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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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7 19:0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12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소원하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7년 8월 30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과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대담자로 참여하였다.

1. 인본적인 교회헌법에 의한 법치주의, 교권에 의한 권위주의 그리고 비성경적 허례허식에 의한 형식주의가 개혁파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부패를 척결하고 개혁되어야 하는 성경적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라 문제 해결’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른 문제 해결’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신 보혜사 성령에 의해서만 성경적인 바른 교회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신약교회의 출발점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언약하신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모두 배신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셨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께서 구약에서 언약하신 메시야이심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열방으로 힘 있게 전하게 됩니다. 유대의 구습을 좇던 전통을 청산하게 하시면서 동시에 신약교회를 창립하게 하시는 역사가 바로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이로써 구약의 모형과 그림자 나라는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신약 교회가 창립되도록 하셨습니다. 세우신 교회는 성령께서 사도와 성도들로 은사를 깨닫게 하여 각자 자신의 직무를 수행케 하여 자라게 하십니다. 이렇듯 성령께서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여 교회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말씀 외에 가령 인간 권력이나 헌법, 제도나 형식을 앞세워 교회를 운영하고자 한다면 이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대적하는 중범죄가 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하신 두 가지 핵심 사역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 기록과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서 교회를 설립하거나 양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반드시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진리와 성령의 교통하심이 점점 사라지는 부패현장이 바로 한국 개혁파 교회입니다.

2.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유일한 법은 오직 성경입니다. 그런데 개혁파 교회는 인위적인 헌법을 만들어 교회를 부패시켜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에 드러난 심각한 부패는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한국 개혁파 교회는 ‘성경권위’라고 외치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빙자한 인본주의적 세속 집단들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 진리에 토대를 둔 성경적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유일한 법은 오직 성경입니다. 만약 성경진리를 소홀히 한다거나 인간이 만든 총회 헌법이나 노회나 교회의 정관을 앞세운다면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행위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목사들이 자기 이권을 위해 만든 교회 헌법을 앞세워 세속보다 더 부패한 정치를 자행하는 작금의 한국 교회는 점점 성경적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정말 한국 교회는 교회 헌법을 통해 세상 정치보다 더 부패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 성경을 마음대로 도용해서 온갖 이권을 챙기기 위해 무지한 성도들을 늑탈하고 있습니다.

3.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조장하는 교회 헌법이 저자가 강조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에 얼마나 치명적인 범죄를 일으키고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엄밀히 말하면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성령의 교통하심’이 아니라면 모든 말과 행위는 육신의 정욕을 주고받거나 사고파는 행위가 전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밝히 기록된 대로 육신의 일(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은 현저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부패는 불택자에게는 최후 심판의 확실한 증거이지만 택자에게는 깨닫게 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와는 너무 다른 교회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신학자들, 목사와 장로, 권사와 성도들이 성경 진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당에 나오지만 자신의 정욕을 위해 주님의 교회를 각자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러한 교회 부패 상황에서 저나 기자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악한 도구로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4. 감리교에서 시행하는 감독정치 체제는 ‘감독’에 대한 말에서부터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에 이 감독정치가 성행하는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경적 대안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독(監督)’이라는 말은 본래 신적인 하나님의 권위를 뜻하는 개념입니다. 즉 우주만물의 창조주이며 주관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엡 1:22)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칭할 때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교회의 유일하신 감독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감독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명감으로 돌보고 헌신하며 성도들을 보살피는 보호자 혹은 아낌없는 후원자라는 맥락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는 단지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의도적으로 악용하여 성도들을 자신이 감독할 수 있다는 감독정치 체제는 정말로 교회 부패의 전형적 상징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데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습니까? 오직 성도들이 성경을 제대로 알아 무지의 늪에서 깨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한국 교회는 교파를 초월해서 교황체제를 따라가는 감독정치를 점점 강화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인간은 할 수 없지만, 교회의 유일한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기자의 인터뷰에 응해서 아직도 성경을 알지 못하고 억압과 굴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제발 성경공부 좀 하시라고 말입니다. 기독교지도자협의회(www.ibt.or.kr / (www.tbtlogos.com)에 오면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한국크리스천신문’에서 더 많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5. ‘조합정치 체제’는 상위 기관의 관할이나 외부의 간섭에서 자유롭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강조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조합정치의 한계는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경적 대안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합정치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우리 기독교지도자협의회(www.tbtlogos.com/기지협)가 소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 교단들은 없습니다. 주로 장로교 소속의 소규모 노회나 총회가 소속해 있거나 선교단체들도 등록해 있습니다. 비교적 정치적 술수나 독단적 운영 혹은 재정적 비리가 없는 건전한 장로교 연합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과 기독교지도자협의회가 예장연에 소속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라고 믿습니다. 제가 말하는 개혁의 방향을 한국 교회가 받아들인다면, 천문학적 재산을 보유한 큰 교단들은 자신의 이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대형 교회와 교단은 ‘돈’ 쪽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황은 기지협과 예장연이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위해 뜻있는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부터는 기지협과 예장연이 정말로 성경적인 연합회를 구성하여 부패하여 무너지는 한국 교회 체제개혁의 훌륭한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안을 합니다. 예장연은 90여 개 소규모의 총회로 구성된 조합정치 체제입니다. 개혁파 장로교 신앙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으면 연합회 소속으로 유지되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상호 간섭이 없는 만큼 성경해석에서나 신학사상에서 주관적으로 흘러갈 우려가 대단히 큽니다. 한국 신학의 정황으로 볼 때 신대원 출신의 수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여 올바른 신학을 수립한 성경 교사들이 매우 적습니다. 만약 베드로 사도의 우려처럼 사사로이 성경을 풀어서 가르치는 것을 어느 누구도 지적을 해 줄 수 없다면 그 교회와 성도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기지협이 소속한 예장연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용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진리체계(성경신학총론The Bible Theology Series 총 20권, 진리의말씀사)를 28년 동안 쓰게 하셨고, 2014년에 완간하도록 하셨습니다. 1000여 강의가 모두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www.ibt.or.kr).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 자랑이 결코 아닙니다. 기지협과 예장연이 제 연구결과가 성경적인지 아닌지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적이라면 부패한 한국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세계 교회를 향해 성경이 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통일된 진리체계인지 한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랍니다. 몰락한 서구 교회의 대안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기지협과 예장연이 제가 제안한 방식대로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교회생활을 한다면 조합정치 체제도 건전하고 좋은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6. 장로정치는 개혁파 장로교가 취하는 정치체제입니다. 한국 개혁파 교회도 장로교 헌법에 따라 합리적인 정치체제를 이루는 듯 보입니다. 장로교에서 말하는 성경적 ‘장로’란 도대체 무엇이며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장로교 정치체제는 성경 진리와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장로’라는 말은 앞서 말한 감독 개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의 유일한 감독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파 교회의 ‘장로’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더 많은 수고와 봉사로써 성도보다 앞서 섬기는 연장자일 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나이 많은 자’로서 오랫동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한다는 사역 중심의 서술어 개념입니다. 즉 교회 사역에 경험이 많으시고 지혜가 풍부하여 무엇이 성경적인 줄 알고 계시며 후배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분들을 설명하는 개념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16장에 사도 바울은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목사, 장로, 권사라는 호칭을 쓰지 않습니다. 즉 직책명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40여 명의 성도들을 거론하면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을 중심으로 문안을 하고 다른 성도들에게 추천하거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직급도 벼슬도 계급도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장로로서 해야 하는 일을 무시하고 한국 교회는 목사를 계급화했듯이 장로도 계급화했습니다. 장로를 돈 주고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한국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보다 더 부패했다고 하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성경 진리로 다시 돌아가는 성령의 교통하심, 성령의 무한하신 은총의 바람이 다시 한번 한국 장로교에 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7. 저자는 장로교 목회자로서 40여 년 동안 목회를 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2010년 교회체제개혁이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몸담았던 한국 장로교 체제를 몸소 겪으신 신앙의 선배로서 감독정치 체제, 조합정치 체제, 장로정치 체제를 넘어 오직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후배 성경 교사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간단하지만 강하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교회 일에 뛰어들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경공부를 등한시 하면서 교회 일에 깊이 접근하지 말길 바랍니다. 물론 성경 진리에 대한 관심도 저의 외침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목회 40여 년을 통해 통절하게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다시 한번 또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도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육십 평생 우리글로 번역된 성경만 연구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2014년 일만여 페이지가 넘는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를 완간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의 영광’을 위한 신학입니다. 성경해석의 관점은 창세 전 영원한 언약과 성취를 포괄하는 ‘언약성취 섭리사’입니다. 구절 해석의 핵심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사건에 담긴 ‘의미분석’을 여호와 계시 중심으로 밝혔다는 점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구절도 빼지 않고 왜 성경만 하나님 말씀이며 세계 개혁파 교회와 한국 장로교가 해결하지 못한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역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2014년 이후에는 더욱더 강조할 뿐입니다. 오직 성경권위만을 붙잡고자 합니다. 누군가 제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성경, 둘째도 성경, 셋째도 성경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이 성령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국 교회가 열심히 공부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성경 기록과 성경 교육은 전적으로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시길 항상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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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황과 공의회 사이의 권력 투쟁: 재산권 쟁탈전
불완전한 알파벳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