리기도 했다(왕하 23:13). 이처럼 여신 숭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결국 멸망으로 이끈 여신 숭배의 재현을 우리는 11세기 십자군 전쟁의 시기에 더욱 견고한 우상 숭배의 전형으로 자리잡은 ‘마리아 숭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의 나약성을 종교적으로 달래주기 위해 모성(母性)을 종교적으로 포장하여 ‘하나님 어머니’라는 미숙한 교리를 날조해 왔던 로마가톨릭 중심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나아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성경권위’를 등한히 할 경우 초래할 무서운 결과에 대해 다시 경각심을 높이고자 한다.
2. 마리아 숭배 : 날조된 ‘하나님 어머니’의 역사
마리아는 다윗의 후손 요셉의 부인이며 혼인 전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다. 서양사에서는 각종 미술이나 음악 분야 혹은 문학 작품에서 주요한 소재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대모신(代母神) 신화와 얽히면서 다산(多産)과 풍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모(聖母)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에서 비롯하는 용어다. ‘삼신할머니’ 숭배와 같은 다산(多産)의 소망과 관련해서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녀 이미지는 순결(純潔)의 대명사가 되어 남녀 독신생활을 신성화하는 모범으로 날조되었다. 한마디로 성경에 대한 무지가 낳은 심각한 종교적 폐해들이다. 더 살펴보면, 마리아는 원죄도 없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니므로 마리아는 예수님처럼 흠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리아의 무흠사상은 급기야 마리아는 승천했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가톨릭의 성일(聖日)로 자리잡는다. 천사의 말에 복종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여성들에게 교회에서 겸손과 복종을 강요하는 데 악용된다.
누가복음 1장 35절(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을 맥락을 벗어나서 해석하여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온갖 이미지를 조작한다. 그리고 누가복음 1장 38절(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도 역시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이미 조작해 놓은 교리에 이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교리를 만들어낸다.
마리아를 여신 숭배로 몰아가는 근거로 삼는 위의 두 구절은 성경 전체를 보지 못하면 미혹당하기 쉽다. 만약 성경해석을 그릇하게 되면 성경관, 신론과 인간론, 기독론과 구원론 나아가 교회론까지 신학 전 분야에 걸쳐 로마가톨릭처럼 만들고 싶은 만큼 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 자체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명제적 진리다. 하지만 이 사실을 가지고 성경 전체에 대한 균형 있는 해석을 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소설 같은 허구적인 교리를 만들어낸다. 본고에서는 신학적인 세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단지 역사적으로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과정을 다시 고찰하면서 성경권위에 대한 무관심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거짓된 맹신을 불러오며, 인간이 스스로 날조한 그 허구에 자신을 다시 얽어매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는지 강조하고자 한다.
2세기말 교부(敎父)였던 이레나이우스는 마리아의 처녀성과 천사에게 복종한 것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해석에서 우리는 하나님 계시 중심으로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 진리의 권위를 확고히 하는 것보다 인간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볼 수 있다. 개혁파 전통의 성경해석의 원리는 ‘성경 권위’를 진리체계로 확증한 후 하나님의 존재 증명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이해 그리고 모든 인간의 피조성과 죄성을 간과하지 않고 성경본문의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면서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나 교부시대의 논의는 이러한 과정을 따라갈 수 없었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시부터 마리아의 순종 고백을 강조하면서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인류구원의 동반 사역자로 만들어 놓는다. 이러한 주장을 더욱 강하게 날조하기 위해 마리아의 신성의 근거를 본성이 신성이신 예수님을 강조하면서 그 신성을 소유한 예수님을 잉태했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 어머니’ 사상과 연결시킨다. 이러한 명칭은 3~4세기 신학의 중요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예배 의식에서도 사용하였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마리아를 최고의 피조물로 간주하였으며 예배의 대상, 여신 숭배의 길을 열어놓는다.
4세기 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는 ‘하나님 어머니’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여겨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라 부르기도 했으나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는 단죄 받았다. 그러면서 이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그리고 ‘교회의 어머니’ 교리로 선언했다. 4세기 자유의지론자 펠라기우스도 마리아의 원죄없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대의 유명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죄가 없는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은 특권에 대해 무한한 은총을 강조하면서도 마리아의 무원죄(無原罪) 교설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649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하나님 어머니’ 교리를 다시 확정하고 ‘항상 깨끗한 유일한 처녀’도 첨가하여 여신으로 만들어간다. 로마가톨릭 신학의 대가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의 임신이 순수성의 손상이라고는 지적하면서도 성경적 근거가 없는 하나님은 그녀의 원죄를 소멸시켰다고 하여 결국 마리아의 무원죄를 강화하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는 ‘순결한 처녀로서 흠없는 잉태’의 여신으로 확정한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동안 800만 명 이상이 청원에 서명하여 만들어진 교리 ‘마리아 승천교리’로 이어졌다. 1950년 교황 피우스 12세는 마리아 승천교리를 확정하고 부활의 소망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마리아도 부활의 여신으로 확정한다.<Daum 백과 참조>
앞서 우리는 솔로몬의 어리석음으로 이스라엘이 분열되고 결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할 때 그 원인이 여신 우상숭배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같은 예를 2천 년 서구 교회사를 지배한 마리아 숭배에서도 여전히 흘러오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살펴보았다. 성경 권위를 흐리게 하고 수많은 종교인을 혼란으로 암흑으로 이끄는 우상 숭배에서 여신 숭배가 얼마나 심각한 우상 숭배인지 살폈다. 교회사가 맥클로는 이러한 교리 조작의 과정을 “대중적 갈망의 산물”(99)이라고 평가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성경 권위에서 점점 멀어진 서구 기독교는 이제 ‘성경만 하나님 말씀이다’는 명제를 거의 포기하고 있다. 세계의 종교적 대세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성경에서 따지지 말자는 흐름이다. 로마 가톨릭이 중심축을 이루며 구성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성경 권위를 점점 약화시키면서 세계의 ‘화해’와 인류의 ‘화합’을 앞세우며 세계 종교의 연합체를 만들려는 사악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 성경 진리에 무지한 종교인들은 또다시 속고 있다. 500년 전 왜 우리의 선배들이 ‘오직 성경’이라고 화형틀에서도 외쳤는지 또 다시 새겨본다.
<144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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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원어 성경을 배우는 자세와 방법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