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7-09-07 19:1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1. 교황과 공의회 사이의 권력 투쟁: 재산권 쟁탈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5)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자들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14세기 초 교황 권위를 견제하고자 했던 수도사 집단이나 공의회 권력이었다. 가령 프란체스코회 수사(修士)들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1294~1303)를 정죄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 보니파키우스 8세가 ‘우남 상탐(Unam Santam, 하나의 거룩한 교회)’이라는 법을 제정하여 온 세계에 대한 교황지배의 합법화를 시도하자 교황을 정죄했으며 교황권력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했다. 또한 교황권력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세속의 권력 집단의 대변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칭했다. 교황권에 대한 이러한 적대 세력들에 의해 중세 말기 교황권은 점점 그 세력을 잃어갔으며, 점점 종교개혁을 위한 구체적 계기를 마련하는 요인들 중의 하나가 되어갔다. 
교황권 약화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바벨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 幽囚)’라고 칭한다.  프랑스 왕 필립이 프랑스 출신인 교황 클레멘트 5세를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보내고 교황청과 교황의 권력을 프랑스 왕의 통제 아래 둔 사건(1309년)이다. 이탈리아 인문학자 페트라르카가 이 사건을 ‘바벨론 유수’라고 명명했다. 바벨론은 주전 586년 남유다를 처참하게 멸망시킨 세력으로 남유대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모든 백성을 바벨론으로 붙잡아 간 세력이다. 이와 같이 프랑스 왕이 로마에 있는 교황청을 부정하고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기고 그곳에 교황을 유배시켜 자신의 통제 아래 둠으로써 교황권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이 사건을 바벨론 유수(幽囚)에 비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늘 아래 유일하게 하나님을 대신하고자 했던 교황권력은 수치를 당하게 되고 국가 권력의 통제를 받으면서 그 세력이 약해진다.
비록 1377년 교황청이 다시 로마로 돌아갔지만 교황권력은 점점 쇠퇴 일로를 걸으며 중세의 종말로 향하게 된다. 교황청이 로마로 복귀하자 이탈리아 시민들은 추기경 집단에 압박을 가하여 교황을 세우라고 한다. 이에 추기경단은 우르바누스 6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한다. 하지만 이 교황과 추기경들은 다시 권력 투쟁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추기경들은 새 교황을 다시 선출한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 하나님이 직접 세운 그리스도의 전권대사, 세상의 유일한 통치자라는 말은 교황권 분열과 쇠락의 과정에서 그야말로 교황제란 종교를 빙자하여 천 년 동안 숨겨온 거짓 권력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과정이 된다.
그런데 교황 우르바누스 6세와 추기경 세력은 다시 충돌한다. 결국, 추기경들은 다시 교황(클레멘트 7세)을 선출하여 아비뇽으로 보내고 교황청은 다시 아비뇽에 둔다. 두 거짓 종교권력인 ‘음녀 권세’ 사이의 세력 다툼의 사건이다. 이 두 음녀 권세의 권력투쟁은 성경 진리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그야말로 기독교의 탈을 쓴 늑대들의 먹잇감 쟁탈전이었다. 이렇게 두 교황로마의 우르바노 6세와 아비뇽의 클레멘드 7세가 두 교황청으로 분열된 시기를 로마 가톨릭은 로마가톨릭 ‘교회의 대분열(1378~1417년)’ 사건이라고 한다. 이 분열로 교황권력의 허구와 거짓이 드러났으며 그 권력은 추락하는 신세가 되고 세속의 권력(왕의 권력 혹은 민중의 세력)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는 종교집단이 된다. 당시 이러한 사건의 대표적인 예를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황의 세계 지배에 대한 저항과 교황 지배권의 제한을 둔 ‘갈리아주의(Gallicanism)’가 그것이다. 이는 교황권과 왕권의 분명한 분리를 뜻한다. 동시에 프랑스 주교 임명권도 프랑스가 독립적으로 하는 것으로 교황이 간섭할 수 없게 하였으며 로마 교황청으로 가던 교회세금도 폐지해 버렸다. 이렇게 교황권은 세속 권력에 의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가 하면 로마 가톨릭 내의 공의회 권력에도 도전을 받으면서 약화된다.
1417년 독일의 콘스탄츠 공의회 또한 교황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한다. 교황 요한 23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Sigismund)와 공모하여 마틴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이에 공의회는 격분하고 이에 맞서 교회의 최고법으로서 ‘사크로상타(Sacrosanta, 최고로 신성함)’라는 교령(敎令)을 공포하여 공의회 권력이야말로 그리스도에게 직접 받았다고 하며 교황을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규정했다. 교회 직급의 통일과 교리 내지 교회 질서의 최종 판단 그리고 신앙의 문제는 공의회에 복종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공의회는 교황권을 통제하면서 십 년마다 공의회를 소집하여 그때마다 교회 통치에 필요한 조항들을 첨가하기로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의회는 교황을 견제하면서 교회 제도는 인위적으로 변경해 가며 자신들의 영구 집권을 도모했다.(333쪽 참조) 그야말로 거짓 종교 내에 일어난 종교의 탈을 쓴 권력투쟁 그 자체였다. 중세 로마 가톨릭은 이렇게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이 무렵 1413년 바젤공의회도 로마 교황제를 거부하고 공의회 체제의 법과 제도를 수립한다. 비록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서방의 로마 가톨릭의 결집을 위한-가령 공의회 권력을 통제하는 교황 피우스 2세의 ‘엑스크라빌리스 Execrabilis’ 칙령과 같은-교황권 회복이  잠시 일어나긴 했지만 약화되는 교황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내의 세력 다툼의 핵심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 바로 힘없고 나약한 우매한 백성들을 속여서 갈취한 교회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이 숨겨져 있었다. 이러한 예는 이미 11세기 말부터 구체적으로 드러난 대사건에서 볼 수 있다. 사실상 11세기말부터 13세기 말까지 200여 년 동안 벌였던 십자군 전쟁(1095~1270)의 본질은 예루살렘 성지탈환이 아닌 ‘재물 약탈’이 그 속내였다. 그리고 11세기부터 경작지가 증가하면서 지주(地主) 계급들이었던 영주(領主)의 재산이 증가하자 교회는 그들의 재산에 욕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 전 교구는 유럽의 모든 농업종사자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다. 더 억울한 일은 영주들이나 귀족들보다 농노(農奴)인 일반 성도들이 더 많이 탈취당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거대 교단이 지금도 우매한 성도들을 속이는 짓이 이미 천 년 전부터 있었던 종교를 가장한 신용사기극이라는 점이 새삼 놀랍다. 원래 중세 교회는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하지만 ‘돈맛’을 본 이후로 노예 제도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태도로 바뀐다. 또 다른 예가 있다. 11~12세기 중세 로마 가톨릭은 결혼 제도를 통제하면서 서민들의 재산을 가로챘다. 우선 시민들의 결혼을 교회가 제정한 7 성례 중 하나에 넣었다. 교회가 허락하지 않으면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 없게 했다. 이 전통은 지금도 대부분의 서구 유럽에 남아 있어서 교회나 성당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행정당국에 신고한다. 교회가 부리는 꼼수는 ‘근친상간’의 범위를 넓히는 계략이었다. 서로 결혼하고 싶지만, 근친상간법에 저촉되어 결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결혼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문제는 그 결혼은 불법이 되고 교회에 모든 재산은 몰수당한다. 재산 상속의 적법성을 교회가 결정했다. 정말로 교묘하고 악랄하고 지독한 재산침탈행위다. 이러한 재산 약탈은 교회 내에서도 일어났다. 영국 교회의 경우 처음에는 성직자들이 결혼을 했다. 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은 독신을 교리화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결혼은 불법이 되고 부인은 ‘첩’의 신세가 되며 아이는 ‘사생아’가 된다. 그리고 재산은 몰수당한다.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가톨릭교회의 재산 수탈 과정에서 사건마다 최대의 피해자가 있었다.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을 탄압하는 이유가 종교적 이유인 것처럼 보이지만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종교적 명분을 대고 유대인을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을 집단적으로 몰살한다. 그들의 재산은 교회 차지다. 종교개혁의 서광이 다가오면 올수록 ‘돈맛’을 본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적이든 아군이든 가리지 않고 부의 축적을 위해 ‘피비린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148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특별계시와 알파벳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12