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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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5 18: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11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소원하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7년 8월 9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과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대담자로 참여하였다.

1.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성경 말씀에 기초를 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를 둔다는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회의 절대적인 표지(標識)는 성경입니다. 표지란 교회가 교회 되는 분명한 표식을 말합니다. 즉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성경이 성경대로 전해지고 가르쳐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설교를 하는 곳이 아니라 신구약 성경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아무리 좋은 도덕 강의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시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거나 전하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어디서든 두세 명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 성경 말씀을 깨달은 자가 성경을 가르치는 교육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성경을 놓고 가르치는 가정도 교회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해변이나 사가, 또는 회당과 감옥에서도 성경 말씀을 가르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가 성경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기본 터전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2. 한국의 개신교는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주로 신약성경에 치중해서 설교를 많이 합니다. 구약을 소홀히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폐해는 무엇인지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 개신교만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자체가 구약을 도외시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라며 율법과 복음을 반대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말하면 율법을 전하고, 신약을 말하면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해 신약 중심의 설교를 많이 해왔습니다. 바로 신구약의 일관된 구조적 논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신약 성경을 구약의 언약이 성취된 그리스도 사건으로 보지 못함으로 은혜로 구원 얻는 것이 핵심 내용인 양 전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을 진리로 확정하지 못하고 문서들의 수집물로 보는 문서설자들의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그 폐해는 개신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부정되고 문서설자들에게 난도질당하면서 종교 다원주의가 세력을 얻고 우리의 영적 생활까지 피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3. 박용기 원로께서는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의 제창자이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2014년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총 20권, 총 10,909쪽)를 완간하셨습니다. ‘성경신학총서’에서 밝히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탁월함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밝혀주시고, 한국 교계와 세계 신학계에 ‘성경신학총서’가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성경신학총서’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성경의 총 주제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언약하시고,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성취하시는 섭리 방법으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신학계를 향해 성경신학은 하나의 주제, 즉 성경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려는데 있다는 것을 밝혀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가 나왔다는 것은 성경이 절대로 문서들의 수집물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일관된 논리적 통일성을 지닌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신학을 통해 언약 성취 섭리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확증되고, 그 섭리 속에서 속성이 드러남으로 자연히 하나님이 믿어지고 경외심이 생기게 됩니다. 성경신학은 정말 무너져가는 개신교를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써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4. 구약성경에서 이른바 역사서인 창세기부터 에스더는 이스라엘 역사 섭리를 통해 메시야를 언약하는 내용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이 역사서와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의 논리적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창세기에서 에스더까지 역사 섭리를 통해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해줄 뿐만 아니라 그 속성들을 역사 섭리 속에 다 드러내셨습니다. 역사서와 시가서의 논리적 관계는 역사 섭리 사역을 통해서 드러난 여호와 하나님의 오대속성 즉 전능성, 신실성, 주권성, 영원성, 자비성을 주제로 찬양한 것이 시가서이기 때문에 역사서와 시가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5. 시가서 5권은 얼핏 보면 논리적 관계가 없는 듯 보입니다. 시가서의 논리적 통일성을 밝힐 수 있었던 단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역사 섭리를 통해서 여호와의 전능성은 이미 드러났지만, 욥기에서 욥이 까닭 없이 망하고, 그것도 사단에게 욥을 맡겨서 망하게 하시는 걸 보고서 하나님의 전능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시편의 신실성 찬양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는 알려주었으나 여호와로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여호와로 알려주겠다고 하심으로 열조와의 언약대로 다윗왕국을 이뤄주셔서 다윗으로 신실성을 찬양하게 하신 것입니다.
잠언의 주권성 찬양은 교훈서가 아니라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어서 나라를 섭리하게 하신 역사 섭리와 연관이 있습니다. 유다자손인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다윗이 불순하게 얻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낳은 솔로몬으로 대를 잇게 하실 뿐 아니라 지혜를 주셔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으로 되는 줄 알게 하심으로 솔로몬 왕으로 이스라엘의 참 주권자가 여호와이심을 찬양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영원하신 일은 택한 백성으로 여호와를 경외케 하시려는 것으로,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여호와를 알게 하시려는 역사 섭리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실 때에 시작하신 역사는 끝이 날 때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도서의 영원성 찬양 구조가 들어왔습니다. 하늘 위를 전제하지 않으면 해 아래서의 모든 일은 헛되고 헛된 것이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아가서의 자비성 찬양에서 사랑의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열조와의 언약을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한 것으로, 유한한 이스라엘 역사 섭리를 통하여 여호와를 경외케 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선택한 백성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그 사랑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노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 아가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논리적 순서에 따라 노래한 것입니다.

6. 선지서를 ‘예언을 통한 언약’이라는 통일된 구조로 볼 수 있었던 단초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시가서와 선지서의 논리적 연결성에 대해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구약을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통일된 것으로 볼 수 있었던 단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을 때, 말씀이 언어가 아니라 로고스, 하나님의 생각, 뜻, 사상, 작정 등의 개념을 아우르는 것으로 바로 하나님을 말합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소통하는 언어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 뜻을 표현하시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다가 역사 섭리를 비롯해 언약자손들의 찬양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뜻을 드러내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가서에서 하나님의 속성으로 과거에 이루신 일, 현재에 이루시고 있는 일, 미래에 이루실 것을 찬양했다면 선지서는 당연히 역사 섭리를 통해, 시가서 찬양 후에 이루어질 이스라엘 나라의 분열, 바벨론 포로로 갈 것 등이 이루어질 무렵에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재차 확인해주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깨달아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도록 하여 여호와만 경외케 하시려고 예언케 하십니다. 언약을 근거로 한 선지자의 예언은 성경 전체의 흐름을 정리하지 않고는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서와 시가서, 그리고 예언서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7. 선지서와 복음서의 특별한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아가 복음서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관해서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지서는 이미 역사서와 시가서에 이어 온 것으로써 복음서에서 요한계시록까지 논리적으로 연결해 주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입니다. 사실 구약은 섭리를 통한 언약, 찬양을 통한 언약, 예언을 통한 언약 방법으로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언약하신 내용입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언약했는데 바로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가 온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직접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신 것으로 자신이 구약에서 언약된, 가깝게는 선지서자들이 언약한 그리스도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서와 복음서는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논리적 흐름이 있습니다. 나아가서 복음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주제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은 예수님 스스로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통일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스스로가 자신을 증거하신 직임, 신분, 사역, 본성의 다양한 주제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핵심 내용으로 다양성과 통일성은 함께 공존합니다. 이렇게 논리가 끊어질 수 없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8. 성경신학의 또 다른 탁월함은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의 논리적 통일성과 구조의 완벽성에서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성령에 의한 성취’라는 제목으로 묶을 수 있었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 복음서의 마지막 요한복음 14장 이후에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시면서 걱정,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면서 구체적으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스스로가 증거하고, 사도행전 이후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내용이라고 예감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실까? 사도행전 이후 성령께서 신약교회를 창립하시고, 복음을 통해 성장시키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 양육, 무장, 투쟁, 승리를 거두게 하심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9. 개신교는 성령론의 왜곡으로 비정상적 교회관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을 ‘성령에 의한 성취’로 정리하신 것이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교회사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는지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개신교의 교회사는 너무너무 험난한 역사였습니다. 초기 사도시대, 속사도 시대를 거치면서 교부시대부터 교황시대로 넘어오면서 타락된 교회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령론이 빈약하다 보니 종교개혁을 단행했으나 역시 교회는 인간이 다스리고 지배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령이 오셔서 교회를 세우신다는 정확한 교회관이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는 빗나갈 수밖에 없었고 한국 개신교도 조잡스런 목사 중심의 소교황제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론에 대한 올바른 성경신학적 정립은 세계 교회에 교회사적으로 아주 큰 의미가 있고,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세워져 간다는 믿음이 생겨나서 정상적인 교회를 맞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10. ‘성경신학총서’를 통해 성경은 ‘보혜사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임이 확증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정신인 ‘오직 성경’에 따른 성경 권위가 되살아나는 쾌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신학총서’가 한국 교계와 신학계 나아가 세계 교계에 어떻게 활용되기를 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총서 완간은 아직도 표현상 가다듬을 것이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 성도들이 어느 때, 어디서라도 성경을 공부하는 지침서로 잘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세계 교회는 영어 번역으로 세계 어디서라도 이 교재를 활용해서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가 마을마다, 지방마다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길 바랍니다. 성경신학총서는 무너져 내리는 개신교를 일으키는 지렛대가 될 것입니다. 은사를 받아서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분들은 신학적인 학문에 전적으로 전념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신학은 교리사, 계시사, 구약사, 신약사 등 모든 신학을 포함한 통합신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로 그 지역교회를 다스리는 개신교의 담임목사제도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으로 성경 말씀을 깨달아 믿는 것과 아는 것으로 하나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일부러 조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 만나고 싶고 교제하고 싶어서 모이면, 조직이 성령 감동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진짜 보이지 않는 내면 교회가 본체이고 그 본체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 모임 곧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는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하나의 교회인데 드러나고 안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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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알파벳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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